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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 이상이 생기면 엔지니어는 설계도부터 들여다본다. 어떤 부위에서 이상이 생겼는지 알아내기 위해 비행기 전체를 분해할 수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이런 설계도가 있다. 바로 인간게놈(genome)지도이다. 게놈은 유전자(gene)와 염색체(chromosome)의 합성어로 생물에 담긴 모든 유전 정보를 의미한다. 게놈은 인간의 생로병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만큼 세계적인 학자들은 오래전부터 게놈 해독에 매진해왔고, 결국 인간게놈지도를 완성했다. 인간게놈지도의 완성으로 암, 당뇨병, 파킨슨병, 노인성 치매, 비만 등 4천여 종의 난치병 치료는 획기적인 전기를 맞고 있다.
우리 몸의 설계도를 손에 쥐고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 꿰뚫고 있다면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다. 질병이 발생한 후에도 그 환자에게 가장 적합한 치료법을 찾아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른바 예방 의학과 맞춤 치료가 실현되는 셈이다. 한 개인이 어떤 질병에 취약한지 알기 위해서는 단일염기다형성변이(SNP)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인간의 몸은 10조개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 대부분의 세포에는 핵(核)이 존재하고 그 속에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46개의 염색체가 들어 있다. 염색체는 단백질과 DNA(디옥시리보핵산)로 구성되어 있다.
DNA는 크게 당, 인산, 염기로 구성되어 있다. DNA가 이중 나선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1953년에 밝혀진 바 있다. DNA의 이중 나선 구조에서 사다리 기둥에 해당하는 부분은 당과 인산 분자로 만들어져 있으며, 발판에 해당하는 부분이 유전 정보를 저장하는 아데닌(A)과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 등 4가지 염기로 구성되어 있다. 이 4가지 염기가 DNA상에서 배열되어 있는 순서를 DNA 염기서열이라고 한다.
인간이 모두 비슷한 형태를 띠는 것은 게놈을 구성하는 31억쌍의 DNA 염기서열이 99.9%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마다 피부색, 인종, 눈 색깔, 생김새가 다른 이유는 0.1%의 차이에 있다. 즉, 1백50만~3백만개의 염기서열이 사람마다 달라 각자 다른 특질이 나타나는 것이다. 개인마다 다른 염기가 바로 SNP이다. 마치 지문처럼 개인의 차이를 명확하게 해준다. SNP 속에는 암과 같은 특정 질병과 관련된 정보가 들어 있다.
DNA의 31억쌍 염기서열 밝혀내
과거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암 정복에 도전장을 던졌다. 광역동 치료(photodynamic therapy)나 바이러스 치료, 면역 치료와 같은 새로운 치료법이 속속 소개되고 있다. 암 성장에 관여하는 단백질 항체나 신생 혈관에 대한 연구도 진척을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TGF-베타와 같은 암 억제유전자를 발견하는 쾌거도 올렸다.
그러나 암을 제거해도 암이 재발과 전이로 계속 생기는 원인을 규명하지는 못했다. 같은 암이라도 환자에 따라 위험도가 제각각이지만 환자 개인에 맞춘 치료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보편적인 치료법을 이 환자, 저 환자에게 적용하는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예방 의학은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2월3일 우리나라 과학계에 기록할 만한 발표가 나왔다. 세계 4번째로 개인 게놈을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는 내용이다. 가천의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과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리센터의 이번 공동 연구는 게놈 해독 능력뿐만 아니라 ‘한국형 게놈지도’를 확보했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 즉, 다른 나라 사람과는 다른 한국인만의 SNP를 확인한 것도 중요하다.
