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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숙도둑(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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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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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642 2017/03/03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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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서숙도둑 / 박용

 

 

   아재는 흉년에 논 모내기를 못 했다. 샛강에 보를 막아서 들판에 물 데기를 하는 논이라 비가 오지 않으면 샛강이 말라서 모내기를 못 하게 된다. 초복이 지나도록 비가 내리지 않아서 드디어 논에다 모내기 대신 서숙 씨앗을 뿌렸다.

   서숙이란 조 이삭을 피워서 아름답게 보이는 작물인 조를 한자어로 서숙이라고 한다. 흡사 강아지풀 모양의 알차게 탐스러워 보이는 작물이다. 요즈음 식당에서 주는 밥에 노란색 좁쌀을 섞어서 밥맛을 돋우는 좁쌀이 서숙에서 정미된 알곡이다.

   그토록 가물었는데도 옥토인 논의 흙은 밤에 촉촉한 습기를 품어서 서숙 싹이 트고 잘 돋아났다.

   지금 같은 큰 수리시설이 없던 때라 모내지 못하는 가뭄은 잦았다. 이렇게 가뭄을 맞는 해에는 쑥과 산에 가서 칡뿌리를 캐어 와서 연명한다. 소나무가 남아있는 곳은 소나무 껍질을 벗겨서 죽을 쑤는데 보태기도 했다. 우리 민족들은 쑥과 칡과 소나무로 죽지 않고 여태 살아남은 민족이다. 한문 말로 초근목피로 연명해 왔다는 뜻이다.

   모질게도 625 같은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가뭄과 설상가상으로 더 혹독한 해가 되어 살아남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아남아 있는 일은 우리 조상의 신비스럽게도 견디는 인내력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때의 사람들은 지금 같은 불평은 아예 없었다. 오히려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그럴 겨를조차 느끼지 못했다. 산다는 일을 숙명으로 최선의 삶을 위한 수단 찾기에만 전념할 뿐이었다. 누구를 원망할 처지라곤 통하지 않는 세월의 냉혹함 뿐이다.

   마치 바둑에서 이세돌 9단의 알파고를 대항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누구의 도움도 처지의 안타까움도 행여나 하는 우연이란 미련의 기대도 통하지 않는 지경에 처한 일이다. 민족의 끈질긴 정신만이 생명의 위협을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상태를 이겨내야 했다. 그런 흉년을 역사 속에 얼마나 많이 겪었을까 소름이 끼치는 일이다.

   모심을 시기에 물이 있다고 성급하게 모를 낸 논이 뒷물이 떨어져 심은 모가 말라비틀어진 모양을 보면 아예 모를 포기하고 서숙이라도 심은 일이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이다. 모를 일단 한 번 심어서 말라진 논은 서숙 재배도 할 수가 없다. 주위에는 이런 논들이 수두룩하게 널렸다. 논마다 먼지를 폴폴 날리는 가뭄은 사람의 목줄을 사형수 목에 걸리는 사형집행장 목걸이나 다름없다.

   가뭄 속에도 파랗게 돋아난 서숙을 보니 신기했다. 아재는 서숙 심기를 참 잘했다고 즐거웠다. 가물어도 서숙은 잘 자라서 가을에 결실이 좋아 일 년 먹을 양식을 온전히 구할 것 같았다.

   들판에는 온통 콩과 팥을 심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온갖 잡곡을 심었지만 그래도 벼 다음으로 서숙이 가장 소출이 많은 곡식이다.

   간혹 물이 많이 나는 깊은 샘이 딸린 논은 모를 심어 쌀 구경을 드물게는 하는 집도 있었다. 올해는 그 혹독한 가뭄에도 온 가족이 연명할 수 있는 곡식을 구했다는 일이 즐거웠다.

   아재는 만족스러운 듯 토실토실하게 자란 서숙이삭을 흥이 돋는 콧노래를 불러가면서 낫으로 베어 말렸다. 들판 논바닥에 질펀히 널어 말리는 작업이 끝나면 이삭을 끊어다가 바숨을 한다. 미리 맛을 보려고 건조가 덜된 서숙 이삭을 끊어다가 서숙 쌀을 가마솥에 볶는 작업으로 건조시켜 먹어보니 먹을 만하다고 했다. 흉년을 당하여 배가 고픈 상황에 맛을 이야기할 처지인가 말이다. 그래서 애지중지 서숙 수확하는 일에 희망이 그득했다.

   날마다 서숙 건조 상황을 점검하다가 이거 웬일인가? 이삭이 끊어진 서숙 자락이 여기저기 발견되었다. 밤에 누가 몰래 와서 서숙 이삭을 끊어간 것이다. 서숙 농사가 하도 잘되어 서숙 이삭이 탐스럽게 자라 누구라도 탐을 낼 정도로 알차게 영글었다.

   도둑맞은 서숙이 아깝기도 하고 예술품처럼 곱게만 보이던 서숙 대궁이가 목이 달랑 끊어져 있는 현상을 보는 순간 아재는 눈에 불이 켜짐을 느꼈다. 괘씸하고도 괘씸한 일이다. 마음도 부글부글 끓어올라 참을 길이 없다.

