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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사설입니다.
한국 제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인거 같습니다.
입력 : 2007.07.06 22:47 / 수정 : 2007.07.06 23:01
- ▲ 박정훈 경제부장
- 사상 최강의 ‘육체국가(body nation)’. 중국 남부 광둥성(廣東省), 끝없이 펼쳐진 공장지대를 취재하면서 기자는 시종 이런 근육질의 중국 이미지를 떠올렸다.
세상엔 ‘육체국가’와 ‘두뇌국가(head nation)’의 두 종류가 있다고 한다. 정치학자 리처드 로즈크랜스(UCLA 교수)의 흥미진진한 분류법이다. 앞의 것이 몸(노동력)으로 먹고사는 제조업의 나라라면, 뒤의 것은 연구개발·디자인·마케팅처럼 머리를 쓰는 지식형 국가를 지칭한다.
손으로 무얼 만드는 제조업에서 중국은 완벽한 육체국가 모델을 완성해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도 지금의 중국처럼 전(全) 지구적인 제조업 기반을 장악한 예가 없었다. 그러니 사상 최강이란 말이 딱 맞다.
혼다자동차 광저우(廣州) 공장. 이곳에서 생산되는 것은 싸구려 소형차가 아니다. 어코드·오디세이 같은 혼다의 주력 차종을 일본과 같은 품질로 만들어낸다. 설마 하는 취재진의 잇단 질문에 푸서우제(付守杰) 부사장은 “혼다의 전 세계 공장 중 이곳이 생산성 1위”라고 잘라 말한다.
이 공장과 일본과의 생산 시차(時差)는 6개월뿐이다. 일본 혼다 본사에서 새 모델이 나오면 정확히 6개월 뒤 광저우 공장이 같은 모델을 생산해낸다. 최신형 혼다차가 쏟아지는 생산라인에 서서 한국 제조업의 생존법을 생각하니 도무지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은 선진국 베껴 먹는 ‘복제(複製)경제’라 하지 않던가. 아직은 싸구려 하청(下請) 수준일 것이란 착각은 삼성전기 둥관(東莞)공장에 들렀을 때 깨졌다. 이 공장 유효성 사장은 “중국 공장의 생산성이 한국보다 낫다”며 정신 번쩍 드는 말을 들려 주었다.
“중국에서 싼 인건비 빼먹던 시절은 갔다. 우리의 목표는 혁신과 고부가가치화다. 글쎄, 중국 삼성이 한국 삼성과 경합할 수도 있지 않을까?”
공장 한쪽에 ‘역수행주(逆水行舟)’란 격문이 붙어 있다. 배가 물길을 거슬러 올라가듯 역발상의 창조경영을 하자는 뜻이라고 한다. ‘양(量)’을 석권한 중국 제조업이 ‘질(質)’까지 넘보기 시작했으니 오싹해진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진단은 차라리 시한부 선고 같다. 작년 방한 때 그는 “한국이 하는 것을 20년 뒤엔 중국이 다 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몸으로 겨루는 범용(汎用) 제조업이 승산 없다면, 게임 자체를 바꿔야 하지 않을까.
해답의 실마리를 발견한 것은 ‘쑹산후(松山湖) 과학기술단지’에 들렀을 때였다. 입주 기업 명단 속에 낯익은 이름이 있다. MP3플레이어 ‘아이리버’로 유명한 레인콤의 생산공장이었다.
레인콤의 모든 제품은 100% 중국 공장에서 만들어진다. ‘몸통(생산 기능)’은 죄다 중국에 보내고, 한국엔 상품기획·개발·디자인 같은 ‘머리’만 남겼다. ‘아이리버 신화’의 주인공 양덕준 사장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레인콤은 제조업체가 아니다”라는 한마디로 설명해준다.
“우리는 문화기업이다. 물건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 즉 디자인과 브랜드와 라이프 스타일을 만들어 판다. 역설 같지만, 제조업이 살려면 제조업 마인드부터 버려야 한다.”
문화로 돈 벌겠다는 레인콤의 두뇌 전략에서 한국 제조업의 생존 힌트를 찾았다. 그것은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의 사다리 구조에서 중국의 위쪽 공간을 장악하는 것이다. ‘근육’ 대신, 지식·기술·기획·비즈니스모델 같은 두뇌 역량을 구사해 끊임없이 중국을 앞서가는 것이다.
중국과 똑같이 맞붙어 ‘제조업 백병전’을 벌여선 승산이 없다. 유일한 승리 방정식은 부가가치 고지(高地)의 위쪽에 포진해, 중국을 내려다보며 활용하는 것 뿐이다. 우리가 ‘머리’가 되어 중국을 ‘몸통’으로 부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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