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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핌] 한태봉 전문기자 = 한국의 유통업계 지형도는 '쿠팡'이 등장하기 전과 후로 나뉜다. 쿠팡과 롯데쇼핑(023530)의 시가총액 격차는 무려 37배다. 신세계(004170), 이마트(139480), 현대백화점 등 한국을 대표하는 유통업체 대부분이 모두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비슷한 처지다. 이런 엄청난 격차는 어째서 발생하는 걸까?
쿠팡은 초기에 물건을 팔면서도 마진은 남기지 않는 희한한 전략을 펼쳤다. 미국에서 대성공한 아마존의 전략이다. 마진은커녕 오히려 적자가 증가하는데도 계속해서 물건을 싸게 판매했다. 그 결과 지금은 압도적인 온라인 승자로 부상했다.
◆ 2000년대는 롯데백화점롯데마트신세계이마트 전성시대
쿠팡이 등장하기 전인 2000년대 유통시장은 온라인보다 오프라인 매장들의 성장세가 탄탄했다. 한국 고급 매장의 대명사인 롯데백화점, 신세계백화점, 현대백화점 외에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 같은 대형마트가 급속도로 오프라인 매장을 늘리며 엄청난 매출증가세를 보였다.
미국 부동의 1위인 월마트와 프랑스 까르푸가 한국 유통의 매운맛에 질려 한국에서 철수한 이후 이마트, 롯데마트, 홈플러스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3개 회사 간 점유율 전쟁이 치열했지만 이 시기가 한국 오프라인 유통업체의 최전성시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2024년 현재는 백화점을 제외한 오프라인 매장들의 기세는 확 꺾였다. 대형마트의 최근 3년 매출액 성장률은 각각 2021년 2%, 2022년 1%, 2023년 6%로 부진하다. 편의점은 2021년 7%, 2022년 10% 성장하며 선방했지만 2023년에는 -1%로 반전되며 포화상태를 보이고 있다.
반면 백화점의 경우 2021년에 34조원의 매출액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3% 급증했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기저효과다. 하지만 2022년 12%, 2023년에도 8% 증가하며 상대적으로 양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대형마트들에 비해 백화점이 상대적으로 체험과 즐길거리가 많고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고가 명품 매장을 갖춘 덕이다.
◆ 소비자 40%는 온라인쇼핑으로 물건 구매
오프라인의 부진과 달리 쿠팡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쇼핑 매출은 급증하고 있다. 특히 대형마트의 주력품목인 생필품, 식료품, 신선식품은 쿠팡으로 인해 매출이 정체 상태다. 이제 소비자들은 대형마트 대신 쿠팡, 네이버 등의 온라인쇼핑으로 생필품을 구매하는 비중이 훨씬 더 높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 전체 소매판매 매출액은 640조원이다. 이 중 온라인 매출액 규모는 무려 229조원이다. 온라인 침투율이 36%에 달한다. 승용차는 온라인으로 판매하지 않으므로 이 수치를 제외하면 실제 온라인 침투율은 40%에 달한다.
소비자들이 물건을 구매할 때 오프라인에서는 60%만 사고 나머지 40%는 온라인에서 구매한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온라인 쇼핑 침투율이 어디까지 상승할 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몇 년 안에 50% 돌파는 기정사실로 여긴다.
온라인쇼핑의 연간 매출 증가율은 엄청나다. 2020년 16%, 2021년 20%, 2022년 11%, 2023년 8%다. 점점 증가 폭이 둔화되고는 있지만 이는 절대 금액이 커짐에 따라 보여지는 착시효과다. 매년 온라인 쇼핑 규모는 약 30조원씩 증가한다. 온라인쇼핑이 대세가 된 이유는 쿠팡을 중심으로 한 익일배송과 새벽배송의 편리함 때문이다.
반면 대형마트는 매달 2번 의무적으로 휴업해야 하고 영업시간도 0시부터 10시까지는 영업을 금지하는 등 제한이 많다. 이는 온라인 쇼핑 배송 경쟁에서도 대형마트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소비자들이 대형마트 매장을 방문하는 횟수도 크게 줄어들었다. 오프라인 매장이 위기에 빠진 이유다.
◆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하이마트(071840)의 성장 둔화
롯데그룹의 핵심 유통사인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홈쇼핑, 롯데하이마트, 롯데슈퍼, 롯데컬처웍스(롯데시네마, 롯데 엔터테인먼트) 등을 직간접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문제는 매출액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롯데쇼핑의 전체 매출액은 2021년의 15조5736억원에서 2022년에는 14조4760억원, 2023년에는 14조5559억원으로 소폭 감소 추세다.
