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돼지열병(CSF)의 청정화를 위해 돼지열병 백신을 생마커백신으로 빠르게 전환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야외주와 감별이 가능하고 생산성도 개선할 수 있는 생마커백신에 대한 이점이 강조되면서, 이르면 내년부터 생마커백신 지원사업에 대한 정부 예산이 편성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사)대한한돈협회(회장 손세희)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월 7일 민·관·학 합동 방역대책위원회 제1차 돼지열병 대책반 회의를 개최했다.
돼지열병은 제1종 법정가축전염병으로 전파성이 강하고 치사율도 높다. 이에 정부에서는 사육돼지에서 롬주 기반의 백신을 접종하고 멧돼지에 미끼백신을 사용해 방역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이에 사육농가에서는 지난 2016년 이후 7년 이상 백신 접종 비발생 상태를 유지 중에 있으며, 민·관·학 논의를 통해 청정화 로드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되며 이 같은 자리가 마련됐다.
이날 대책위에는 구경본 대한한돈협회 부회장, 이주원 농림축산식품부 구제역방역과 사무관, 안동준 농림축산검역본부 바이러스질병과 연구관, 장경수 부산가톨릭대학교 교수, 문두환 대한수의사회 부회장, 여창일 도드람양돈농협 동물병원 팀장, 이희영 대한한돈협회 이사(동산농장 대표), 최재혁 대한한돈협회 정책기획부장 등이 참석했다.
■ 생마커백신 사용 시 항체 감별진단 가능, 안전성·생산성 개선에 효과적
안동준 연구관은 이날 '돼지열병 발생상황과 청정화를 위한 백신 및 진단법'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현재 국내에서 허가 유통 중인 백신의 장단점을 비교하고 백신 교체에 따른 경제효과와 검사법 개선사항을 제안했다.
기존 지원사업으로 농가에 공급되는 롬주백신은 단가가 256원/두인 반면 생마커백신은 400~500원/두 수준이다. 현재 관납으로 공급되는 돼지열병 롬주 백신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점유율이 약 70%에 이른다.
그러나 기존 롬주백신은 돼지열병 방어에는 효과가 있지만 야외 감염과 백신 접종을 구별할 수 없고 발열, 식불, 유사산 등의 증상과 생산성이 일시적으로 저하되는 부작용이 있다. 반면 생마커백신의 경우 항체 감별진단이 가능하며 출하일령도 롬주백신 대비 7~10일 정도 앞당길 수 있고 접종 부작용도 적다는 장점이 있다고 안 연구관은 설명했다. 이처럼 안전성과 생산성 향상 측면을 고려한다면 생마커백신으로의 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안 연구관은 생마커백신 전환에 맞춰 새로 개발된 진단법이 현장에 도입될 수 있도록 법령 정비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내놨다. 기존 돼지열병 항원 진단법은 ELISA와 PCR 검사 방법으로 매년 9만5,000여 두가 검사되는데, 이는 시간도 오래 소요되고 감별진단을 위해 추가 검사도 필요하다. 특히 검출을 위해 많은 바이러스량이 필요해 제대로 진단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검역본부에서는 롬주, 생마커주, 야외주를 PCR로 한 번에 검출할 수 있는 기술을 최근 개발했다.
