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병원 입원 갈수록 '바늘구멍'.. "암 생존자 치료권 박탈하는 의료시스템 개선해야" 김성주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대표 심평원, '정맥주사' 외엔 급여 삭감.. 대다수 암환자 요양병원서 내쫓겨 환자 특성 맞춘 입원기준 필요.. 생존자 삶의 질 제고방안 논의해야
2018년 여름 식도암으로 전남 담양군의 한 요양병원에 입원 중이던 김성주 씨(59)의 동료 환자 10여 명은 갑작스러운 퇴원 통보를 받았다. 병원 측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이 입원진료비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를 전액 삭감했으니 하루빨리 병상을 비워 달라고 했다. 불필요한 입원을 막아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줄이겠다는 것이 심평원이 밝힌 삭감 이유였다.
환자들은 크게 반발했다. 심평원은 “외박이나 외출이 잦은 환자들은 입원보다 통원치료가 바람직하다”고 했지만 실제 환자들은 방사선 치료 등 추가 치료를 위해 외박이 불가피한 경우도 많았다. 심평원은 “단체가 아닌 개인 민원은 일일이 상담할 수 없다”며 항의 방문한 환자들을 돌려보내기도 했다. 20년 경력의 수학 강사이자 네 식구의 가장이었던 김 대표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를 만들기로 결심한 순간이었다.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만난 김 대표는 “협의회를 함께 만든 40명 중 9명이 1년 안에 세상을 떠났고 퇴원 후 두 달 만에 사망한 회원도 있다”며 “당시 입원 적정성 판단이 얼마나 잘못됐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암 생존율 70%… 하지만 갈 곳이 없다
김 대표 역시 8년째 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식도와 위, 폐 일부를 잘라냈다. 한때 76kg까지 나갔던 몸무게는 47kg까지 줄었다. 내 몸 건사하기에도 여념이 없을 암 환자가 ‘무보수’ 대표를 맡아 총대를 멘 이유는 뭘까.
김 대표는 “암 생존자들이 갈 곳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암 등록통계에 따르면 국내 암 환자는 2018년 말 기준 200만 명을 넘었다. 2019년엔 약 32만 명이 암 진단을 받았고, 8만여 명이 암으로 숨졌다. 암 진단 후 5년 이상 생존할 확률은 57.8%. 일반인의 기대 생존율과 비교한 5년 상대 생존율은 70%가 넘었다.
하지만 암 완치율이 높은 것과 암 생존자 돌봄이 잘되느냐는 다른 문제다. 특히 암 환자의 요양병원 입원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2017년 보험사들은 요양병원 입원치료는 암 치료 목적의 의료행위가 아니라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최근엔 심평원이 요양병원 입원 조건을 ‘매일 마약성 진통제를 정맥 주사로 투여하는 환자’로 기준을 강화해 논란이 됐다.
김 대표는 “주사제 처방을 받는 환자는 호스피스 병동에 있을 법한 말기 암 환자들이고, 암 환자 대다수는 경구용이나 패치용(부착형) 진통제를 처방 받는다”며 “사실상 암 환자는 요양병원에 입원하지 말라는 뜻”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요양병원의 부당 수급 관행이 문제라면 암 환자 특성에 맞는 환자 분류 기준과 요양기관 등 맞춤형 사후관리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환자는 ‘을’… 진료실 안 권익 침해도 심각
김 대표가 만든 식도암 환자 단체 채팅방에는 하루 평균 500개 이상의 질문과 답변이 쌓인다. 열이 나는데 바로 병원에 가야 하는지, 특정 치료제가 급여 대상인지 등을 묻는 환자들이다.
병원에서 당한 부당한 처우를 호소하는 환자들도 있다. 한 환자는 수술하면 목소리를 잃을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수술 여부를 5분만 고민해 보겠다고 했다가 “방에서 당장 나가라” “기기를 직접 사서 치료하라”는 등의 폭언을 들어야 했다. 김 대표는 “내성이 생겨서 다른 약을 써야 한다던 의사가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하라고 강요하며 6주 동안 약을 바꿔주지 않아 가슴을 졸인 환자도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는 주요 대형 병원에 쏠리는 암 진료 시스템의 폐해라고 지적한다. ‘진단-치료-퇴원’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하는 구조에서 환자 특성에 맞는 교육 등 ‘케어 플랜’을 제공할 여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국민 5명 중 1명은 본인이나 가족이 암 유병자인 셈”이라며 “암 생존자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정부와 의료계, 환자들이 함께 논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댓글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