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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극초음속 미사일에 난타당한 우크라이나게시글 내용
지난해 12월 말부터 올해 1월 초까지 러시아는 500발에 가까운 미사일과 각종 드론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전역을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이 과정에서 한 번에 미사일 100~200발을 쏟아붓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방공무기를 총동원했지만 모든 표적을 요격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개전 초부터 서방 세계에 방공무기 지원을 호소한 우크라이나는 현재 우수한 성능의 방공무기를 여럿 보유하고 있다. 걸프전에서 ‘미사일 잡는 미사일’로 불리며 명성을 떨친 미국 패트리엇 시리즈, 유럽 최고 중거리 방공 시스템이라는 프랑스·이탈리아의 SAMP/T와 독일의 최신형 방공 장비 IRIS-T SLM이 그것이다. 이들 미사일은 어지간한 공중 표적에는 매우 높은 명중률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신형 패트리엇 PAC-3는 러시아가 자랑하는 극초음속 미사일 ‘킨잘’을 여러 차례 격추해 명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사실 우크라이나군은 상당히 유리한 여건에서 방공전을 치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러시아 주요 군사기지의 동향을 담은 공개출처정보(OSINT)가 실시간으로 올라와 우크라이나군 당국이 요긴하게 쓰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조기경보기와 정찰기도 우크라이나 주변을 돌면서 러시아의 공습 징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서부 지역은 산이 거의 없는 광활한 평야라 항공기가 숨을 곳이 없다. 이에 양국 공군기지에서 어떤 항공기가 언제, 어느 방향으로 이륙하는지 등 ‘정찰보고’에 가까운 정보가 SNS에 계속 올라온다. 인근 주민들도 육안으로 식별 가능한 순항미사일이나 드론이 어디에서 나타나 어느 쪽으로 날아가는지 당국에 신고하고 있다. 공중 표적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파악할 수 있기에 방공 전투가 그리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그 덕에 우크라이나군은 러시아의 아음속 순항미사일이나 샤헤드-136 같은 저속 자폭드론에 대해선 매우 높은 요격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순항미사일은 시속 600~800㎞, 샤헤드-136은 시속 110~150㎞로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기에 식별 및 요격이 쉬운 편이다. 그렇다면 러시아는 어차피 격추될 것을 알면서도 값비싼 순항미사일이나 자폭드론을 왜 이렇게 많이 날려대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레이더에 잘 걸리는 순항미사일과 자폭드론은 우크라이나군의 이목을 끌기에 기막힌 미끼다. 우크라이나 방공 부대가 이들 공중 표적에 집중하는 사이 ‘진짜 펀치’인 다른 미사일을 쏟아부으면 공격 효과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비행 속도·고도·궤도가 제각각인 발사체를 동시에 퍼붓는 ‘하이브리드 타격’은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골치 아픈 공격이다. 방어자가 보유한 레이더와 감시 가능한 구역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여러 방향에서 제각기 다른 고도와 속도로 접근하는 표적을 모두 탐지·추적해 요격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가령 우크라이나군이 보유한 패트리엇 시스템의 AN/MPQ-53 레이더는 탐지 모드에서 좌우 120도, 추적 모드에선 좌우 90도를 감시할 수 있다. 이 레이더는 하늘을 67.5도로 올려다보는 형태라 탄도미사일처럼 고고도에서 내리꽂히는 표적은 효과적으로 탐지할 수 있다. 반면 낮은 고도에서 접근하는 표적을 찾아내기는 어렵다. 게다가 설치된 후에는 레이더 빔의 방사각도를 바꿀 수 없는 것도 약점이다. 레이더 측면이나 후면에서 표적이 접근해오면 대응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런 취약점은 우크라이나가 사용하는 레이더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문제다. 우크라이나가 독일로부터 받은 고성능 능동전자주사식위상배열(AESA) 레이더 TRML-4D만 해도 회전식이라서 360도 전 방향을 실시간 탐지하는 데 제약이 있다. 회전식 레이더는 아무리 빨리 회전해도 특정 지점을 다시 감시할 때까지 시간적으로 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고속 비행체나 레이더 반사 면적이 작은 드론·순항미사일을 실시간 추적하기가 어렵다.
러시아군은 최근 공습에서 우크라이나군 방공망의 취약점을 파고드는 전술을 선보이고 있다. 기존에는 미사일과 드론을 한 방향에서 나란히 날렸다면 최근 들어선 다양한 각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쏘고 있다. 가령 러시아군은 개전 초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겨냥해 자국 북부 도시 브랸스크, 쿠르스크나 벨라루스에서 미사일과 드론을 발사했다. 반면 최근에는 동부 도시 벨고로드와 보로네시는 물론, 크림반도와 헤르손주 점령지에서도 우크라이나를 향해 미사일·드론을 쏘고 있다. 러시아군은 우크라이나군 방공 레이더가 어디 배치됐고, 어느 곳이 사각지대인지 이미 파악한 상태다. 그 빈틈을 노린 러시아군 공습에 우크라이나는 상당한 피해를 입고 있다.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날아드는 발사체도 레이더만 충분히 확보돼 있다면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 레이더로 한 방향만 감시하는 탓에 사각지대가 생긴 경우 레이더 2~3대를 더 확보해 360도 모든 방향을 감시하는 식으로 말이다. 러시아의 Kh-101 순항미사일이나 샤헤드 드론은 일단 레이더로 탐지만 하면 미사일은 물론 대공포, 심지어 보병화기로도 요격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러시아는 레이더로 탐지·추적은 물론, 요격 자체가 어려운 ‘게임 체인저’ 수준의 무기를 투입하기 시작했다. 바로 옛 소련 시절 미국 항공모함을 잡으려고 만든 괴물 미사일 Kh-22 ‘부랴’다.