   "세상에 어떤 자가 다지어 놓은 남의 곡식을 이따위로 난도질이야."

   아재는 주먹을 불끈 쥐며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가뭄 속에 온갖 정성을 다하여 가꾼 서숙을 잃어야 하는 아까움이 참을 수 없었다. 더 잃어버리기 전에 대책을 세워 꼭 지켜야 한다고 온종일 생각하며 골몰하였다.

   오늘 밤은 서숙을 지키기 위해 서숙 논 주변에 은신처를 마련키로 했다. 아무도 모르게 몸을 숨기고 밤새워가며 서숙도둑을 지킬 작정이다.

   “이놈 잡히기만 해 봐라. 요절을 내줄 것이다.”

   분한 욕심이 상기되어 단단히 벼르게 되었다. 논 구석진 곳에 은신처를 하나 만들었다. 논둑에 기대어 서숙 널린 자락을 이불처럼 안고 몸을 덮어 비스듬히 누웠으니 외부에서 보면 잘 보이지 않게 했다. 논 전체가 다 잘 보이고 감시하기 딱 좋았다,

   아직은 이른 가을 들판은 고요한 가운데 귀뚜라미 소리가 가곡 노래처럼 울어대고 달빛은 휘영청 밝게 온 세상을 무르익게 적시고 있다. 평소 같으면 저 달빛과 유성 따라 흐르는 금빛 빨랫줄에 마음을 아름답게 널어 말리고 싶은 낭만도 있을법한 분위기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어디서 듣던 아름다운 피리 소리도 이제는 마음이 가지 않는 심정이다. 밤하늘만 보면 아름다움의 애절함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집에 이렇게 누워 있으면 금방 잠이 오고 말 일인데도 통 잠버릇도 도망가 벼렸다.

   밤이 이슥해 자정이 넘어가는지 하늘의 삼태성이 서쪽으로 기울어져 시간의 눈금을 가늠케 한다. 저 멀리 달빛이 눈 부시는 쪽으로 무엇인가 그림자처럼 얼렁거리는 물체가 나타났다. 숨을 죽이며 살피니 분명 치마폭 같은 펄럭임이 보이고 달빛에 누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음을 직감했다.

   서숙 논 가까이 다가서며 머뭇머뭇 주위를 여러 차례 신중히 살피더니 아무도 없다고 믿고서는 갖고 온 가마니에 서숙 이삭을 끊어 담기 시작했다.

   달빛에 어슴푸레 보여도 분명히 남자로 이삭을 끊어 담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치마처럼 펄럭이던 것은 서숙을 담아갈 빈 가마니였다. 도둑이 여러 사람이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다행히 도둑은 한 사람뿐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도둑과의 거리가 100m 쯤 된다고 느껴졌다. 드디어 임무개시가 발동을 알리 듯 아재는 고함치며 도둑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신나게 알찬 서숙 알송이를 끊어 담던 도둑은 한발 늦게야 알아차리고 도망가기 시작한다. 서숙 논을 끼고 있는 큰 봇도랑을 향해 뛰며 넓은 봇도랑을 뛰어 건너다가 그만 넘어졌다. 봇도랑 깊이가 2m로 빠지지 않기 위해 젖 먹은 힘까지 다 했을까 싶다.

   뒤따라가던 아재는 긴 가랫장으로 도둑의 엉덩이를 내려쳤다.

   가랫장이란 작은 삽날 모양으로 3m의 긴 막대로 만들어진 농기구다. 창 대신의 무기로도 사용할 수 있는 일꾼의 치레 장구다. 무논에 직접 안 들어가도 간단한 작업을 논물 밖에서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든 농기구다. 지주농부의 호화로운 치장으로 지니고 다니기도 한다.

   “아이고 사형 사람 한번 살려 주소!”

   도망가지 못함을 재빨리 느끼고 엄살을 떠는 도둑은 다름 아닌 이웃 동네에 사는 먼 친척뻘 되는 사람이었다. 이런 항복을 미리 발설하지 않으면 두 번째 내려칠 가랫장에 도둑은 병신이라도 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달빛에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피니 그 사람이 바로 사형이 맞았다. 집에 못 갈 정도로 맞은 것은 아니므로 그냥 버리고 아재는 바로 김 서방을 찾아갔다. 김 서방은 아재보다 나이가 많아 평소에도 아재는 존칭을 쓰던 분이다. 마침 김서방은 깊은 잠에 바져 있었다.

   김 서방은 동생이 도둑질했다는 소식을 듣고 죽일 놈이라고 자기가 백배사죄하니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김 서방은 죄가 없는 데도 아재는 그 일로 하여 한동안 서운했지만, 모두가 굶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일을 너무 탓하는 것도 죄가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쯤에서 둘만 알고 그만 덮기로 했다. 그래서 사형과의 관계도 아무 일 없는 듯이 묻어주고 용서했다.

