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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이 그르칠 수 있는 인생살이
필자가 농장을 경영하다가 28세 공직에 늦게야 나갔다. 1972년이니 오래된 이야기다. 내가 하던 농사를 아내가 맡아 하기란 힘겨운 일이었다. 마침 작은 자형이 생업인 운전사업이 불황이라 농사나 지으며 안전하게 살려고 했다. 그래서 우리 농사를 자형 부부와 아내가 같이 경영하기로 했다. 쌀농사는 수확량을 가르기로 하고 농사 비용은 같이 부담하기로 했다. 가을마다 벼농사 수확량을 가르는데 말로 돼서 나누지 않고 가마니로 갈랐다. 가마니가 일정하지 않고 큰 가마니와 작은 가마니가 있다. 욕심 많은 누님이 큰 가마니를 가지려고 욕심을 부렸다. 경운기로 자기 집에 가져가는 가마니는 큰 가마니를 가져가기 위해 우리 쪽에 싣지 말랬다. 가마니를 붙들고 싣지 말라고 자형에게 억지를 부렸다. 우리 집에 먼저 실어다 주려니 누님이 욕심을 부리는 일이다. 아내는 체면만 보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동생은 이것 없어도 잘살고 있으니 큰 가마니 벼는 자기 집에 가져가기 위함이다. 자형은 큰 가마니 벼를 우리 집에 주려고 하니 마음이 아팠던가 보다. 결국은 자형이 이기지 못하고 작은 가마니를 우리 집에 싣고 왔단다. 그 무거운 짐을 실어다 주는 일만도 고마워서 아내는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퇴근하여 집에 귀가하니 자초지종을 아내가 일러바치는 이야기다. 내가 분개하여 누님에게 한마디 하라는 내용의 의도가 다분하다. 그 말에는 내 마음이 움직이도록 수식이 더 강화되어 있음을 직감으로 느껴진다. 자형은 우리 농사 외에 다른 수입도 없으니 우리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너그럽게 봐주라고 했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고추장을 담는 따가운 심정이란다. 그래도 아내는 내심을 표현하지 않고 잘 참고 농사를 같이 지었다. 당시는 농토가 귀할 때라 수확량을 지주가 반을 가져가던 시절이다. 그래도 우리는 아내가 같이 일을 거들어서 자형에게는 농사에 도움이 되었다. 벼농사는 서로 수확량을 나누었으나 후작인 마늘 농사는 자형이 다 가져갔다. 마늘 농사가 어찌나 잘되어 주위에 좋은 책을 가지고 마늘재배 비법을 남에게 알려주지 않는다는 소문이 날 정도다. 마늘 값이 비싸 밭에 그대로 두고 평당 만 원을 주겠다고 밭떼기 사러 온다는 이야기다. 우리 논의 가격이 평당 5천 원도 받지 못하던 시절이다. 마늘 농사 한 평 지어 땅을 2평 더 살 수 있는 가격이다. 세상에 이런 농사 수익은 내가 처음 겪는 일이었다. 우스개로 "자형요 우리 마늘 논하고 자형 마늘하고 맞바꿉시다." 하고 이야기하니 어림없는 소리라고 즐거워했다. 당시의 마늘 가격이 금값인지 아니면 땅값이 나물값인지 그런 시절이었다. 그래서 몇 해 동안 자형은 마늘 농사로 목돈을 챙길 수가 있었다.
