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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호와 함께하는 태백산 눈꽃 여행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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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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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82 2014/01/19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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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자동차 이벤트로 당첨되어

 

 부부동반으로 1박 2일 태백산 등반 및 영월 부근 답사과정에 참가하게 되었다

 

 민족의 영산 태백산은 금요일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등반코스였는데

 

 산에 눈꽃은 없었지만 너무 좋은 산행이였다.

 

 특히 저녁시간때 허영호 대장과 토그쇼가 있었는데 너무 감동적인 시간이었음..

 

 허영호 대장은 국내 엄홍길 대장과 함께 가장 유명한 산악인으로 꼽히는 분이신데

 

 국내에선 최초로 브래티시 백과사전에 수록되어 있다.

 

 (세계최초로 대륙별 최고봉 등반 및 남극점, 북극점 등반)

 

 올해면 환갑인 60세인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굴의 도전의식으로

 

 두가지 하고 싶은 일을 말씀하신다.

 

 하나는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텐트속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누구도 산 정상에서 일박은 한  사람은 없다고... 하지만 정상을 정복하기 위해선

 

 마지막 캠프(주로 4캠프)에서 정상까진 꼬박 12시간을 아무것도 먹지 않고 가파른 수직 얼음 절벽을

 

 렌튼 하나로 의지해가면서 불굴의 의지로 올라가는데 60세의 몸으로 텐트까지 짊어지고 올라가기가

 

 정말 어려워 보이는데 하여간 대단하신 분이다

 

 두번째는

 

 경비행기로 세계를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경비행기 조정을 열심히 배우셨다고 하는데

 

 1년에서 1년반 계획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등 등  너무나 의미있는 시간을 보냈지만 그 느낌을 다 전해드릴 수 없어

 

 작년에 국제신문에 기재된 기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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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악인 허영호(59). 남극과 북극, 히말라야 에베레스트 등 지구의 3극점을 정복했고, 아시아 아프리카 등 모든 대륙의 최고봉을 밟은 최초의 인간이다. '대장'이란 낱말은 그래서 그의 이름 뒤에 훈장처럼 따라 붙는다. 최근 그의 도전정신은 경비행기 조종으로 옮아갔다. 세계 일주에 도전하는 것이다. 지난 13일 수학능력시험을 마친 부산지역 고3 학생들을 위한 '명사 초청 희망교실'에 강사로 초청된 허 대장을 만났다.

-허영호 대장에게 산은 어떤 의미인가.

▶중학교 때까지는 무서워 혼자 산에 가지도 못했다. 그냥 동네 형들 따라다니는 게 재미있었다. 지금은 등산이 보편화했다. 동호인도 엄청나게 늘었다. 전문 산악인을 위한 정보기술이나 장비가 다 좋아졌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에는 악천후가 있다. 여전히 어렵다는 의미다. 생명의 위기를 피하고 부상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언제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준비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평생을 산악인으로 살았던 이유는.

▶한마디로 도전정신 때문이다. 1970년대만 해도 히말라야나 북극 남극에 간다는 생각을 별로 할 수 없었다. 단지 그곳은 근접하기 힘든, 남의 나라에 있는 산일 뿐이었다. 꿈도 못 꿨다. 우리나라의 산을 열심히 오르다 보니 어느 날 자신감이 생겼다. '누가 나를 좀 보내주면 당장 오를 수 있을 텐데, 귀신같이 올라갈 수 있는데'라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1982년 희망이 생겼다. 세계 5위 봉인 히말라야 마카루(8481m) 원정대 모집 공고가 나온 것을 봤다. 당장 지원했다. 당시 10명이 정복을 목표로 원정을 떠났는데 대원 중 유일하게 정상 정복에 성공했다. 이후 자신감을 갖게 됐다. 1983년에는 마나슬루(8156m) 세계 8위 봉에 도전해 무산소로 단독 등반에 성공했다. 탄력을 받자 더 큰 목표에 대한 욕심이 자꾸 생겼다. 1987년에는 동계 에베레스트(8848m) 등정이라는 목표에 도전했다. 세계 등반 역사상 세 번째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에베레스트를 겨울철에 등반한 예는 나 이외에 없다. 동계 등반은 봄철보다 몇 배 힘들다.