이와 관련 안 연구관은 "현재 이 기술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가축방역사업실시요령 돼지열병 혈청검사 항목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며 "2025년 가축방역사업실시요령에서 돼지열병 항원검사 ELISA, PCR 등의 진단액명을 돼지열병 항원검사 감별 PCR로 바꿔주면 해당 진단법으로 문제되는 바이러스를 빨리 검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생마커백신을 활용한 청정화 로드맵 제시
이어 돼지열병 청정화 로드맵 발표에 나선 장경수 교수는 "세계동물보건기구(WOAH)의 돼지열병 청정화 기본 요건을 살펴보면, 긴급백신 접종과 살처분 수행 시 WOAH 기준에 따라 백신축과 감염축이 감별이 가능하면 백신축 도축 없이 마지막 발생 후 3개월이 경과된 경우 청정화 지위 회복이 가능하다"며 "생마커백신이 기존 백신보다 효능이 우월하고 부작용도 적은데 야외주와 감별될 수 있다면 청정화 모델에 가장 좋은 형태(방법)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날 장 교수는 제주도를 제외한 육지의 사육돼지에 생마커백신을 사용하고 야생멧돼지에 미끼백신을 사용해 돼지열병을 컨트롤하는 전략을 내놨다. 이에 따르면, 백신 교체를 위한 시범사업 실시 이후 △2025~2027년 청정화 기반 구축 단계로 롬주 백신의 생산 중지 정책을 통해 전국적으로 생마커백신 접종 강화, 2026년부터 감별진단법 교체 △2028~2030년 청정화 확인 단계로 백신 접종 중단 대비 위험도 평가 분석 실시(12개월간 비발생 시 청정화 달성) △2031~2032년 청정화 달성 단계로 백신 접종 중단(멧돼지 미끼백신 정책 및 모니터링 지속) 및 돼지열병 감별 모니터링 강화와 철저한 방역관리 실시 △2033년부터는 청정화 유지 단계로 전국적인 모니터링 검사와 국경 검역을 강화하는 계획으로 마련됐다.
장 교수는 "이 전략의 장점은 야생멧돼지 돼지열병의 방제요건(미끼백신)을 확보할 수 있고 외부 유입으로 인한 돼지열병 발생 차단이 가능하고 감별이 가능하다는 것이지만 단점은 생마커백신 및 진단법 교체를 위해 예산이 필요하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장 교수는 제주도의 경우 현재 제주도 100여 농가가 사용 중인 E2마커백신을 개발 중인 수직방어용 E2마커백신으로 전환해 청정화를 진행하는 방향도 제안했다.
■ '생마커백신 전환' 공감대 확인, 빠른 도입 위해 다방면 노력 필요해
이날 회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생마커백신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빠른 정책지원이 뒤따라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청정화 목표가 아니라 생산성 정상화를 통한 농가 경쟁력 강화만 놓고 보더라도 생마커백신 사용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문두환 대한수의사회 부회장은 "롬주백신 사용으로 6일 정도의 출하지연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는 글로벌 경쟁력에서 뒤쳐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며 생산성의 정상화를 위해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지자체별로 지원 비용이 달라 지역별 생마커백신 사용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상황을 지적하며 지방에 의존하기보다는 국가에서 강하게 정책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주원 농식품부 사무관은 "가축전염병예방법에 따라 백신 접종이 실시되는 질병이기 때문에 만약 생마커백신 지원이 결정된다면 전국 단위로 실시될 것"이라며 "돼지열병 백신은 다른 백신에 비해 단가가 낮은 편이어서 국비 20억원 내외로 증액하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사무관은 "현재 예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협의를 통해 내년에 반영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이희영 대한한돈협회 이사(동산농장 대표)는 농가 입장에서도 생마커백신과 롬주백신의 생산성 차이가 확실히 느껴졌다며 생마커백신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는 "예전에는 보통 170일령 정도에 출하가 이뤄졌는데 지금은 구제역 백신 접종으로 7~10일, 사료에서 단백질을 빼는 바람에 무조건 10일 이상 늘어졌다. 거기다 돼지열병 백신까지 맞으면 30일이나 늘어나게 된다"며 생산성 정상화를 위해서 지금부터라도 회원 농가들에게 기존 롬주백신의 부작용을 알리고 생마커백신의 사용을 적극적으로 독려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날 구경본 부회장은 회의를 마무리하며 "정부의 협조만 있다면 2025년부터 생마커백신으로 교체될 수 있을 것"이라며 "한돈농가에서 생마커백신을 사용했을 때 어떤 장점이 있는지 로드맵과 함께 알려 저항이 덜할 수 있도록 홍보를 부탁한다"고 당부했다.
【지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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