박종화 국가생물자원정보관린센터장은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의 김성진 원장의 게놈을 해독했다. 분석 전에는 중국인이나 일본인의 게놈과 비슷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깜짝 놀랄 만한 결과가 나왔다. SNP가 중국인과도 0.04% 차이를 보여 약 1백50만개가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동양인이라도 SNP 수에 차이가 있으므로 한국인의 SNP가 있다는 것을 밝혀낸 결과이다. 앞으로 수많은 한국인의 게놈을 해독하면 뚜렷한 한국인만의 SNP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번 연구로 DNA의 31억쌍 염기서열을 밝혔고, 중국인의 것과 비교해보니 약 1백50만개에서 차이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이 중에서 한국인에게 흔한 질병에 대한 SNP를 찾아내면 한국인에게 맞는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게 된다. 또, 개인의 독특한 SNP 정보까지 밝혀내면 특정 개인에게 맞는 정밀한 치료법까지 등장할 수 있다. 박센터장은 “김원장의 SNP를 보면 전립선암에 걸릴 가능성이 정상인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이런 예견은 수십 년 전만 해도 이론에 불과했다”라며 구체적인 사례까지 제시했다.
특정 질병과 관련된 SNP로 어떤 예방 효과를 볼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은 가정을 해볼 수 있다. 한 개인이 40대에 위암 발생 가능성이 30%, 50대에 폐암 발생 가능성이 60%라는 경고를 20대에 받는다. 이 사람은 짜고 매운 음식과 흡연을 멀리함으로써 암을 예방하게 된다. 40~50대가 되어서는 암이 생기기 전부터 병원을 방문해 정밀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이때에도 자신의 게놈지도가 담긴 USB메모리만 의사에게 전달하면 그만이다. 의사가 유전자 정보를 확인한 후 그 환자에게 맞는 진단과 치료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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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의 김성진 원장(왼쪽)이 자신의 게놈지도를 공개했다. 김원장은 앞으로 SNP(오른쪽 그림)를 해독하는 일이 남았다고 말했다
ⓒ시사저널 박은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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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 의학에 전기 마련…특정 질병 관련 SNP 규명이 숙제
이런 꿈같은 일이 이미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미국 여배우 크리스티나 애플게이트(37)는 최근 한쪽 유방에서 작은 암세포를 발견했다. 간단한 치료로 암을 제거할 수 있었지만 그녀는 유방을 절제하고 재건하는 수술을 받았다. 유전자 검사에서 BRAC1이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모친이 유방암과 자궁암에 걸린 가족력도 있었다. 앞으로 암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므로 아예 유방을 제거해버린 것이다. 물론 이 여성에게 유방암이 더 이상 생기지 않게 되었고, 새로운 암의 발생, 재발, 전이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것은 분명하다.
미국과 일본에서는 이미 개인의 게놈을 해독해주는 기업까지 등장했다. 또, 인터넷 포털 사이트 구글(google)은 하버드 대학 연구팀과 공동으로 10만명의 게놈지도를 데이터베이스로 만들고 있다. 안방에 앉아 세계적인 의사로부터 구체적인 치료법을 받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같은 일은 게놈을 해독하는 시간과 비용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에 가능하다. 몇 년 전 게놈 해독에 13년 동안 2조7천억원이 소모되었지만 이번 게놈 분석은 불과 7개월에 2억5천만원을 들여 끝냈다. 학자들은 몇 시간 내에 100만원으로도 게놈지도를 완성할 날이 2~3년 내에 도래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미국의 한 기업은 2009년부터 5천 달러에 게놈을 해독해주는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그러나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해 있다. 현재는 인간게놈을 해독하는 수준이다. 앞으로는 특정 질병과 관련된 SNP를 밝혀내야 한다. 현재까지 밝혀낸 SNP는 위암, 퇴행성 관절염, 2형 당뇨, 류머티즘 관절염 등 일부 질병에 한정되어 있다. 이길여 암·당뇨연구원의 김성진 원장은 “SNP 해독으로 모든 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는 없다. 개인의 생활 습관과 같은 환경적 요소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B형 간염에 걸린 사람이 모두 간암에 걸리지는 않는다. 다만, 간염 보유자는 간암에 걸릴 확률이 정상인에 비해 60배 높다. 그런 사람이 심한 흡연과 음주를 하면 간암에 걸릴 확률은 수백 배 높아진다. 한마디로 위험성이 높은 유전자를 밝혀냈다면 그 유전자가 어떤 환경과 맞아떨어질 때 질병을 유발하는지에 대한 상관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예방 의학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라고 강조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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