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최근 전공의 파업으로 정부와 의료계가 대립하는 와중에 환자단체 위상과 영향력이 증대된 상황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주요 환자단체와 연락을 취하고 있며 회동도 예정된 상태다. 또 의사단체가 환자단체에 행사 참석을 요청하는 등 달라진 위상이 감지되는 상황이다.
30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2월 20일을 전후로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들이 의료 현장을 떠난 지 100여일이 경과됐다. 이 기간 정부 입장에서는 2025년 의대 증원을 확정하는 성과를 거뒀다. 의료계는 병원에 남은 의사들이 체력을 소진하며 힘들어했지만 정부 정책 부당함과 전공의 저연봉, 혹사 등을 외부에 알리기도 했다. 정부와 의료계가 비판받으며 고충을 겪었지만 손해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반면 환자들은 전공의 진료 공백을 체감하며 상대적으로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설명이다. 환자단체 관계자 A씨는 “현재도 일부 환자는 병원 예약을 위해 20-30군데 연락하는 사례가 있다”며 “대부분 환자들이 의사 집단행동 여부를 알아보며 벙어리냉가슴을 앓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최근에는 정부와 의료계에 대한 비판이 누적되며 환자단체에 조금씩 힘이 실리는 분위기로 파악된다.
실제 복지부는 11개 주요 환자단체에 대해 국장과 과장급 담당관을 지정, 상시 연락체계를 구축한 상태다. 의료대란 과정에서 환자들 애로사항을 직접적이고 신속하게 파악하기 위한 조치다. 구체적으로 전담 담당관을 통해 파악된 진료 지연 사례를 적시 치료 받도록 지원하고 피해 관련 법률상담을 비롯, 건의사항 등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는 방침이다.
해당 11개 단체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 ▲한국백혈병환우회 ▲한국신경내분비종양환우회 ▲한국신장암환우회 ▲한국선천성심장병환우회 ▲한국PROS환자단체(희귀질환)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중증질환연합회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췌장암환우회 ▲한국유방암환우총연합회 등이다. 이어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이 31일 오후 3시 3개 환자단체와 간담회를 개최해 환자들 애로사항을 경청할 예정이다. 해당 단체는 한국환자단체연합회와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다. 참석 대상은 대표 외 1인씩 단체별 2인이다.
의료계도 환자단체를 대하는 태도가 과거에 비해 달라졌다는 것이 관계자들 전언이다. 실제 대한의사협회가 최근 한 환자단체에 연락을 취해 전공의 복귀 문제에 대한 토론회 형식의 행사를 열 예정이니 참석을 요청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해당 환자단체는 검토 끝에 요청을 정중히 고사했다고 밝혔다.
환자단체가 사직서를 제출한 의사 명단 공개를 검토해 주목 받은 사례도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한국중증질환자연합회는 의료대란 진행으로 환자들 피해와 불만이 커지자 최후의 수단으로 사직 전공의와 사직 의대 교수 명단 공개를 각각 추진했다. 중증질환자연합회 관계자 B씨는 “회원들 요청이 거세 명단 공개를 적극 검토했지만 의료계와 감정싸움이 우려되고 실익이 없다는 판단이 들어 추진을 중단했다”고 설명했다.
환자 보호자 C씨도 “만약 사직 의사 명단이 어떤 식으로든 공개됐으면 환자와 의료계 간 감정대립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라며 “결과적으로는 명단을 공개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환자단체에 힘이 실리는 상황과 관련, 단체 관계자 D씨는 “100여일간 아무도 환자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으며 정부와 의료계 입장이 주로 보도됐고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일도 거의 없었다”라며 “최근 일부 정상화된 느낌”이라고 말했다.
결국 정부와 의료계 대립으로 환자단체에 대한 관심이 늘고 위상은 올라갔지만 환자들과 단체가 희망하는 것은 진료 정상화로 파악된다. 상급종합병원 투석환자 가족 E씨는 “정부와 의료계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긍정적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정상적 환자 진료가 진행돼 환자들이 마음 편하게 치료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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