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 연구소장
글리벡보다 20~300배 치료 효과
피를 만드는 조혈모세포가 병든 백혈구를 만드는 게 백혈병이다. 진행 상태에 따라 급성과 만성으로 나뉜다. 만성골수성백혈병(CML)은 염색체 이상으로 생긴 암유전자(Bcr-Abl)가 원인이다. CML은 1990년대 후반까지 난치병이었다. 하지만 1999년 글리벡이 개발되면서 전환점을 맞는다. CML 환자의 10년 생존율이 20%에서 80%로 뛰었다. 김동욱 소장은 “하지만 치료 반응이 없거나 약효가 떨어지는 내성 환자가 나타났다”며 “피부발진·근육통·울렁거림·부종·골다공증 같은 부작용 때문에 치료제를 복용할 수 없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이런 한계를 극복한 2세대 CML 치료제가 나왔다. 타시그나·스프라이셀·슈펙트다. 김 소장은 “2세대 약은 암유전자와 내성을 일으키는 돌연변이 암세포 생성을 강력히 억제해 글리벡보다 20~300배 치료 효과가 좋다”며 “암 유전자가 완전히 사라져 약을 끊는 비율도 3배 정도 늘었다”고 설명했다.
기존 약에 내성 있는 환자에게 효과
아무리 좋은 치료제가 나와도 약값이 비싸면 언감생심이다. 세계 CML 치료 전문가들이 칼럼을 기고한 이유다. 의사들이 환자를 살리기 위해 제약사들의 비싼 약가 정책을 직접 꼬집은 것이다. 김 소장은 “의학적·학문적 치료지침을 따르려면 약가 인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통계에 따르면 2020년 세계 CML 환자는 전체 백혈병의 50%를 차지할 전망이다. 국내 CML 환자는 현재 약 3500명으로 매년 300~350명씩 증가한다. 김 소장은 “치료제가 좋아져 환자 사망률이 1~2%로 낮아졌다. 누적 CML 환자가 점차 늘며 환자와 정부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칼럼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한 명의 CML 환자가 부담하는 1년치 약값은 최대 12만3500달러에 이른다. 남아프리카도 5만4500달러다. 반면 국내 약값은 2만2000~2만8500달러에 그친다. 비결은 바로 국산 신약 개발에 있다. 칼럼은 “한국이 CML 신약을 개발해 2만1500달러에 공급하며 시장경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동안 CML 치료제는 모두 외국 제약사가 개발해 수입에 의존했다. 하지만 2012년 1월 일양약품이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개발한 ‘슈펙트’가 나오며 상황이 변했다. 판매는 대웅제약이 맡고 있다. 치료 효과가 우수하면서 약값이 저렴하기 때문에 경쟁 제품의 가격도 내려갔다.<표 참조>
[일러스트=강일구]
슈펙트 임상시험을 진행한 김 소장은 “슈펙트는 타시그나·스프라이셀과 함께 기존 치료제에 내성이 있거나 치료 반응을 보이지 않는 환자에게 효과적”이라며 “세계에서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시스템통합적 항암신약개발사업단 김문환 본부장은 “경제적인 국산 항암제 개발은 환자의 치료 기회를 넓히면서 의료비 부담을 줄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며 “정부가 전략적으로 국산 항암제 개발에 나서는 이유”라고 말했다.
치료제 바꿀 땐 부작용·합병증 따져야
김영수(가명·50·경기도 안양)씨는 2010년 10월 CML 진단을 받았다. 2년 넘게 1세대 치료제를 복용했다. 하지만 암유전자 수치가 안정권으로 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 국산 신약으로 바꾼 후 수치가 떨어져 유지되고 있다.
김 소장은 “CML 2세대 신약의 효능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며 “3, 6개월 간격으로 효과와 부작용을 관찰해 맞지 않으면 신속하게 다른 치료제로 바꿔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소장에 따르면 CML 치료제 변경 시 크게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첫째, 치료제에 내성이 생기면 원인을 제공한 돌연변이 유전자의 종류를 파악해야 한다. 둘째, 환자가 현재 복용하고 있는 약 때문에 겪는 부작용과 합병증을 피할 수 있는 치료제여야 한다. 김 소장은 “CML 장기 생존자가 늘면서 약 복용과 생활 관리에 대한 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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