미국과 나토에선 AS-4 ‘키친’이라고 부르는 Kh-22는 러시아의 대형 전략폭격기 Tu-95MS나 초음속 폭격기 Tu-22M에 탑재되는 대형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은 길이 11.6m, 폭 0.92m, 발사중량 5t에 달해 그야말로 괴물과도 같은 덩치를 자랑한다. 한국 공군도 운용하는 서방 세계 표준 공대함미사일 AGM-84 ‘하푼’이 길이 약 4.6m, 직경 0.34m, 무게 550㎏임을 감안하면 상식을 아득히 벗어난 무기다. Kh-22 덩치가 이렇게 커진 데는 옛 소련의 절박한 사정이 있다. 당시 소련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로 미 항모 전단의 위력을 절감했다. 이후 유사시 미 항모 전단이 소련 본토에 접근하기 전 원거리에서 파괴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의 필요성이 부각됐다. 이에 따라 소련 지도부는 자국 개발진에 그 어떤 방공 시스템으로도 막을 수 없는 비행 성능과 파괴력을 가진 미사일 제작을 지시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Kh-22다.
Kh-22 초기형은 비행속도가 마하(음속) 3.5~4였지만, 현재 배치되고 있는 개량형 Kh-32는 극초음속 영역에 해당하는 마하 5에 달한다. 사거리도 처음에는 600㎞ 정도였으나, 개량을 거듭해 현재 1000㎞에 도달했다. 게다가 Kh-22에는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다. 오리지널 모델에 탑재된 350kt급 핵탄두는 미 항모 전단은 물론, 어지간한 중소도시 하나는 날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 핵무기를 싣지 않아도 1t에 달하는 고폭탄두와 초고속 비행에서 비롯된 높은 운동에너지는 무시무시한 파괴력을 발휘한다. 2022년 6월 우크라이나 중부 크레멘추크의 한 대형 쇼핑몰이 이 미사일에 피격돼 단번에 무너지고 77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나왔을 정도다.
러시아는 본디 군함 타격용인 이 미사일을 우크라이나 전역의 지상 표적을 공격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2022년 2월 24일 개전 이후 지난해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발사한 Kh-22는 300발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31일 우크라이나 공군 대변인 유리 이나트 대령은 “우크라이나군이 가진 모든 유형의 방공 장비로 Kh-22를 요격하려 했지만, 300번의 시도 모두 실패했다”고 밝혔다. 패트리엇 PAC-2/3, 나삼스(NASAMS), SAMP/T, IRIS-T SLM, S-300 등 다양한 방공 장비로 Kh-22를 요격하려 했으나 단 한 차례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존하는 서방제 방공 시스템으로는 마하 4~5 수준의 초음속·극초음속 무기를 방어하기가 불가능하다는 방증이다. 일반 아음속 순항미사일이나 드론은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요격하기 쉽다. 전술탄도미사일의 경우 속도는 빨라도 최대고도에 도달하면 레이더로 예상 낙하 코스를 계산해 요격탄을 발사할 수 있다. 현대적인 방공 시스템만 있으면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우크라이나군이 러시아군의 이스칸데르형 탄도미사일이나 킨잘 공중발사탄도미사일을 몇 차례 요격할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초음속·극초음속 무기에 대한 대응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런 유형의 무기는 마하 4~5 속도로 낮은 고도에서 비행한다. 스커드C형 미사일은 100~150㎞, 이스칸데르형 미사일은 40~60㎞ 고도로 비행하기에 먼 거리에서도 탐지가 쉽다. 반면 Kh-22는 12~22㎞ 구간을 비행하다가 종말 단계에서 급격히 고도를 낮추고 접근 코스마저 바꾼다. 그래서 탄도미사일에 비해 조기 탐지와 미래 위치 계산이 쉽지 않다. 러시아, 중국, 미국은 물론, 이란과 북한 등이 대기권에서 마하 5 안팎의 극초음속 비행이 가능한 장거리 타격 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초음속·극초음속 무기에 대한 대응은 먼 나라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를 구축했지만, 현재 전력화 중인 M-SAM이나 곧 도입될 L-SAM, SM-6로는 마하 5 안팎의 고(高)초음속 또는 극초음속 무기를 요격할 수 없다. 북한은 최소 두 종류의 극초음속 무기를 개발해 시험발사까지 마쳤다. 시험발사로 극초음속 비행 능력과 궤도 수정 능력을 입증해놓고 실전 배치를 선언한 상태다. 이에 따라 미국은 극초음속 요격 무기 개발 일정을 앞당기는 한편, 이지스함에서 운용할 신형 SM-6 미사일 배치도 서두르고 있다. 미국이 도입하려는 극초음속 요격 무기는 최신 이지스 시스템, 미사일방어(MD) 네트워크와 연동이 필수 조건이다. 다시 말해 한국이 이 미사일을 도입하려면 미국 주도의 MD 네트워크에 가입하는 게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북한뿐 아니라 중국의 극초음속 무기 위협은 한국이 직면한 명약관화한 현실이다. 우리 군 당국이 우크라이나의 대(對)초음속·극초음속 방공전 ‘300전 300패’의 교훈을 먼 나라 이야기로 치부하지 않기를 바란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이 기사는 주간동아 1423호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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