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공매도가 전면 재개된 지난달 31일 주요 글로벌 IB사 중 일부 회사가 빠졌다"며 " HSBC 등 일부 회사는 전산화 시스템도 구축하지 않은 채 불참하겠다는 입장을 전한 회사도 있다"고 설명했다.
잠정 불참 방침을 금융당국에 알린 이들 회사 외에도 공매도 재개일 공매도를 시작하지 않은 해외 IB사들도 여럿이다. BNP파리바, UBS(옛 CS와 합병), 노무라 등은 참여 가능성은 열어뒀지만 아직 재개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 이들 회사는 공매도를 위한 전산화 시스템을 구축하지도, 당국에 공매도 등록번호( ID)를 신청하지도 않았다.
이에 따라 공매도 참여를 확정하고 공매도가 전면 재개된 지난달 31일 전까지 전산화를 마친 글로벌 IB는 JP모간,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모간스탠리, 바클레이즈캐피탈, 제프리즈 등 총 6곳에 그쳤다. 다만 씨티의 경우 당국에 신청의사를 밝혀 공매도 등록번호( ID)를 발급받은 상태다. 거래소 모의테스트를 거쳐 이르면 상반기 중에도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공매도는 가격 하락이 예상되는 주식을 빌려 매도한 후 실제 주가가 내리면 싼값에 사서 주식을 갚고 차익을 챙기는 거래 방식이다. 한국거래소는 과거 주식을 빌리지 않고 파는 불법 무차입 공매도 때문에 시장 변동성이 컸다고 판단, 주식을 빌리는 과정이 있어야 공매도 주문이 들어가는 새 시스템 중앙점검시스템( NSDS)을 도입했다.
대규모 공매도를 하는 IB들은 공매도 재개 전까지 이에 맞춘 당국이 요구한 전산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만일 이런 전산화 방식으로 가지 않으려면 최소한 수탁 증권사로부터 공매도 내부통제기준에 대한 적정성 기준을 확인받은 뒤 '사전입고' 방식을 택해야 한다. 증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클수록 더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식이다. 공매도 잔액의 0.01% 또는 10억원 이상을 거래한 '대규모 법인'이 대상이다.

불참 계획을 알리거나 참여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이들 IB는 모두 직전 '공매도 금지' 전까지 국내 증시에서 공매도 거래를 해온 곳들이다.
앞서 2023년 11월5일 금융위원회는 공매도 규제 위반이 계속 적발되는 상황을 우려해 이튿날인 11월6일부터 올해 3월30일까지 공매도를 금지한 바 있다. 이 기간 동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불법 공매도 전수 조사를 벌여 글로벌 IB 총 13곳에 과징금 836억5000만원을 부과했다. 주로 '독립 거래단위 운영 미흡'이나 '주식 차입계약에 대한 자의적 해석·적용' 등의 규제 위반 때문이었다.
이렇게 재개된 공매도 시장에서 주요 글로벌 IB가 발을 뺀 이유로는 △당국과 불법 공매도 과징금 소송이 진행 중이거나 최근 관련 제재를 받은 경우 △전산화 구축 등에 대한 득실 고려 △한국의 정책적 불확실성 등이 꼽힌다. 일례로 불참을 결정한 HSBC 홍콩법인의 경우 무차입 공매도 혐의로 증권업계 최초로 형사 재판정에 섰지만 최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앞서 HSBC는 2023년 금감원 조사 당시 위법행위를 인정했다. HSBC는 불법 공매도와 관련해 이미 금융당국에 과징금을 납부한 상태로 전해졌다.
금융당국에 공매도 거래를 잠정 보류하겠다고 입장을 표명한 한 글로벌 IB의 관계자는 "한국 공매도 물량이 크지도 않고 손익을 따져보니 참여 유인이 적었다. 한국 시장만을 위한 전산시스템을 구축하기까지 드는 시간과 수십억원의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애초 공매도 금지 배경을 이해하기 어려웠고 갑작스런 금지와 재개가 거듭되는 시장에 대한 의구심도 있다"며 "글로벌 IB 공매도에 대한 한국 금융당국의 잣대와 과징금 수위가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증권사의 대차전담 부서 관계자는 이 같은 글로벌 IB 동향에 대해 "한국의 규제 위험(리스크)이 크다고 생각한다"며 "고의성이 없었다고 해도 자칫 잔고관리를 잘못해 과징금을 받고 심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단 부담을 느낀 결과"라고 전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 주도로 가동되는 시스템이 불법성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지가 입증되지 않은 만큼 먼저 참여한 IB들을 살펴본 뒤 안정성이 확인될 경우 들어가려는 수요도 있다"며 "유럽계 IB는 페널티에 민감해 하반기까지는 공매도 시장 참여가 조심스럽다는 입장이 많다"고 말했다. 일부 글로벌 IB의 입장 선회에 금융당국도 고심하는 모양새다. 이들의 참여 유인이 적다는 것은 자칫 한국 시장에 대한 매력이 떨어졌다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당초 당국은 "공매도 시스템을 정비하고 강화해 시장을 정상화하겠다"는 입장이었는데, 글로벌 IB들은 '과도한 규제'로 받아들인 것이어서 정책 효과에 대한 회의론이 나올 수도 있다.
한 글로벌 IB 임원은 "공매도 전산화 도입, 과징금 부과 등 한국 당국의 규제 강화 조치들이 진행 과정에서 기업들에 설득력을 얻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에쿼티(주식) 위주가 아니었던 하우스는 한국의 기준이 까다롭다고 여기고 일부 빠져나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다만 이를 '정상화로 가는 과정'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공매도 거래 중단과 현재까지 불참한 해외 IB들 비중은 직전 금지 직전인 2023년 10월 공매도 전체 거래의 0.7% 수준이어서 전체 공매도 거래에는 영향이 거의 없다"며 "궁극적으로는 수익을 위해선 롱(매수)과 숏(매도) 양방향 포지션을 잡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직 참여하지 않은 주요 IB들도 장기 관점에서는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금융당국은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당국으로서는 IB들이 다시 돌아와서 한국에서 거래하기를 원하는 입장"이라며 "정책적,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참여 회사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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