   욕심 많기로 소문나고 남에 대한 배려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아재로 알았지만,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일에는 관대했다. 참으로 너무나 놀라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오일장 날 시장에 가도 남에게 국밥 한 그릇 대접하는 일 없는 아재가 아닌가 말이다. 큰집에 지내는 제사에 참여하는 날은 맹물만 마시고 저녁밥을 굶고 참았다가 제삿밥은 두 그릇도 더 먹는 아재가 도둑에게는 이토록 관대하니 놀랄 일이 아닐 수가 있나 말이다.

   아재는 평소에도 욕심이 너무 많았다. 아재의 친 누님 즉 고모가 하는 말을 우리가 들어보면 동생이 시장에서 만나도 누님 점심 어쨌느냐고 식사 걱정 인사로 묻는 법이 절대로 없었다.

   "그야 고모가 그 말 나오기 전에 막무가내 동생을 도와주지 못해 안달 나기 때문에 그랬지요."

   실은 고모가 동생의 버릇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하는 편이 맞다. 어릴 적부터 아재의 누님은 엄마 대신 동생 밥걱정 옷 걱정 다 해 주니까 으레 시집가도 누님은 그러는 분이라고 생각이 굳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늙어지도록 고치지 못하는 아재의 버릇이다. 그 버릇은 아재가 대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동네 소문난 일로 이미 알려진 아재의 행위다. 그 버릇은 세 살 버릇 여든이라는 말처럼 아재의 평생 결함이 되고 말았다.

   6척 거구에 성격은 격해서 용서 못 할 일을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의 아재다. 한 번은 바느질하는 엄마 무릎 베고 자다가 잠결에 놀라 일어나 눈을 떠보니 방바닥에 온통 불덩이들이 널려 있었고 집안은 야단법석이 났다. 매캐한 불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재가 신혼살림을 따로날 때 전답을 한 필 더 주지 않았다고 바느질하는 인두가 꼽힌 화로를 방바닥에 엎어버린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혼자된 형수에게 폭력적 위협이었다. 성격상 욱하는 마음은 도저히 참지 못하는 욕심쟁이 아재다. 그래놓고는 뒤늦게 잘못을 느끼고 찾아와서 비는 일이 숟가락질 같았다.

   숙모님이 무골호인으로 너무나 마음이 착해서 아재와는 완전히 딴판의 성격이었다. 그래서 아재가 잘못을 저지르는 일에는 자기가 대신 용서를 빈다. 이튿날 아재는 아침 일찍 형수를 찾아와서 죽도록 후회하는 잘못을 저질렀으니 용서해 주길 빌었다. 아재가 형수님에게 사죄하는 일도 너무 많이 겪어보았다. 아마도 밤이 새도록 아재가 부인에게서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하라고 한 부대낌의 내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글이나 행동이나 사람 됨됨이가 친형을 그렇게도 닮지 않았을까 하고 탄식하는 말을 자주 들었다.

   아재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은 그래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재물에 대한 욕심은 그렇게도 많았으나 이런 마음을 쓰는 일은 퍽 다행한 일이었다. 그 형편에 당시 아들 고등학교 시키기는 어려웠는데도 자식을 모두 고등학교 교육을 시켜서 졸업장을 받도록 했다.

   나는 초등학교 밖에 못 나왔지만, 농촌에는 고등학교 가는 학생이 드문 시절이었다. 그 당시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공부 잘하면 초등학교 선생을 지낼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먹고 입는 일은 줄이고 줄여서 거지생활이나 다름없는 생활을 하면서 주위의 뭇 시선을 따갑게 받아도 흔들리지 않는 검소한 생활의 표본이다. 그러니 남에게 선심 쓰는 일은 할 겨를이 없었다.

   덕을 쌓아야 후손이 잘된다는 이야기도 통할 턱이 없다. 논밭 한 뙈기 더 사려고 먹고 싶은 음식 참고, 입고 싶은 치장은 아예 외면하면서 살아왔다. 어쩌다 품삯을 벌게 되면 그 돈 사용불허를 먼저 정하는 고집과 욕심이다.

   농사일하는 소를 기르면 돈이 증가 안 되므로 우리 집 큰 소를 마음대로 부리고 아재는 항상 송아지 두세 마리씩 기른다. 어린 소는 풀만 먹고도 잘 자라므로 키워서 팔면 두 해마다 논을 사들이는 농가가 된 다. 농사에 부리고 일하는 소는 우리 큰 소가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니 아재처럼 나도 일소를 팔아서 송아지를 두세 마리 길러 돈을 모아야 하겠구나 싶었다. 내가 우리 큰 소를 팔아서 논을 사야겠다고 하니, 아재는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 하고 겁을 준다. 소를 팔지 말라고 하는 말이다.

   남에게 좋은 일을 해야 자식들도 잘되고 복을 받게 된다고

   “좋은 생각하는 아재가 되어 주세요.”

   "하면 귀신 신나락 까먹는 소리란다. 재물 아무리 많이 모아 두어도 돌아가실 때는 빈손으로 간다고 좋은 음식도 잡숫고 남에게 칭찬받는 일도 하시라고 하면

   “그런 생각 가지면 며칠도 못살고 굶어 죽을 것이다.”