-흔히 산악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 궁금한 게 가족이다. 장시간 헤어져 있어야 하는데 불평은 없나.

▶사실 1983년 마나슬루봉 도전을 4개월 앞두고 결혼했다. 항상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아이들보다는 아내에게 특히 미안하다. 1년에 히말라야 두 번만 다녀오면 3개월씩 6개월이 훌쩍 지나간다. 그래서 가족 전체가 탐험과 동반에 따라 나선 일도 많았다. 1000만 원 정도만 돈이 모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무조건 떠났다. 10~20년 전만 해도 아이들 학교를 빼먹고 여행을 간다면 미친 사람처럼 취급했다. 지금은 그런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안다. 큰아들이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세계 13개국을 다녀왔다. 지금 생각하면 투자를 꽤 잘했다고 생각한다. 직장에 들어간 지 2년쯤 됐는데 어떤 상황에서도 잘 적응하고, 사회인으로 제 몫을 해낸다. 또 등반과 탐험 여행을 통해 어떤 어려움에도 맞서서 이겨내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 혹독한 히말라야 베이스캠프에서 한두 달씩 지내고, 오지 여행을 다니니 그럴 수밖에 없다. 미국 여행을 갔을 때는 나와 아내는 렌터카 안에 있고, 아이들에게 치킨 같은 간식을 사오도록 했다. 영어도 몇 마디 못할 때였는데 어떻게든 해내는 것을 봤다. 잔돈까지 정확히 챙겨오는 것을 보고 기특했다.

-몇 년 전 아들과 에베레스트에 올라 화제가 됐다.

▶아들을 히말라야에 처음 데려간 것은 다섯 살 때다. 에베레스트 정상을 아버지와 아들이 동시에 정복한 것은 우리 부자가 인류 최초다. 에베레스트를 가장 먼저 정복한 힐러리경도 부자가 다 올랐지만 동시에 정상에 서지는 못했다. 2010년 아들과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원정대원들의 동의를 어렵게 얻어냈다. 정상에서 아들을 부둥켜안고 엄청나게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산악 동호인들 사이에는 '허영호 VS 엄홍길' 얘기를 한다. 야구의 '최동원 VS 선동열' 같은 비교다.

▶홍길이는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후배다. 나이로도 10년 가까이 차이가 난다. 전성기를 보낸 시기도 다르고, 한창 산에 오를 때 장비 조건도 차이가 있다. 모든 성과는 우리나라 산악인들의 피와 땀이 함께 일군 것이라고 본다. 앞으로 더 많은 성과를 거둘 것이다. 다만 나는 운이 좋게도 등반 도중 인명 사고나 부상 등 피해를 거의 당하지 않았다.

-히말라야 등반이 과거와 다른 점은.

▶예전에는 에베레스트에 한 번 오르려면 최소한 3년간 준비가 필요했다. 네팔에서 허가를 받는 데 그만큼 시간이 걸렸다. 행정 절차가 복잡했다. 그러나 지금은 1년이면 된다. 입산료는 10만 달러(약 1억 원)다. 7명이 한 팀으로 다녀오면 3억 원가량 소요된다. 20년 전에는 에베레스트를 정복하고 베이스캠프에 내려오면 먹을 게 라면밖에 없었다.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 삼겹살 삼계탕 피자는 물론이고, 지난번 원정에서는 다른 팀에서 홍어도 얻어먹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경비행기 조종에 도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제(지난 12일)도 경비행기 검사를 했다. 이것은 나의 또 다른 도전이다. 물론 힘들 때도 있었다. 7년 전 진도에서 비행기가 추락할 때는 아찔했다. 고도가 서서히 내려가는 느낌이 드니까 갑갑해지더라. 혹시 동체가 거꾸로 뒤집힌 채 추락하는 것은 아닌지 신경이 곤두섰다. 다행히도 수직 착륙하는 것처럼 그대로 바다에 내려앉았다. 경비행기 조종에는 목표가 있다. 세계 일주다. 다만 스폰서를 구하는 게 쉽지 않다. 경비로 15억 원가량 소요되는데 마련하기 어렵다. 그러나 포기는 없다.

