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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락받고 퍼온글입니다. 제 이웃인 오크트리님의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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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게시글 정보

조회 173 2005/02/24 09:55

게시글 내용

Locked | ONCE... 2005/02/19 20:09
http://blog.naver.com/shadeplant/20010158075

얼마 전까지 퉁퉁한 배를 하고 다니던 도둑고양이가 그새 배가 아주 홀쭉해져있다. 집 없는 고양이 한 마리조차 데려다 보살펴주지도 못하는 주제에 그 녀석과 어린 새끼들이 과연 겨울을 잘 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것은 어쩌면 그저 내 윤택하고 인색한 감상일 뿐인지 모른다.

밤늦게 담배를 사러 나가는 길에 나를 놀래키거나 안쓰러운 마음이 들도록 하는 고양이들과 마주치지 않았으면 하는 내 바람과는 달리 내가 사는 동네는 도둑고양이가 지나치게 많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려서도 부유해본 기억이 없다.

시간이 많이 지났어도 그때의 덜 가졌음과 풍족하지 못함에 관한 사연이 유난히 또렷한 이유는

마음속에 깊이 남은 몇 가지 이미지 때문일 것이다.


어린시절 내 심상 속의 가난은 닫힘과 경계였다.

우리 집에 있던 살림살이들 중에서 가장 최신식이고 새것인 것은 자물쇠였다. 부모님이 집을 비우기만하면 어린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집에 들어와 오래도록 전화를 쓰는 옆방 아저씨 때문에 다이얼에 달아놓은 엄지손가락만한 자물쇠가 그것이다. 당시의 수동식 전화기 1번 다이얼 구멍에 쏙 들어가는 전화기 자물쇠는 한 푼이라도 아껴야하는 살림살이를 무례하고 염치없는 이웃으로부터 지키겠다는 어머님의 의지였던 셈이다. 왜 자물쇠를 걸어두었느냐는 아저씨의 다그침에 ‘요즘 전화요금이 많이 나오는 게 제가 자꾸 장난전화를 거는 것 같다고 그래서 엄마가 채웠어요.’라고 어머니가 가르쳐준 억울한 변명을 대고나서 혼자 얼굴을 구기고 마음을 끓이던 기억이 난다.

점포 옆 길가에 따로 떨어진 변소도 당연히 자물쇠가 달리는 곳이다. 혹 볼일을 보고나서 문잠그는 것을 잊기라도 하면 혼찌검이 나곤 했다. '드러운 똥뚜깐에서 누가 똥이라도 퍼갈까봐 그러느냐’고 내가 아무리 심통을 부려봐야 철딱서니 없는 녀석이라고 등짝만 얻어맞을 뿐이었다.

모두 잠든 새벽에 누군가 쌀을 퍼가는 소리를 듣고 나서부터 어머니는 마루 한쪽 편에 자리한 구식쌀통의 뚜껑에도 모기향 모양의 굵은 철사를 만들어 깊숙이 감아 놓으셨다.

이웃지간은 물론이고 변소 앞을 지나가는 낯모르는 행인들까지 바짝 경계했던 것은 그러지 못했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피해가 전혀 가볍지 않아서였다. 시건장치의 모습을 한 가난이었다.


가난은 반목과 질시이기도 했다.

월말이 되면 전기세 수도세 오물세 문제로 늘 주인집과 세입자들 사이에 말이 많았던 기억이다. 우리는 고작 식구가 신랑과 나 둘뿐인데 왜 이렇게 많은 세금을 내야하느냐는 새댁도 있었고 애들이 쓰면 얼마나 쓴다고 식구 수대로 세금을 먹이냐는 아줌마도 있고 전기제품을 많이 쓰는 주인집이 더 내야한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무심코 화장실의 불을 켜놓고 나오거나 심한 경우 밤늦게까지 불을 켜고 공부하는 학생조차도 예민한 시기에는 모두의 눈총을 받는 공공의 적이 되기도 한다.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막연한 질투나 부러움과는 별도로 같은 처지의 사람들 사이에서 생기는 유감들도 만만치 않았던 기억이다. 어차피 고만고만한 살림 수준의 다세대주택이다보니 어느 집에서 큰 맘 먹고 음식을 하나 만들어 먹어도 주인집만 돌리고 말았다느니 지들끼리만 먹었다느니 하는 구차하기 짝이 없는 뒷말을 듣거나 주변의 인심을 잃기도 했고 남들에겐 아직 없는 좋은 물건을 하나 장만해서 들여놔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내 어머니나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고작 이런 정도 수준의 강퍅한 일상을 꾸려나갈 수밖에 없던 이유가 애초의 심성이나 인격의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사방을 둘러친 가난의 몫이 컸다고 생각한다. 때에 따라서는 사람의 인성을 날카롭게 하거나 굽게 할 수 있는 것이 가난이기도 하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고 단지 불편함일 뿐이라는 제법 고아한 도력이 느껴지는 듯한 이야기도 있긴 하지만 내가 겪으며 느낀 가난은 결코 그렇게 낭만적일 수 없는 것이었다.

가난은 지금도 여전한 문제이다. 누군가는 박탈감에 이를 갈기도 하고 자신의 처지에 절망하기도 하고 대물림 되는 구조적인 가난이 자식들의 미래까지 한계를 짓고 모두에게 공평해야할 기회마저 가난 때문에 밀려난다고 분노하기도 하며 지금도 가난을 탓하는 목소리들은 여전하다.

그렇다고 굶는 아이에게 때마다 도시락이나 준다고 다 해결이 되고 역할이 끝나는 문제도 아닐 것이다. 주린 사람에게 그저 달랑 끼니만 마련해 주면 뭐하나 정작 필요한 희망을 주지 못하는데...

사회적 의식의 빈곤, 사람들 마음의 가난이 지금 보다 나아지지 않고 걸쇠가 헐거워지지 않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결코 가난을 해결하지 못 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떳떳한 부자가 마땅한 자기 몫의 존경을 받기 위해서라도 세상은 조금 더 공정해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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