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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 4시간만에 숨진 딸… 아빠는 다가가지도 소리내 울지도 못했다게시글 내용
코로나 사망자 하루 100명 육박, 서울 화장터 르포
작별 인사 시간 고작 1분30초, 얼굴 못보고 관 향해 큰절
엄마 잃은 딸 “마지막으로 얼굴 한번 보게해 달라” 애원
14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유족들이 고인의 시신이 담긴 관을 향해 절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14일 오후 5시 30분쯤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화장터인 이곳에는 흰색 차량 19대가 꼬리를 물고 줄지어 정차하고 있었다. 녹색 십자 마크를 달고 있는 이 차량들은 구급차량처럼 보였지만 사이렌을 달고 있진 않았다. 대신 ‘○○특수’라는 글자가 옆면에 붙었다. 코로나로 숨진 이들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였다. 이날 승화원에 예약된 코로나 화장 예약 명단에는 고인 20명의 이름이 올랐다.
운구 차량 한 대가 본관 앞에서 섰다. 대기하던 화장터 관계자 가운데 한 명이 트렁크를 열고 관을 꺼냈다. 바퀴달린 들것에 얹힌 채였다. 관이 있던 트렁크에 연막소독기 ‘뿌레’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뿌려졌다. 관도 상하좌우 소독됐다. 소독을 끝내고 관을 덮은 천막을 살짝 들춰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절차를 마치면, 화장터 관계자들이 들것에 실린 관을 화장시설이 설치된 본관으로 밀어 옮겼다. 시신을 내린 운구 차량이 빠져나가면, 곧바로 시신을 태운 그 다음 운구 차량이 들어섰다. 이런 과정이 이날 20번 되풀이됐다.
14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터 관계자들이 코로나 시신이 담긴 관을 차량에서 꺼내 옮기고 있다. /김명진 기자
“고인 김○○님 댁, 앞으로 나와주세요.” 본관 로비에서 이 같은 안내가 나오자 별도 공간에서 대기 중이던 유족들이 로비 가운데로 향했다. 그러다 빨간색 차단막 앞에서 멈춰섰다. 고인의 시신이 든 관에서 열 걸음 떨어진 자리다.
전신을 하얀색 방호복으로 감싼 화장터 직원 5명이 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중 한 사람 손에는 ‘김○○’라고 적힌 팻말이 들렸다.
“성함 확인해주세요.”
유족 홍모(여·47)씨는 고인 영정사진을 바닥에 놓은 뒤, 팻말에 한번 눈길을 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관을 향해 울음 섞인 목소리로 “엄마...”라고 했다.
14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 본관에 들어온 코로나 시신이 담긴 관이 관계자들에 의해 화장터로 옮겨지고 있는 모습. /김명진 기자
홍씨는 “얼굴은 못 보나요? 어머니 모습 못 봐요?”라고 물었다. 화장터 관계자는 “이따가 유골 받으실 때 볼 수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홍씨는 재차 “얼굴은...”이라고 물었다. “얼굴은 안 돼요”라는 답을 들었다. 홍씨와 유가족 4명은 관을 향해 두차례 절을 했다.
관 주위에 선 화장터 관계자들은 유가족에게 목례했다. 관을 향해서도 한 차례 고개를 숙였다. 그런 뒤 관을 화장터로 옮겼다. 홍씨는 관을 옮기는 사람들 등 뒤에 대고 “잘 부탁드립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1분 30초 걸렸다.
홍씨 어머니의 화장 순번은 이날 화장 일정이 잡힌 20명 가운데 12번째였다. 승화원 본관은 순번을 기다리는 유족들과 장례식장 관계자들, 시신을 운구했던 차량 운전자들로 붐볐다. 이들 대부분 흰 방호복을 입거나 상복을 갈음한 검은색 외투 차림이었다. 그 가운데서 등산복 차림의 남성이 유독 눈에 띄었다. 그는 고인 이름이 호명되자 배낭을 불룩 멘 채 나타났다. 말없이 10초쯤 섰다가 90도로 인사를 하고 관을 떠나보냈다. 딸의 마지막 모습을 보러 온 이모(65)씨였다.