-인생 최악의 경험은.

▶산악인으로 50년을 살았다. 남극과 북극을 탐험할 때는 영하 50도, 체감온도 65도도 경험했다. 북극을 탐험할 때는 1800㎞를 4개월간 걸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04일간 목욕을 못 했다. 탐험을 마치고 샴푸로 머리를 5번이나 감았는데도 비듬이 떨어지더라. 1995년 북극을 탐험할 때는 북극곰을 3번이나 마주쳤는데 마지막에는 10m 앞에서 목격했다. 간담이 서늘했다. 지금도 10년 후나 20년 후 어떤 인생을 살고 있을 것인가를 늘 그려본다.

-그처럼 평생 도전을 위해 살아왔다면 아직도 남은 도전이 있는가.

▶도전이란 나 자신을 극복하는 일이다. 중단은 없다. 경비행기 세계 일주 이외에 내년쯤에는 다섯 번째 에베레스트 정상 정복을 꿈꾸고 있다. 조건이 허락한다면 8848m 꼭대기에 텐트를 치고, 1박 하는 게 꿈이다. 이왕 등산을 시작했는데 세계의 지붕 꼭대기에 하룻밤 보내야 할 것 아닌가.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속 허영호

- 3극점·7대륙 최고봉 밟은 첫 탐험가

허영호 대장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내 이름이 올라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한국 브리태니커 온라인:세계 연감:화제의 인물 1996'편에 허 대장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다음은 백과사전의 내용.

'1995년 12월 12일 허영호는 남극 대륙의 최고봉인 빈슨매시프 정상에 오름으로써 3극점과 7대륙의 최고봉을 모두 정복한 인류 최초의 탐험가가 되었다. 허영호는 대원 두 명과 함께 12월 7일 빈슨매시프 남쪽 브란스콤 빙하 상의 베이스캠프(해발 2100m)를 출발, 닷새 만인 12일 오후 2시20분에 빈슨매시프 정상(5140m)을 정복했다'.

'그는 1987년 12월 22일 세계 최고봉이자 아시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등정을 필두로 1992년 남미 아콩카과(6959m)와 북미 매킨리(6194m), 아프리카 킬리만자로(5895m) 정상을 오르고 1994년 오세아니아 칼스텐즈(4884m)와 1995년 유럽 엘브루즈(5642m)를 정복했다. 1994년 남극점, 1995년 북극점 도보탐험에도 성공한 바 있는 허영호는 7대륙 최고봉과 남북극점 도보탐험에 성공한 인류 최초의 탐험가가 된 것이다. 극점 탐험과 7대륙 최고봉 등정은 그가 20여 년 이상 정열을 바쳐 매진해온 탐험 역정의 결정체였다'.

'허영호는 죽음의 지대나 다름없는 고산에서 그 누구보다 빨리 적응하고 시련을 극복해내는 초인적인 체력과 인내력을 발휘했다… 그의 분당 산소 흡수량이 70~80㎖로 마라톤 선수와 비슷한 수치를 보이고 있는 것을 보아도 그가 자기관리에 얼마나 노력하는지를 알 수 있다… 1991년 허영호의 탐험대는 북극점 도보 탐험에 성공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자신은 극점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위치에서 화상이라는 불의의 사고로 실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 1994년 남극점에 도전해 도보 탐험에 성공하고, 1995년 6월 북극 대륙 도보횡단에도 성공했다'.


◇허영호 대장 프로필

1954년 4월 충북 제천 출생

1989년 청주대 체육학과 졸업

1994년 고려대 자연자원대학원 졸업

1982년 히말라야 마카루

1983년 히말라야 마나슬루

1987년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1989년 히말라야 로체 단독 등정

1991년 북극점 원정

1992년 남미 안데스 아콩카과

1992년 북미 매킨리 단독 등정

1992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1993년 남극점 원정

1995년 북극점 경유, 북극해 횡단

1995년 남극대륙 빈슨 매시프 등정

1997년 티베트 초오유 등정

1998년 러시아 엘브르즈

2003년 몽블랑 등정

2007년 히말라야 동계 에베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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