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은 2019년 9월 파주 돼지 농장에서 처음으로 발견됐다. 이어 그해 10월 연천 야생 멧돼지에서 ASF가 발견된 이후 돼지 농장과 야생 멧돼지에서 지금까지도 ASF 바이러스는 계속 검출되고 있다. 야생 멧돼지의 경우 경기·강원 북부에서 기승을 부리다가 충북, 경북을 거쳐 최근에는 부산에서까지 발생하고 있고, 동시에 돼지 사육 농가에서도 종종 발생하다가 올해 1월에는 최초 발생지인 파주의 사육 농가에서 다시 발생했다.
치사율이 높은 ASF 바이러스는 전염성이 낮으나 감염된 냉동육에서 3년 가까이 생존하는 등 오랜 시간 지속될 수 있어 유럽에서는 소독해도 바이러스가 사라지지 않는 경우들도 보고된다. 다른 나라에서는 돼지를 방목 사육하는 경우가 많아 야생 멧돼지와 집돼지가 직접 접촉을 통해 상호 감염되는 사례가 종종 보고되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외부와 차단된 돈사에서 실내 사육하는 것이 대부분이라 병든 야생 멧돼지가 직접 사육 돼지에게 바이러스를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도 멧돼지의 ASF가 만연한 오염 지역 내의 농장 사육 돼지에서 ASF가 종종 발생하고 있는 것은 직접 접촉이 아닌 다른 경로를 통한 바이러스의 유입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보다 먼저 ASF를 경험했던 유럽에서는 야생 멧돼지 서식 밀도 저감, 빠른 사체 제거, 펜스 설치를 통해 야생 멧돼지 ASF 확산을 막았으며, 우리나라도 이 세 가지 방법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이 중 펜스를 통한 억제 방법은 단순히 멧돼지의 이동을 저해하는 것이 아니라 바이러스를 오염지 내에 가두자는 의미이다. 가장 빠르게 야생 멧돼지 ASF를 종식했던 체코의 경우에는 차단 시설을 통해 바이러스의 외부 유출을 막고 오염 지역 내의 사체를 빨리 제거하는 한편, 남아 있는 야생 멧돼지들을 덫과 스나이퍼를 통해 조용히 포획하여 최초의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동아시아에서는 이웃 중국의 사육 돼지에서 ASF가 만연할 때 양성 돼지의 사체가 대만의 바닷가까지 떠내려간 경우가 있었으나, 대만은 적극적인 방역을 통해 현재까지 ASF를 잘 막고 있다.
결국 ASF 확산 차단의 핵심은 매개체인 야생 멧돼지나 사육 돼지의 관리가 아닌 근본 원인인 바이러스 관리에 있다. 야생 멧돼지 개체군 내에서 ASF가 번져 나갈 수 있는 오염 지역과 근접한 지역에서는 개체군의 이동을 최소화하는 포획을 통해 질병의 매개체인 야생 멧돼지를 줄여 나가야 한다. 오랜 시간 생존하는 ASF 바이러스의 특성상 해당 질병이 발병했던 오염 지역에 대한 출입을 최소화하고 오염원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소독과 방역에 철저해야 한다. 야생 멧돼지 ASF가 검출된 경기, 강원, 충북, 영남권뿐만 아니라 인위적 전파 가능성 등을 고려해 야생 멧돼지 ASF 비발생 지역에서도 야생 멧돼지 관리를 놓쳐서는 안 되고, 우리나라 전역에 있는 사육 농가에서도 오염원 유입에 항상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역 관리와 함께, 중장기적으로 ASF를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백신의 개발을 통해 ASF를 종식해야 한다.
[ⓒ 세계일보 & Segye.com,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