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김선아 기자]  비마약성 진통제 '저나백스'(Journavx)가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으면서 글로벌 비마약성 진통제 시장의 성장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2030년에는 시장 규모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돼 국내 기업도 글로벌 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고 비마약성 진통제 개발을 이어가고 있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미국 FDA는 지난 1월30일 버텍스 파마슈티컬스의 경구용 비마약성 진통제 저나백스를 중등도 및 중증 급성 통증 치료제로 승인했다. 이전까지 중등도 이상의 급성 통증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진통제는 마약성 진통제뿐이었다. 매년 8000만명 이상의 미국인이 마약성 진통제를 처방받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펜타닐을 비롯한 오피오이드 계열 약물이다.
저나백스는 마약성 진통제 오남용 문제로 몸살을 앓는 미국에서 마약성 진통제를 대체할 수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에 대한 미충족 수요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 전문업체 글로벌 데이터는 저나백스가 2029년에 14억달러(약 2조원) 이상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글로벌 비마약성 진통제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약 1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국내에서는 비보존 제약의 비마약성 진통제 '어나프라주'(성분명 오피란제린염산염)가 지난해 12월에 국산신약 38호로 식약처 허가를 받았다. 현재 국내에서 중등도 이상의 급성 통증을 겪는 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는 비마약성 진통제는 어나프라주가 유일하다. 미국 외에 저너백스 임상이 진행된 국가는 임상 1상이 진행 중인 영국과 호주뿐이어서 저나백스가 국내에 도입되려면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비보존 제약은 국내에 머무르지 않고 미국 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포부다. 비보존 제약은 비마약성 진통제 파이프라인 'VVZ-2471'을 저나백스와 같은 경구용으로 개발 중이다. 올해 중으로 국내 임상 2상이 마무리될 예정이며 미국에서는 임상 2상을 승인받아 환자모집이 시작됐다.
비보존 제약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중단된 어나프라주의 미국 임상 3상을 올해 안에 재개할 예정"이며 "지난해 12월 국내 품목 허가를 받은 어나프라주와 개발 중인 VVZ-2471을 통해 주사제와 경구용 비마약성 진통제 라인업을 갖춰 미국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소듐채널 저해제 기반 비마약성 진통제 파이프라인 'SKL22544'를 개발해 지난해 4월 중국에 설립한 합작법인 이그니스테라퓨틱스(이하 '이그니스')로 기술이전했다. 현재 이그니스는 중국 임상을 준비하고 있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SK바이오팜이 이그니스테라퓨틱스의 1대 주주이고 SKL22544의 한국 판권은 무상으로 이전받을 수 있다"며 "이그니스의 R&D 역량을 기대하며 판권에 대해서는 향후 상황에 따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은 SKL22544의 미국 판권에 대한 우선협상권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웅제약 자회사 아이엔테라퓨틱스는 지난해 9월 경구용 비마약성 진통제 파이프라인 'iN1011-N17'의 국내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유럽에서는 임상 2상 진입을 앞두고 있다. iN1011-N17은 통증 신호 전달의 주요 경로인 Nav1.7 소듐채널을 선택적으로 저해하는 물질로 NaV1.7, NaV1.8 등을 포함한 소듐채널을 저해하는 SK바이오팜의 SKL22544와 기전이 비슷하다.
메디포럼은 천연물 기반 비마약성 진통제 파이프라인 'MF018'을 개발하고 있다. MF018은 계피에서 추출한 신남산을 활용해 신경병증성 통증에 관여하는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억제하는 기전을 갖고 있다. 현재 국내 임상 2상이 진행 중이다.
오피오이드·NSAIDs와 다른 수제트리진, 통증 치료 패러다임 바꾼다FDA 20년 만에 새 계열 치료제 승인 1일 2회 경구 복용으로 증상 완화 마약성 진통제와 달리 중독성 덜어
완전히 새로운 기전으로 통증 신호를 차단하는 비마약성 치료제가 미국에서 승인됐다. 신약은 기존 오피오이드 계열(마약 성분) 진통제와 작용하는 기전 자체가 달라 오남용 등 부작용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마약성 진통제 사용량이 늘고 있는 국내에도 희소식이다.