다른 논이 600평 외톨로 별도로 떨어져 있었는데 자형이 모두 짓기가 힘에 버거우니 마늘씨와 비료만 구해주면 마늘 농사도 같이 지어주겠다고 제안했다. 고소득을 혼자 차지하니 아내의 눈치가 보인 모양이다. 그래서 마늘재배 기술을 도움받아 아내도 마늘 농사를 짓게 되었다. 자형의 마늘재배 기술이 적중하여 마늘 농사가 풍작을 이루었다. 내리 3년을 마늘 농사 풍작으로 대구에 29평 아파트 한 채를 샀다. 아이들 상급학교를 대구시에 가게 되어 전셋집을 구하러 갔다가 집값이 폭락 시기라 전체 집값 1,500만 원짜리를 부채 8백만 원을 떠안고 700만 원 현금만 갖고 샀다. 당시 고금리 시대라 힘에 겨웠지만, 아파트 내 집을 가진 일이 아내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볏가마 나누어 가지던 불만도 깨끗이 씻어진 기분인 것 같았다. 서로 다투지 않고 참아낸 마음의 어진 결과가 이처럼 좋은 결실을 가져온 셈이다. 볏가마 크고 작은 다툼으로 싸움질을 했으면 허사였을 행운이다. 나는 아내에게 배려 깊은 마음의 결실이라 장하다고 마음을 부추겨 주었다. 아내도 매우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비록 우리 집 농기구와 아내가 거둔 암소의 힘을 이용하는 농사였지만 두 가정이 행운을 맞은 시기였다. 땅값보다 두 배를 더 받는 마늘 농사는 다시 못 만날 기회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마늘 농사의 성공재배로 자형은 80년대 제법 큰 농장을 마련하게 되었다. 두 가정의 화합이 이처럼 큰 성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에 나는 가장 큰 교훈을 경험했다. 만약 내가 아내의 일러바치는 불평에 덩달아 분개하고 싸움이라도 걸었으면 어떤 일이 발생했을 것인가 말이다. 남매간에 인정은 여지없이 끊어졌을 것이고 재물도 손해를 보기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사람 잃고 인정 잃고 돈 잃는 어리석음이 욕심에서 왔을 일이다. 요즘도 자형 내외분을 내 승용차로 모시고 맛집을 찾아 식도락을 자주 즐긴다. 계산대에 가기 위해 누님과 서로 옥신각신이다. 예전에 볏가마 큰 것 차지하려 다투던 형상과 비슷한 모습이다. 그러나 욕심을 부리는 일이 아닌 먹은 음식값을 서로 내겠다고 다툼이다. 아무리 비싼 고기 요리 먹어도 두 가정의 재정에 영향을 주는 일이 아니다. 지나온 일들이 욕망의 부끄러움으로 약솜 같은 마음의 닦아보자는 심사가 발동함이다. 그때는 왜 그랬을 까 하는 회한의 민망스러움이 느껴지는 일이다. 내가 아무래도 누님보다 형편이 좋으니 대접하는 일이 마땅하다. 그러나 누님의 마음도 헤아려야 한다. 누님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면 누님이 간혹 한 번이라도 한턱 쓰는 기회를 주는 일이 아내의 말마따나 그렇게 느껴진다.
현재 자형이 마련한 농장은 국도변이라 우리 큰 농장보다 면적은 적어도 몇 배나 더 비싼 시세에 오르고 있다. 마늘 농사로 번 돈을 적절한 시기에 요지에 투자했다는 일이 고맙기만 하다. 국도변의 땅값은 들판 한가운데 우리 농장과는 가격 차이가 컸다. 매입 당시는 사과나무가 안 되는 땅이라 우리 농장보다 값이 낮았지만, 도로변 위치가 상권을 형성하는 듯하다. 우리도 아직 농장을 그대로 소유하고 있어서 아들에게 고스란히 물려주게 되어 자형의 도움이라 생각된다. 욕심을 억제하고 마음을 사는 일이 이처럼 복된 일이 될 줄은 미처 생각되지 못했다. 90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하는 자형을 보면 그 너그러운 마음 때문이라 생각된다. 지난날 어려운 시기에 고생도 많이 했고 아웅다웅 삶의 보챔을 잘 견디어 낸 일이다. 서로가 언제나 만나면 미소가 그리워지는 모습이다. 이제 좋은 때를 만나 보람이 있었던 지난날을 되새겨 보게 된다. 늘 인정을 앞세우고 욕망을 줄이는 마음에는 정다움의 향기가 떠나지 않는 감동이다. 욕망의 눈을 한치 낮추면 가슴을 뜨겁게 데울 미래가 보인다. 진정한 사랑은 그 뜨거운 가슴에 아름답게 간직되는 미소 담긴 얼굴이다. ( 글 : 박용 2018.1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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