   절약하며 사는 인생이 아니면 낭비 속에 허송세월 보내는 인생이 되고 만다는 지침을 앞세운다. 낭비하는 생활에는 미래가 없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기는 하나 남이라 할지라도 사람 사이에 우리가 되는 배려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생각이 아쉽기만 하다.

   아재는 철두철미한 생활 달인의 기능을 갖고 있는 억척스러운 데가 있다. 농기구인 삽이나 괭이 또는 호미를 누가 빌려 쓰고 반환하면 꼭 한마디 쓴 소리를 배우고 온다.

   빌린 삽에 흙을 깨끗이 닦지 않고 대충만 털고 반납하기 때문이다. 아재의 삽은 녹슬 날이 없다. 언제나 반들반들하다. 삽에 흙을 묻은 채로 두면 반드시 녹이 슬고 녹이 슨 삽은 작업능률이 4분의 1로 감퇴를 가져온다. 그리고 작업하는 중에도 흙이 눌어붙어서 노력이 배가 되어 힘들기 때문이다. 농사 작업에는 이보다 더 지장을 받는 일이 없을 정도로 방해가 크게 나타난다.

   실제로 진흙을 다스려보면 삽날에 흙이 짓이겨 붙어서 그것 떼는 일도 더 큰 일이 된다.

   자동차 엔진오일 교환할 때도 폐오일을 알뜰히 빼지 않고 새로운 오일을 부으면 난리가 난다. 반드시 남은 폐오일이 없는지 확인을 거쳐야 한다.

   한 번은 작업자가 확인하기 전에 새 오일을 부었다고 다시 새것으로 넣으라고 매섭게 싸움한 일까지 있었다. 하기야 쟁기나 호미 같은 농기구에 흙을 붙여 놓으면 수명도 짧아지고 작업효율이 엄청나게 떨어진다. 아재의 이런 까다로움으로 인하여 사람들은 같이 일하기 꺼린다.

   아재를 따라 처음으로 나는 논매러 호미를 들고 따라갔다. 하루를 논매기하는데 참아내기가 너무 힘들었다. 이런 일은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아직 햇병아리 일꾼이라 힘들지?”

   아재는 나를 놀리는 듯 장난기로 일꾼이 되기는 아직 멀었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다. 벼 심은 무논에서 무더위에 논매는 일은 참으로 견뎌내기 어려웠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하고 궁리하는 숙제로 남게 하였다. 땀이 비 오듯 온몸을 적시고 허리도 아프고 목은 갈증으로 타는 듯했다.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라 다시는 호미 논매기하기 싫어졌다. 이런 경험으로 나는 호미로 논매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이미 개발되었지만 사용하지 않고 버려져 있는 기계를 이용하기로 했다. 이 논매기 기계는 제초기라고 했는데 두 손으로 모심은 이랑을 밀고 나가면 달린 두 개의 바퀴로 논매기가 된다. 일의 능률이 퍽 효과가 있고 빠르고 엎드리지 않고 서서 하므로 힘도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제초기를 개발해 두고도 사람들은 사용을 꺼린다. 문제는 이랑과 이랑 사이 제초기가 지나가지 않아서 빠지는 남는 곳이 생겨서 여기 잡초를 제거하지 못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궁리 끝에 이의 해결을 위해 모내기할 때 세로줄을 못줄로 하나 더 마련하여 고정해 둔다. 평상시엔 가로줄만 쓰는데 정조식이 되게 이 세로줄 기점으로 가로줄을 옮기면 된다. 결과는 가로세로 이랑이 생기는 정조식 모내기가 되는 일이다. 못줄에는 모심을 자리가 표시되어 있기에 표시에만 묘를 심으면 된다. 아재는 모내기 일손이 너무 더디다고 불평했지만, 나는 고집을 세우며 우리 논만은 이런 방법에 따라주도록 강조했다. 모를 낸 뒤에는 일주일 안으로 반드시 김매기를 해야만 한다. 첫 김매기한 뒤에는 3일 만에 세로줄 김매기를 또 해야만 한다. 이렇게 시기를 철저히 지켜야 내가 개발한 모내기는 크게 효과를 내기 때문이다.

   이런 절차를 무시한 다른 사람들은 모내기 한 후 관행으로 10일 넘게 지나서 첫 김매기를 하므로 잡초를 제거하지 못하여 제초기를 나무라고 사용하지 않았다. 잡초가 너무 자란 뒤에 하는 제초작업은 효과가 그만큼 줄어든다.

   모를 낸 논의 김매기는 제초기를 제대로 사용하면 5분의 1도 힘들지 않았다. 아무리 큰 일꾼이라도 호미로는 하루 한 마지기 일하기 어렵지만, 제초기를 사용하면 다섯 마지기도 더 할 수 있었다. 나의 이런 쉬운 농사법 개발에도 아재는 콧방귀만 뀐다.

   “조카는 제초기 즐기다가 논을 모두 묵힐 것이다.”

