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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증질환단체 "정부·의료계 편안한가, 환자들은 진통제로 연명"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 = 전공의 집단행동이 이어지고 있는 29일 오후 서울 한 대학병원에 한 환자가 '인술제중'이라고 쓰여진 벽면을 지나치고 있다. 인술제중은 '어진 인술로 국민을 치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24.2.29 ksm7976@yna.co.kr
(서울=연합뉴스) 권지현 기자 = 정부의 의대 증원 추진으로 촉발된 의료공백 사태가 2주 넘게 장기화하자 중증질환 환자단체들이 "진통제를 복용하며 겨우 연명하고 있다"며 의료인들의 현장 복귀를 촉구했다.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등 7개 단체로 구성된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5일 발표한 호소문에서 "정부와 정치인, 의료계는 편안한가. 의료공백 속에 우리 중증질환자들은 긴장과 고통으로 피가 마르고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의료계에 환자를 희생시키는 무책임한 공방전을 즉각 멈추고 환자단체를 포함한 협의체를 구성하라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의료계는 '나 몰라라'하며 의료 현장을 떠났고, 정부가 준비한 대책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미봉책에 불과해 고통과 피로도는 점점 치솟고 있다"며 "국민과 환자를 위한다는 말은 이제 그만 하라"고 비판했다.
또 "2020년 전공의 파업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며 환자의 생명을 어떤 상황에서든 끝까지 지켜줄 의사가 앞으로는 양성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걱정된다. 의료계에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환자를 버리고 거리로 나가는 상황이 수시로 반복될 것을 생각하니 끔찍하다"고 말했다.
연합회 소속 단체인 한국췌장암환우회 변인영 대표는 "당장 죽을 병이 아니라며 2주째 항암이 미뤄지고, 항암을 견뎌 겨우 얻은 수술이 '응급이 아니다'는 이유로 취소되는 상황"이라며 "생명을 구걸이라도 하고 싶다. 전공의들은 고귀한 정신을 훼손하지 말고 돌아가라"고 호소했다.
한국루게릭연맹 김태현 회장은 "전쟁 중에도 적군이 부상을 당하면 치료해 주는 게 도리"라며 "의사의 본분에 맞게 병원으로 돌아오라"고 말했다.
[단독]멸종위기 산양 277마리 떼죽음...지난 겨울 강원엔 무슨일이
지난달 29일 오전 7시 55분 강원도 인제군 56번 지방도. 미시령 톨게이트를 지나자 눈이 1m 넘게 쌓인 도로변에 회갈색 털의 동물이 쓰러져 죽어 있었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Ⅰ급인 산양이었다.
국립공원공단 야생생물보전원 북부보전센터 직원 세 명이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타났다. 센터 소속 김홍일 수의사는 “피를 흘리거나 외상 흔적이 없어 로드킬 같지는 않다. 센터에서 사인을 확인한 뒤 문화재청에 멸실신고(천연기념물의 죽음을 알리는 신고)를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센터는 이 산양이 탈진 상태로 산에서 내려왔다가 도로를 건너지도, 다시 산으로 올라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죽은 것으로 추정했다.
겨울철에 산양 277마리 폐사…“전체 개체 10% 수준”
지난겨울에 강원 지역에 내린 기록적인 폭설로 인해 산양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청 제출 자료에 따르면, 겨울철(지난해 11월~2월) 전국 산양 멸실신고 건수는 총 277건이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겨울철에 멸실신고 된 산양은 매해 14~21마리였는데 지난겨울에는 10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특히 지난달에 폭설이 연속해서 내린 강원 지역에서만 274마리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손장익 국립공원 야생생물보전원 북부보전센터장은 “2020년 기준 전국 산양 개체 수는 2000마리였는데, 현재 정확한 개체 수는 조사되지 않았지만 (겨울철에 죽은 산양이) 전국 개체 수의 10% 정도는 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산양 구조하느라 수의사도 탈진”
설악산 국립공원에서 야생동물을 구조하는 북부보전센터는 지난해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55마리의 산양을 구조했다. 이전 겨울철에는 구조한 산양 개체 수가 매해 2마리에 불과했다. 손 센터장은 “구조 개체들은 상태가 많이 안 좋다. 현재까지 절반 이상 폐사했다”며 “이들을 돌보는 수의사도 탈진할 정도로 비상 상황"이라고 전했다.
센터는 지난달 강원 산지에 내린 기록적인 양의 눈이 산양 떼죽음을 불러온 원인으로 봤다. 기상청에 따르면, 미시령 도로 인근 향로봉 관측소에는 2월 내내 폭설이 쏟아지면서 22일에 적설계 측정 높이(160㎝)를 넘길 정도로 눈이 쌓이기도 했다. 손 센터장은 “2010년 이후로 이렇게 장기간 눈이 내린 적이 없었다”며 “녹은 눈이 얼고, 그 위에 눈이 내리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산양이 산속에서 먹이를 구할 수 없게 돼 탈진 상태로 내려온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설악산 인근에서는 먹이를 찾아 산에서 내려온 산양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지난달 29일 미시령·한계령·진부령 도로를 왕복 118㎞가량 차로 이동하면서 총 17마리의 산양을 발견했다. 설악산 서식 개체 347마리(지난해 북부보전센터 조사 결과)의 약 5%를 반나절 만에 만난 셈이다. 30년째 산양 보호 운동 중인 박그림설악녹색연합 회장은 “산양은 사람과 100m 이상 거리를 두는데, 지금 산양들이 탈진 상태라 힘이 없어 10m 앞에서도 도망을 못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맷돼지 막는 빽빽한 ASF 펜스가 사태 악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방역을 위해 국립공원 내 도로를 빽빽이 감싼 펜스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먹이를 찾아 눈이 녹은 절개지로 내려온 산양들이 펜스와 절개지 사이에 쌓인 눈에 빠져 탈진하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정인철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사무국장은 “설악산을 가로지르는 도로에 전부 펜스가 처져 있는데, 절개지와 펜스 사이에 눈이 1m 넘게 쌓여있다가 보니 산양이 여기에 빠져서 허우적대다 탈진하고 있다”며 “겨우 펜스를 뚫고 나와도 도로가 있어 반대편 계곡으로 가지 못하거나 로드킬을 당한다”고 했다.
환경부는 ASF 야생멧돼지 확산 차단을 위한 광역 울타리를 2019년부터 2021년 사이 설치했다. 정 사무국장은 “설악산 지역은 ASF가 종료됐고, 펜스의 ASF 확산 방지 효과도 논란이 있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펜스를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단절된 설악산 생태축 복원해야”
올해 2월의 많은 눈은 해수 온도 상승 등 온난화로 인한 겨울 강수(눈·비) 증가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초봄인 5일에도 강원 산지에 10~15㎝의 많은 눈이 내릴 것으로 예고됐다. 설악산 산양 집단 폐사가 3월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산양의 떼죽음 피해를 근본적으로 막으려면 도로로 단절된 설악산을 이어주는 생태 통로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설악산 국립공원 내 생태통로는 한계령과 진부령 도로에 각 1곳뿐이다.
송의근 국립생태원 연구원은 “산양뿐 아니라 많은 야생동물을 위해 생태통로는 더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생태통로를 지을 위치를 면밀히 연구·조사해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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