다행히도 영업이익률은 2021년 1.3%, 2022년 2.5%, 2023년 3.5%, 2024년 9월말 기준 3.2%로 조금씩 개선 중이다. 하지만 여전히 절대치는 낮다. 더 큰 문제는 당기순이익이다. 2021년에 -2730억원, 2022년에 -3187억원으로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했다. 2023년 1692억원, 2024년 9월말 누적 2204억원으로 흑자전환하며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롯데쇼핑의 올해 실적은 외견상 양호해 보인다. 시장의 우려와 달리 재무건전성에 큰 문제가 없는 실적이다. 하지만 온라인쇼핑 매출 1위인 쿠팡과 비교해보면 격차가 현격하다. 롯데쇼핑의 매출액이 정체된 것과 달리 쿠팡의 매출액은 매년 신기록을 경신 중이다.
쿠팡의 2018년 매출액은 4조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2029년에는 7조원대,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렸던 2020년의 매출액은 13조9235억원으로 폭증했다. 전년 대비 증가율이 무려 95%다. 2021년에도 50% 증가한 20조8812억원을 기록했다. 그야말로 폭풍성장이다.
2023년부터 쿠팡의 영업이익도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지만 규모는 미미하다. 쿠팡은 미국에 상장된 이후부터 한국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대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달러 기준으로 실적을 공시한다. 코로나가 종료된 2022년부터 쿠팡의 매출 성장세가 다소 둔화됐지만 여전히 두 자릿수가 넘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 공시 자료에 따르면 쿠팡은 2022년에 206억달러(전년 대비 12% 증가), 2023년에 244억달러(전년 대비 18% 증가)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2024년 9월말 누적으로도 223억달러 매출액을 달성해 전년 대비 25% 성장 중이다. 3분기에 쿠팡을 1번이라도 이용한 활성 고객수는 2250만명이다. 한국 온라인 쇼핑 시장의 가파른 성장세를 체감할 수 있다.
◆ '롯데 이커머스'의 문제점은 적자보다 매출 감소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에 대응하기 위해 롯데쇼핑도 온라인쇼핑 분야를 재정비했다. 2020년 4월에 롯데그룹 유통 계열사들의 온라인몰을 통합한 플랫폼 '롯데ON'이 출범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매출이 부진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배송 경쟁력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쿠팡은 물류 인프라에 수조원을 투입해 익일배송과 새벽배송으로 막강한 경쟁력을 갖춘 상태다. 반면 뒤늦게 시작한 '롯데ON'은 배송 품질, 사용자 경험, 차별화 등 모든 면에서 2%가 부족했다. 결국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춘 쿠팡을 뛰어 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는 매출정체와 영업적자다.
2023년에 롯데쇼핑 이커머스 분야 매출액은 1351억원으로 전년 대비 20% 성장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856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24년에 들어서면서 영업이익 적자폭이 줄어들고 있다. 문제는 매출액도 같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롯데쇼핑이 적자를 줄이기 위해 온라인쇼핑 분야를 축소하고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물론 이는 롯데쇼핑만의 문제가 아니다. 압도적인 온라인 시장 최강자 쿠팡에 맞서는 대부분의 유통 업체들은 모두 비상이 걸렸다. 네이버쇼핑만 양강체제를 구축할 뿐 전통의 강호였던 G마켓, 옥션, 11번가 마저도 버거워 하는 모양새다.
◆ 오프라인 위기로 주가 장기하락 롯데쇼핑
쿠팡은 지난 2021년 3월 10일에 공모가 35달러로 미국 나스닥 시장에 신규 상장했다. 기대감으로 한 때 69달러까지 폭등하기도 했지만 곧 거품이 꺼져 9달러까지 폭락하기도 했다. 지금은 24.2달러까지 회복됐다. 공모가 대비 하락률은 -31%다.
쿠팡이 신규 상장된 날짜인 2021년 3월 10일의 롯데쇼핑 주가는 12만6000원이었다. 약 3년8개월이 지난 11월 18일의 주가는 5만8000원이다. 그 당시보다 -54%가 폭락했다. 18년 전인 2006년의 롯데쇼핑 공모가 40만원과 비교하면 무려 -85% 주가가 폭락했다. 그래도 두 종목 다 마이너스니 외견상 쿠팡도 고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시가총액 차이가 어마어마하다. 쿠팡의 현재 시가총액은 약 61조원이다. 반면 롯데쇼핑의 시가총액은 1조6400억원에 불과하다. 격차가 무려 37배다. 한국의 대표 유통기업인 롯데쇼핑이 창업한 지 14년에 불과한 쿠팡의 37분의 1 가치로 평가받고 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신세계, 이마트, 현대백화점도 다 비슷하다.
외견상 지표로만 보면 지금의 시가총액 격차는 너무 과도하다. 어째서 투자자들은 쿠팡의 가치를 한국의 주요 유통업체들보다 훨씬 더 높게 평가할까? 단순히 쿠팡이 미국에 상장됐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쿠팡의 높은 미래 성장성과 정체된 오프라인 유통업체들 간의 따라잡을 수 없는 초격차에 대한 투자자들의 냉정한 평가일 수도 있다.
longinus@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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