   그런데 아재가 나중에 매우 놀란 일은 나의 논은 거울같이 깨끗한 논 매기가 이루어졌다는 일이다. 눈을 닦고 다시 봐도 잡초 발견이 없다. 논 열 마지기 논매기하자면 상당히 많은 인력이 요구되지만, 제초기 매고 흥얼거리며 노는 듯이 하는 나의 논이라 얕잡아 본 때문이다. 이렇게 혼자 일로 이토록 깨끗하니 욕심 많은 아재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자기는 큰일꾼이라 품앗이로 혹은 놉으로 많은 인력을 쏟았으나 나는 혼자 노래 부르며 노는 듯이 한 농사가 이렇게 효과를 거두었으니 호기심이 발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다른 사람은 제초기를 사용하니 온통 잡초가 들판 잔치를 벌이던데 어쩐 일인가?”

   “그야 제초기 사용 법칙을 지키지 않아서 그렇지!”

   “어떤 법칙인데?”

   “쉽게 가르쳐 줄 수 없는 비법인걸”

   아재가 좀 안달하도록 골리려는 방법이다. 아재가 조르기 시작이다. 자기가 득이 될 일은 무슨 방법이든 알아야 하는 성미다. 이 성미에는 도저히 내가 당해낼 도리가 없다.

   “모내기하고 5일에는 반드시 첫 번 제초작업을 가로로 밀고, 다음 4일 안에 세로 이랑 제초작업을 꼭 지켜야 하지”

   그래도 듣기 어려운가 보다. 농민들은 연구를 개을리 한다. 농사 작업에도 실험하는 정신이 필요하다. 제초기 사용에 실패하는 일을 보면 작업 시기를 놓치기 때문이다.

   잡초의 성질에 발아 초기에 흙탕물을 덮어쓰면 저절로 죽는다는 이치를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이론을 어른들의 말에서 발견하고 들어서 내 것으로 만들었다.

   “볍씨를 뿌려두고 구정물을 넣으면 싹트는 벼의 모가 모두 죽는다.”

   이 엄청난 사실을 사람들은 건성으로 듣고 잊어버리기 때문에 호미 논매기에 그렇게도 고생하면서 여태까지 벗어날 줄을 몰랐다.

   볍씨가 구정물에는 싹이 트다가 죽는다는 이치는 잡초에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아재는 다음 장날 바로 모내기하는 신식 틀 자와 제초기를 사 왔다. 내 것보다 최신식 기계다. 나는 아직 못줄을 가로세로 두 개로 사용하지만, 아재는 한술 더 뜨는 욕심을 또 보였다.

   아재는 이런 기술을 듣거나 발견하면 눈여김을 명확히 하여 절대로 잊어버리지 않는다.

   내가 아재께 배운 기술도 있다. 보리농사가 한창이던 때다. 보리쌀을 영양가 높은 곡식이라고 장려하던 시절이다. 농가에는 집집마다 보리갈이 하고 있다. 밭에 보리갈이는 쉽지만, 논에 보리갈이는 꽤 곤란한 작업과정이 많다. 논의 흙은 논매기 작업으로 땅의 흙이 짓이겨져서 질그릇 만드는 재료같이 되어 있다. 이런 형태로 굳어진 흙을 모래흙처럼 부드럽게 만들어야 보리가 싹이 돋아날 수 있다. 덩어리가 맺힌 흙을 고무래로 부수는 작업도 인력이 많이 드는 일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고무래 작업 일을 줄이려면 쟁기질부터 잘 사용해야 하는 기술을 아재는 발견한 것이다.

   “신삐 초보 농군은 쟁기를 단번에 보리골이 되게 밀어붙인다.”

   보리 씨 뿌릴 이랑은 쟁기질을 누구나 두 번씩 훑어서 만든다. 그런데 경험이 없는 사람은 첫 번째 작업을 완성 이랑처럼 만들고 재손질 쟁기질에는 그냥 고치는 정도로 일을 거꾸로 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아재의 말이다. 모래질의 토양에서는 상관없는 일이지만 점질토양에서는 뒷손질인 고무래 작업을 너무 수고롭게 만드는 일이 된다.

   “첫 번 쟁기질은 흙의 표면을 거죽만 얇게 긁어 표시만 내고 두 번째 재벌작업에 깊게 해서 완성 이랑을 만들어야지”

   그렇다. 볏논일 때에 김매는 작업으로 흙물의 보드라운 흙가루로 도자기 만드는 재료처럼 접합성 강한 흙이 땅 표면에 2cm 정도의 두께로 덮여 있다. 이 흙이 굳어져서 건조되면 도자기처럼 단단해진다. 이 굳어진 2cm 두께 층을 얇게 쟁기날로 부수는 첫 번 쟁기질이 기술이다. 고무래질의 목적은 흙을 잘게 부수어 부드럽게 하여 씨앗 뿌리가 잘 내리게 하기 위함이다.

   고무래질의 작업량을 쟁기 날이 미리 줄여주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저런 욕심쟁이에게 어떻게 이런 좋은 생각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누구에게 배운 일이겠지 했으나 순전히 아재가 눈여겨보고 알아낸 생각이었다.

   논바닥의 흙은 사람 피부처럼 단단한 겉층이 있었다. 점질토의 논은 조사해 보면 다 그렇다. 2cm의 표층 아래는 모래층이나 연한 층으로 발생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2cm 표층을 반으로 얇게 절미는 쟁기 초벌작업이 가장 중요한 효력을 필요로 했다. 즉, 첫 번 쟁기질에서 표층을 1cm 두께로 갈라놓아야 한다는 철칙이다.