지난 달 30일 미국FDA는 버텍스 파마슈티컬(Vertex Pharmaceuticals Incorporated)이 개발한 경구용 비오피오이드 계열 통증 치료제 수제트리진(상품명 JOURNAVX™) 50mg을 중등도-중증 급성 통증이 있는 성인 환자 대상으로 1일 2회 용법, 용량으로 승인했다. 버텍스는 1정당 약 15달러의 가격을 책정했다.
수제트리진은 20년 만에 등장한 새로운 작용 기전을 가진 첫 번째 통증 치료제이다. 말초 신경계의 나트륨 채널(sodium channels) 중 NaV1.8을 선택적으로 표적함으로써 통증 신호가 뇌에 도달하기 전에 차단한다. 통증 신호를 전달하는 경로를 직접 차단하거나 감소시키는 것으로 이전까지 치료제와는 완전히 다른 작용 기전이다.
중증도-중증 수술 이후 통증을 겪는 환자에게 보다 안전하고 강력한 효과를 가진 신약을 쓸 수 있게 된 만큼 향후 몇년 이내에 막대한 매출을 기록하는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현재 사용 중인 오피오이드 계열(마약성 진통제) 통증 치료제는 모르핀, 펜타닐, 코카인, 트라마돌 등이 대표적으로 중추 신경계에 작용한다. 마약성 진통제를 장기간 사용 시 호르몬 이상, 호흡 억제, 중독 등 오남용 우려가 있다.
지난 2016년 미국FDA는 오피오이드 계열 마약성 진통제·감기약을 벤조디아핀 계열 또는 다른 중추신경계 억제제와 병용 시 호흡 곤란 등 심각한 부작용 위험이나 사망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이와 관련한 안전성 서한을 발표한 바 있다.
이번에 허가된 수제트리진은 뇌가 아닌 말초 신경에서 통증 신호를 차단함으로써 중추 신경에 작용하는 마약성 진통제 부작용 우려를 덜수 있다.
비오피오이드 계열에도 NSAIDs(진통소염제), 아세트아미노펜 등 유명한 약제가 있다. 수제트리진은 근본적으로 통증 신호 전달 자체를 차단하는 완전히 '새로운 계열'의 혁신성을 가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급성 통증을 겪는 많은 환자가 오피오이드 계열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해왔던 만큼 치료 패러다임을 바꿀 약제로 평가하고 있다.
실제 FDA는 비오피오이드 계열 진통제 개발을 오랜 기간 지원해왔다. 비오피오이드 R&D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개발하고 발표했으며 임상 진료 지침과 보조금까지 마련했다.
FDA는 이번 승인과 관련해 "급성 통증 관리에 중요한 이정표이다"며 "비오피오이드 진통제에서 새로운 계열 신약이 등장하면서 마약성 진통제 사용과 관련한 위험을 줄이고 새로운 치료 옵션을 제공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수제트리진은 급성 수술 이후 통증이 있는 874명의 환자(복부 성형술)가 참여한 무작위, 이중맹검 연구와 건막류 절제술(bunionectomy) 후 통증이 있는 256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단일군 시험에서 효능, 효과를 입증했다.
임상에서 통증 조절이 잘 되지 않은 경우 이부프로펜 사용을 허가했고, 두 시험군 모두 수제트리진이 위약군 대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통증 감소 효과를 더 많이 나타냈다.
임상 과정에서 가장 흔하게 나타난 부작용은 가려움증, 근육 경련, 혈청 크레아틴 농도 증가, 발진 등이었다. FDA는 "수제트리진은 CYP3A 저해제(strong CYP3A inhibitors)와 병용 사용을 금기하며, 복용 중에는 자몽(grapefruit)을 포함한 음식과 음료를 피해야 한다"고 권장했다.
버텍스 파마슈티컬 통증 치료제 신약 후보 파이프라인
버텍스는 수제트리진을 중등도-중증 급성 통증 이외에도 만성 통증 치료제로 사용하려고 계획 중이다. 말초 신경병증성 통증(PNP) 치료 영역와 당뇨병성 말초 신경병증에서 3상을 진행 중이며, 요천추 신경근병증 임상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수제트리진은 FDA 신속심사 프로그램에 따라 혁신신약(Breakthrough Therapy), 패스트 트랙(Fast Track), 우선 심사(Priority Review) 지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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