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케이( SK)하이닉스가 미국에 40억달러를 투입해 첨단 패키징 공장을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공급망 내재화 전략과 한층 치열해진 차세대 기술 경쟁 속에서 반도체 업계의 신규 투자가 계속되는 분위기다. 아직 전방산업 수요가 완전히 회복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투자에 따른 부담도 적지 않다.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실적 회복 흐름이 기대했던 것보다 완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7일 월스트리트저널 보도를 보면, 에스케이하이닉스는 40억달러가량(약 5조4천억원)을 투입해 미국 인디애나주에 첨단 패키징 설비를 지을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소식을 전한 복수의 관계자는 공장이 2028년 가동될 것으로 예상되며, 미국 반도체지원법( CSA)에 따른 세금 인센티브 등의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도 했다. 에스케이하이닉스 관계자는 “첨단 패키징 시설 투자와 관련해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반도체 업계의 설비투자 확대 움직임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삼성전자는 앞서 170억달러를 투입해 미국 텍사스주에 파운드리 공장을 신설한다고 발표했는데, 최근 반도체 보조금 협상에서 미 정부에 ‘추가 투자’라는 카드를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공지능( AI)에 활용되는 고대역폭메모리( HBM)과 관련된 설비투자도 지난해 대비 올해 2.5배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미국의 반도체 공급망 내재화 전략과 함께 인공지능 열풍이 촉발한 경쟁 심화 속에서 기업들의 투자 부담이 커지는 모습이다.
이미 일부 기업들은 이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고 있다. 자칫 업황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를 크게 늘렸다가 재무건전성이 흔들릴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곽노정 에스케이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이날 주주총회에서 “당해연도 매출액을 기준으로 설비투자( capex) 규율을 수립하고 준수해나가고자 한다”며 “과도한 설비투자 지출을 지양해 현금 수준을 높이고 재무건전성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당분간 아이티( IT) 수요가 더디게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는 점도 우려스러운 요인이다. 전날 시장조사기관 트렌드포스는 디램 가격 상승률이 올해 1분기 최고 23%에서 2분기 3∼8%로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아직 스마트폰 수요가 유의미하게 회복되지 않았고, 서버 시장에서도 ‘ DDR5’로의 세대 전환이 예상만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에서도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실적이 당장 큰 폭으로 개선되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전날 “(에이치비엠보다는) 모바일, 피시, 범용서버 등 전통 아이티 분야에 활용되는 칩의 수요가 본격적인 메모리 반도체 업황 개선에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소비를 제약하는 거시경제적 요인으로 인해) 업황 개선 속도는 완만한 수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반도체 업계는 고성능 반도체의 비중 확대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인공지능 쪽 수요가 계속 확대되면서 에이치비엠 같은 고부가가치 제품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면 다른 부정적 요인을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곽 사장은 “저희 전체 디램 판매량 중에 에이치비엠의 비트( bit) 수의 비중은 한 자릿수였다”며 “올해는 두 자릿수로 올라오기 때문에 수익성 측면에서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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