   이런 정신으로 살아가니 회갑을 지낼 무렵까지 알뜰한 절약 정신은 남에게 돈 빌리러 가는 일이 없다. 삶의 보람을 재물 모으는 정성에 살아온 아재다. 재물경쟁에는 이웃도 친척도 돈보다 더 가까울 수는 없었다. 살아가는 목적과 보람은 모두 재물을 지키는 일보다 바쁠 수는 없다. 그것이 살아가는 재미고 극락왕생이며 낙원이고 일생을 살아온 바탕이다.

   아재가 회갑을 지나 진갑에 신병이 생겨서 병상에 눕고 말았다. 재물은 아들 넷 사람에게 고루 나누어 주는 명목을 남겼다. 생활의 굳은 신념을 강하게 지니고 일생을 보람 있게 살았다고 느끼며 이 세상을 마지막으로 하직했다.

   아직 숙모님이 계시니 숙모님 살아계실 동안은 두 분이 알뜰히 모은 재산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고도 한참 오랜 세월이 흘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막내가 체육인으로 사회활동을 하면서 대졸 출신의 신부와 결혼하게 되었다. 신부가 신랑감의 기능과 장점을 발견한 모양이다.

   결혼 후에 체육관을 설립해 주면 크게 성공할 것이라고 가족들에게 장래 희망을 피력해왔다. 혹시 희망하는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막내의 결혼에 지장이 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재의 큰아들이 형제 동생과 의논을 위해 가족회의를 가졌다.

   “아버지 농사짓던 땅이 얼마 되지도 않지만, 나는 이거 없어도 살 아 갈 수 있으니 나의 몫은 막냇동생 체육관 마련하는데 보탰으면 하는데, 너희들은 어떻게 하겠나?”

   하고 아우들에게 의견을 물은 것이다. 사실은 네 사람이 다 아버지 유산 몫을 나누어 가졌으니 형의 마음을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며느리들의 불만도 없지는 않았지만, 형제들 합의로 모두가 동생의 체육관 마련에 받은 재산을 맡기기로 했다. 여동생과 숙모님이 제일 좋아했다. 여동생이 마치 전에 고모처럼 동생 도와주기에 앞장선 기분이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합의가 이루어졌을꼬.”

   그 소리를 들은 나는 반갑기 그지없었다. 나중에 나는 지금 아재가 다시 살아오셔도 허용 안 될 일인데 너희들이 참으로 장한 생각을 했다고 형제간의 우애를 크게 칭찬했다.

   대도시에 체육관을 마련하여 경영하는데 운이 따랐는지 영업이 날로 번창하여 엄청나게 많은 재화를 벌었단다. 돈을 벌게 되니 알찬 경영을 유도해야 하는데 사업에만 욕심내어 자꾸 일을 벌였다. 제2 체육관 제3 체육관 이렇게 점포를 늘렸다. 개업식에 참석해보니 대도시라 그런지 지방의회의원 의장 모야 등 유지들 꽃도 함께 그득히 들어차 있었다. 제법 정가에까지 유지행세가 되는가 싶었다.

   이제 아버지가 못다 한 자선사업과 좋은 일에 큰 도움 되는 일을 하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속으로 아재같이 개인 욕심으로 아무리 재물을 모아도 지닐 자손이 덕을 쌓지 않은 재산을 지킬 것인가 하고 걱정한 생각이 오히려 부끄러웠다. 그래도 형제들의 우애가 덕망을 키워 이룬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일정한 한도를 벗어난 재산은 경영능력이 필요하다. 사업도 마찬가지다. 사업의 규모가 커져 점포 수가 늘어나는 만치 경영수완도 비례하여 적응을 이루어야 기업성장이 제대로 유지된다. 아재는 너무 욕심이 많아서 주위를 살필 여념이 없었다. 그래도 자기가 하는 일에는 절대로 남에게 의존하지는 않았다. 농사에 사용하는 기계를 녹슬게 하지 않는 정신이다. 미리미리 점검하는 일에는 절대로 소홀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돈에 대한 실패는 없었다.

   숙모님이 노환으로 병원에서 위독하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급히 달려가 도착해보니 조카를 알아보시기는 해도 회복이 어려울 것 같았다. 간병인에게 우선 돈을 드리며 먹고 싶다는 것이 있다면 해 드리라고 했다. 숙모님이 젊을 때는 아름다운 모습이었지만, 이제 앓고 있는 병으로 몹시 야위었다고 생각되었다. 잡은 손의 감각이 사늘하고 그렇게 반갑게만 보는 시선도 이제 피곤한 모습이다. 젊은 시절에는 학교만 다녔더라면 연예인이 되었을 거라고 나는 평소에 자주 느낀 일이 생각난다.

   하나뿐인 딸이 곁에서 연신 눈물을 글썽인다. 나도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아서 억지로 참았다. 아무리 노환이라지만 회복되기 어렵다는 생각이 눈앞에 안개처럼 포개진다.

