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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보다 무서운 인포데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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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35 2021/07/01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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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의 한 거리에서 라디오를 듣고 있던 한 시민이 코로나19 예방 소독 연기가 나오자 입과 코를 막고 있다. 필리핀 보건부는 감염자가 급증하고 있다면서 공급 부족 및 국민의 거부감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지지부진한 것을 우려했다. /사진= [마닐라=AP/뉴시스] #필리핀 마닐라에서 일하는 건설인부 게리 카시다는 천식때문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우선순위에 올라와 있지만 주사를 맞지 않기로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백신이 대량 학살에 사용되고 있다는 영상을 봤기 때문이다. 카시다는 "다른 나라에서 백신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또 그 사실이 어떻게 은폐되고 있는지에 대한 많은 글을 페이스북에서 읽었다"고 말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최근 최악의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고통받고 있지만 수백만명의 사람들은 예방 접종을 미루고 있다. 잘못된 정보나 악성루머가 SNS등을 통해 빠르게 퍼지는 인포데믹(infodemic, 거짓정보유행병)때문이다. 가뜩이나 의료시스템과 백신 수급이 불안정한 동남아에서 일부 거짓 소문이 확산되면서 팬데믹(전세계적 대유행병) 종식 노력이 물거품 위기에 처했다.



"백신으로 생체정보 수집"…팬데믹보다 무서운 인포데믹


1일 블룸버그통신은 필리핀 여론조사기관 사회기상관측소의 최근 설문조사를 인용해 "필리핀 국민 68%가 백신 접종을 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태국과 인도네시아도 각각 국민 3분의 1, 5분의 1이 백신 접종을 망설이고 있다는 설문조사가 나왔다. 국민들이 백신 맞기를 주저하면서 자연히 접종도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 태국과 필리핀 모두 1회 이상 백신을 접종받은 사람의 비율이 10%도 채 안된다.

멜리사 플레밍 유엔 글로벌커뮤니케이션담당 사무차장은 "오염된 미디어 환경 탓"이라며 "인포데믹이 백신에 대한 잘못된 정보에 초점을 두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심어주고 있다"고 비판했다.

백신에 대한 거짓 정보는 종류도 다양하다. 가톨릭 신자가 많은 필리핀에선 백신을 맞으면 '반그리스도'라는 낙인이 찍힌다는 내용의 영상이 천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에선 백신이 유전자와 신체 장기를 변형시키고 사망에 이르게 한다는 소문이 왓츠앱을 통해 확산되고 있다. 그 외에도 코로나19 백신이 마이크로칩을 이식시켜 생체 정보를 수집하는데에 사용된다는 괴소문도 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팬데믹뿐만 아니라 인포데믹과도 싸워야 한다. 카이리 자말루딘 말레이시아 과학기술혁신부 장관은 백신에 마이크로칩은 없다며 백신의 안전성을 국민들 앞에서 설명해야했다.

싱가포르에선 지난달 말 백신이 DNA를 바꿀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보건부가 보도자료를 내고 소문 바로잡기에 진땀을 뺐다.

블룸버그는 "(괴소문으로 인한) 저항은 인구의 80% 이상을 접종시켜야 하는 각국 정부들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라며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하는 코로나19 회복력 순위에서 이들 국가들은 현재 하위 10개국에 속해있다"고 전했다.

아시아태평양지역(APAC) 수석 경제학자 스티브 코크레인은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집단면역이 없다면 여행과 서비스 산업뿐만 아니라 비지니스 분야에서 국제 투자를 유치하는데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한 코로나19 백신 접종소에서 의료진이 백신 접종 준비를 하고 있다. 코로나19가 급증하면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백신 접종 속도를 높이기 위해 한 전시장을 대량 접종소로 개조해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사진= [쿠알라룸푸르=AP/뉴시스]


"화이자·모더나만 맞겠다"…백신 종류 따지며 접종 늦어지기도


국민들이 백신의 종류를 따지는 것도 백신 접종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다. 선진국들이 화이자-바이오엔테크, 모더나 등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 공급량 대부분을 가져가면서 개발도상국 등 가난한 나라들은 백신 선택권을 갖지 못했다. 한정된 공급과 다양하지 못한 백신 종류가 국민들의 백신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블룸버그는 "한 국가에서 단 한 종류만의 백신을 맞게하면 많은 사람들이 더 높은 예방효과를 가지는 주사를 맞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길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태국에선 일부 국민들이 중국의 시노백과 영국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필리핀에선 올해 초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50%가 미국산 백신을 가장 신뢰한다고 답했지만, 정작 필리핀이 확보한 백신 대부분은 시노백이다.

백신 접종을 독려하기 위한 묘책도 쏟아지고 있다.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백신 접종 거부자들을 투옥하겠다"고 위협하고 나섰다. 태국 북부의 한 지역에선 백신 접종자들에게 추첨을 통해 소를 주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한 시골에선 백신 접종자들은 무료로 닭을 받을 수 있다.

싱가포르 마운트 엘리자베스 노베나 병원의 렁회남 감염내과 의사는 "코로나19 사태 초기 확산을 효과적으로 막아온 싱가포르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조차 가짜 뉴스에 굴복하고 있다"며 "코로나19가 인간에게 위협적인 이유는 백신에 대한 망설임이 크다는 점과 전세계적인 공동 대응이 부족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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