이씨 딸은 암 투병 중 코로나에 걸려 서른여덟 나이에 숨졌다. 유방암과 갑상선암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왔지만, “항암 치료를 마친 뒤 2~3개월 약물 치료를 받으면 호전될 것”이란 말을 이씨는 믿었다.
/김명진 기자
그런 희망은 딸이 입원해 있던 병원에 코로나 환자가 다녀가면서 무너졌다. 딸은 격리 병동으로 옮겨졌다. 곁에서 간호하던 아내는 자가 격리 대상자라는 통보를 받고, 건강한 시절의 딸이 살던 서울 신월동 집에 머물렀다. 아내 대신 딸 병구완을 해야 했다. 옷가지를 챙기러 본가인 부산에 내려갔다. 그러다 13일 새벽 5시쯤 딸이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받았다. 급히 상경했지만 4시간 뒤,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딸 시신 검안지에는 ‘중간 사인’ 항목에 ‘COVID-19 감염’이라고 적혔다고 한다. 기자가 이씨에게 ‘등산 차림으로 오셨다’고 말을 건네자 “딸 돌보며 병원서 지내려고 부산 본가에서 옷이랑 속옷이랑 일주일치 챙겨온 거다. 그런데 어제 코로나로 딸이 4시간만에 죽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평소 딸의 건강이 좋지 않아 오래 살지는 못할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갈 줄은...”이라고 했다.
격리 중인 아내는 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지 못했다. 젊은 딸을 보낸 이씨는 크게 소리내어 울지는 않았다. 그건 이곳을 찾은 다른 유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소리내 울기에는 이들에게 주어진 애도 시간이 너무 짧았다.
이날 마지막 순번으로 화장되는 시신은 고(故) 이국영(55)씨였다.
홍콩 국적으로 한국인 아내를 만나 서울에 터 잡고 살던 외국인이었다. 그는 지난 10일부터 외부와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 업무와 학업 등을 이유로 아내와 아들은 지방에서 따로 떨어져 살고 있었다. 이틀 넘게 연락이 닿지 않자, 그의 대학생 아들이 12일 서울 장안동의 이씨 자택을 직접 찾았다.
아들이 이씨를 발견했을 때 그는 침대에 누워있었고 숨을 쉬지 않는 상태였다고 한다. 아들은 아버지가 죽었다고 신고를 했다. 방역당국은 그가 코로나로 숨졌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검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시신을 하루 동안 방에 그대로 두라고 지시했다.
검체 채취 결과 시신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코로나 시신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아들도 코로나 검사를 받았고 하루 뒤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씨 시신은 그 사이 자택에 방치됐다가, 지정병원으로 옮겨져 임시 보관됐다가, 대형병원 영안실 안치를 거쳐 화장터로 옮겨졌다. 급증한 코로나 사망자 탓에, 화장터가 정해진 것도 14일 오후에서였다고 한다. 유족을 도우러 왔다는 고인의 지인 권모(46)씨는 “고인은 아들도 어리고 아내 분 혼자서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기가 어려울 듯해 도와주러 왔다”며 “시신과 함께 있던 아들이 아빠 모습을 마지막으로라도 본 게 다행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16일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에서 화장될 코로나로 숨진 시신의 순번. /김명진 기자
14일 0시 기준으로 코로나 사망자는 94명이다. 누적 사망자는 4387명으로 집계됐다. 정부 방역 지침에 따르면, 코로나 환자가 사망했을 때는 ‘선(先) 화장 후(後) 장례’가 원칙이다. 시신은 수의 대신 입던 옷 그대로 비닐백에 담긴 뒤 관에 들어간다고 한다. 불에 태워져 유골함에 담긴 뒤에야 가족들과 만날 수 있다. 정부는 이런 지침을 내린 근거로 ‘장례 과정에서 시신과 유족의 접촉에 의한 감염 우려’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코로나 시신 선 화장 후 장례’가 필수적인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이미 여러 차례 제기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해 3월 장례 가이드라인에 ‘시신을 통한 코로나 감염이 이뤄진다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국회에선 WHO의 입장을 근거로 현 정부의 지침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코로나 환자 장례 절차에) 많은 문제가 있어서 전문가, 장례 협회와 논의 중이다. 마지막 검토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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