   막냇동생의 사업에 문제가 생겼다고 급하게 연락이 와서 거기로 향했다. 사업이 잘된다고 소문이 나더니 무슨 문제가 발생했다는 말인가 믿어지지 않았다. 도착해서 들어보니 형제들이 벌써 기다리고 있었다. 내 차로 함께 온 딸도 어리둥절해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내용인즉 사업을 너무 확장해서 경영부실이 발생한 것이다. 지금 점포가 은행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으니 살릴 길이 망막하다는 일이다. 사업이 잘된다고 은행 빚을 겁내지 않고 점포확장에만 욕심을 낸 일이 잘 못되었다.

   건물의 전세계약도 등기상에 근저당설정 내용을 알아보고 계약할 일인데 후순위가 되면 계약금을 떼인다는 것도 몰랐나 보다. 한 체육관에 들여놓은 기구들이 수억이 넘는데, 건물 전세금은 다 날아가게 되었다. 다시 계약금을 마련하려니 돈이 필요하다는 일이다. 한 일억 원만 있어도 우선 다급한 불은 해결될 것 같다는 말이다.

   내가 얼마간 부담할 테니 많은 돈은 너희 형제들이 부담하겠느냐고 제의해 보았다. 이번에는 딸도 나서서 그러겠다고 합의하여 우선 다급한 불길은 잡았다고 생각되었다. 그런데 이번에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 있으니 단단히 들으라고 하고 당사자인 막내에게 주의하라고 하여 일렀다.

   “이 돈을 가져가서 원만하게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하여 주니 만약 불가능하다고 판단되거든 돈을 형제들에게 모두 되돌려 주고, 막내 네가 결손처리 해라”

   단단히 당부하고 돌아왔다. 돌아오는 중에도 온갖 생각이 불길한 상념을 이루며 마음이 개운치 못했다. 인간의 욕망은 한계를 몰라서 세상이 제 것인 양 젊은 마음이 너무 부풀었다고 생각했다. 아직 젊은 사람들은 세상을 보는 눈이 너무 쉽게만 본다. 남의 돈을 빌려다 쓰는 일을 아무렇지도 않게 겁 없이 생각한다는 느낌이다.

   아재가 그렇게 아끼고 모아서 이제 배고픔을 면할 줄 알았으나 숙모님이 살아계시는데도 재산이 거덜 나게 생겼다. 어떻게 아끼고 벌어서 모은 재산인데 생각하면 눈물 나는 일이다.

   숙모님 평생에 마음에 드는 좋은 옷 입지 못하고 먹고 싶은 음식 한 번 제대로 먹어본 기억이 없을 일이다. 아재가 손수 지은 반 흙집에 문화시설이 전혀 없는 불편함을 참으며 평생을 살아왔다.

   TV도 우리 집에 와서 매일 보았다. 담배는 어이 그리 심하게 피워서 우리 아이들이 담배 연기를 손으로 내저으며 귀찮아해도 아랑곳하지 아니했다.

   막내의 사업에 대한 걱정은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는 숙모님은 몰라야 편할 일이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숙모님이 운명하셨다는 부음이다. 전화를 받으려는 순간은 막내의 소식인 줄 넘겨짚었으나 생각 외의 안타까운 소식이다. 법 없어도 산다던 어진 숙모님은 세상 고된 어려움 다 머리에 이고 힘겨운 일생을 참아왔다. 불편하게 모든 일 다 참으며 살아오셨다. 밖에 나가서 조카 자랑 너무 하신다고 내가 나무란 일들 생각하면 눈물이 자꾸만 난다.

   숙모님 빈소에 도착하고 보니 막냇동생이 보이지 않아 어디 갔느냐고 하니, 1억 원 그것 같고 사라졌단다. 반드시 성공하여 형님들 신세를 꼭 갚겠다는 쪽지를 남기고 사라졌다는 말이다. 1억 원을 빼내기 위해 우리를 속인 것이다. 괘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빈소에는 그래도 많은 손님들이 조문했다. 손님들이 많았고 조의를 표하는 화환도 세워둘 곳이 없을 정도로 많아 건물 바깥에 세우기도 한다. 상주들 손님이 많은 걸 보면 사회활동에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귄듯하다. 손님들과 인사를 나누면 많은 손님들이 막내의 친구 거나 아는 사람들이다.

   나는 손님들이 있는 방에 있으니 내가 나이가 좀 들었다고 나에게 일부러 인사를 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다수 잠깐 조의 말씀과 안부를 나누고 마친다. 그런데 낯선 사람이 인사를 하며 긴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해서 조용히 경청했다.

   40살이 될까 한 나이에 말씀을 하대하라고 한다. 누군가 했더니 김 서방이라는 사람의 조카라고 했다. 그렇다면 서숙을 잃어서 도둑을 잡았다고 아재가 일러서 사정하던 김 서방 그 사람이라는 말이다. 바로 서숙도둑의 아들이란다.

   “자네가 어떻게 알고 이렇게 왔는가?”

   자기는 지금 대구에 살고 있으며 고향에서 자랄 때 아버님 말씀을 잊지 못하여 이렇게 참석하게 되었단다. 아버님은 생활고를 견디지 못하여 죄를 범하게 되었지만, 바로 고발하여 고생시키지 않고 선처를 해 주신 일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자기 아버지가 은혜를 못 갚더라도 너희는 잊지 말라는 유언을 받았다는 것이다. 우연히 친구로부터 초상 소식을 듣고 이렇게 찾아와 조문할 기회가 되었다고 했다.

   “대단히 고맙구나, 요즘 젊은 사람의 생각이 아닌 일이네”

   “아닙니다, 아버지에 대한 은혜는 백골난망입니다.”

   “그럼 지금 대구서 하시는 일은?”

   “조그만 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서숙도둑의 아들은 사업에 성공하여 지방에서도 돈을 잘 버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었다. 명함을 보니 태성산업 회장이라 된 명함이다. 우리 고향 사람으로 꽤 성공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장례식장 입구에는 수행한 일행인지 따라와 기다리고 있었다. 회장의 경호를 담당하는 수행원이라 여겨진다.

   “고맙네! 참 어려운 일을 하시는 걸 보면 존경스럽네”

   “아닙니다, 고향에 계신 어른이시니 다음에라도 찾아뵙겠습니다” 인사를 차리는 자세나 풍기는 행동거지가 교육을 제대로 받은 사람이라 느껴졌다. 처음 보는 사람의 느낌도 믿음성이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는데 이럴 때 느낌이 바로 그런가 보다. 너그러움이 가득 풍기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되었다. “여기 와서 들었는데 막내 상주가 부도 상황이라 들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글씨나 어쩌겠나?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인 것을 할 수 없지”

   “제가 큰 도움은 드리지 못하지만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말씀만으로도 고맙네” “그럼 가겠습니다. 어르신 만수무강 하십시오.”

   서숙도둑의 아들이 어쩜 저렇게 반듯하게 자랐나 싶게 예의 바르고 사람 됨됨이 제대로 자리매김이 된 사람이다.

   사람 팔자 아무도 모른다는 옛말처럼 서숙도둑의 아들이 저런 교양을 지녔다니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을 것처럼 생각된다. 아제보다는 서숙도둑의 자제가 훨씬 더 교육이 잘된 사람으로 느꼈다.

   숙모님의 장례식에는 막내가 참석하지 않아 가장 마음에 걸렸다. 이놈은 정신부터 다시 깨끗한 물에 세탁하여 끼워야 할 놈이라고 나는 다른 동생들 들으라고 힘주어 말했다. 인륜이 무엇인지 사람도리가 어떤 일인지 도무지 모를 이놈을 그냥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례식장이 떠나가도록 울어본들 다 소용없는 일이다.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즐겁게 해주는 자식이 제일이다. 숙모님 고생하시며 악착같이 아껴 모은 재산은 결국 숙모님 한평생도 견디지 못하고 거품처럼 사라지다니 가슴이 너무 아프구나.

   장례식을 마치고 삼우행사도 마쳤다. 상주들이 모여 앉아 상례 동안 사용한 재정을 정리하고 부의금도 계산 했다. 부의금이 막내의 친구들한테서 매우 많이 들어와서 상례 비용 쓰고도 돈이 남았다. 장례가 장사 된다는 사회의 유행하는 말이 이래서 나왔나 보다.

   여기에 남은 돈은 큰상주가 자기 남매들에게 공평 지게 나누어 주었다. 동생들이 절대로 받을 수 없다고, 맏형이 다 가져야 옳다고 주장했다. 큰상주는 그러는 일이 형제 사이의 우애가 더욱 다정해질 수 있는 방법이라고 듣지 않았다. 막내에게 부모의 유산을 모아 줄 때와 같은 형제간의 우애가 남다른 일로 또 다시 소생하는 듯했다. 슬픈 일을 당한 후라도 가상한 형제 사이의 우애를 지켜보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기쁜 일이 있었다.

   큰상주가 중대한 발표가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고향친구가 성공한 사람이 있어서 막내를 도와준 일이다. 김 사장이라고 초상 시에 문상 왔던 친구였다. 즉 쉽게 말해서 옛날 서숙도둑의 아들이 부도난 막내의 체육관을 새로 정리하여 부도를 막고 다시 경영하도록 주선해 주었다는 일이다.

   마침 부도난 체육관 건물이 그 김 사장의 건물로 인수하여 등기되었단다. 체육관 건물 전체가 채권자 은행이 법원경매에 부쳐 넘어가게 되자 김 사장이 법원경매에서 인수하게 되었단다. 막내는 김 사장의 도움으로 다시 경영권을 찾게 된 일이다. 수소문 연락하여 막내를 찾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나는 속으로 그놈은 타고난 복이 엄청 많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악착같이 끌어 모은 재산은 모두 거품이었고 서숙도둑에게 굶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 일을 너무 탓하는 것도 죄가 된다고 믿었다는 착한 생각이 보석처럼 반짝인다. 재물에 대한 욕심 많기로 소문나고 남에 대한 배려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아재로 알았지만, 굶어 죽지 않기 위한 일에는 관대했다는 너무나 놀라운 일만 아름다운 이야기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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