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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게 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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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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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351 2013/01/0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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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국에서 근무하다 보면 예쁜 여성을 자주 만난다. 특히 우리 방송국의 여자 PD들은 하나같이 미인이다. 예쁜 여성을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세상살기 참 좋겠다" 싶은 엉뚱한 마음이다. 의식 있는 분들로부터 쏟아질 비판을 감수하고라도 솔직한 나의 속내를 드러내 보자면, 살다 보니 예쁘다는 것이 결코 전부는 아닐지라도 뭔가는 플러스가 되더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 봉봉 사중창단 아저씨들은 꽃집의 아가씨가 외모보다 마음이 더 이뻐서 이쁜 거라고 노래했다. 그렇게 세뇌를 당했는데도 '이쁜 것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은 철 들면서 나의 어린 마음에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셋째 여동생은 타고난 미인이다. 출생의 비밀을 캐고 싶었을 만큼 예쁘게 생겼다. 어린 시절, 집에 손님이 오시면 늘 반복되던 이야기. "그래, 말로만 듣던 그 이쁜 딸이구나. 인형 같이 이쁘다. 어디 보자! 아, 네가 큰딸이구나!"

긴장하고 서 있는 내 앞에서 이어지던 단골 멘트. "어머! 큰딸은 참 공부 잘하게 생겼네." 하하하. 그래서 난 정말 공부를 잘했다. 열심히 했다. 울며 겨자 먹기로라도 감사할 일이다.

90년대 초반, 많은 인기가수와 라디오 일을 함께했다. 그중에서도 참 예쁜 여성으로 기억되는 사람이 강수지 씨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니 이제는 지긋이 나이 든 중년이 되어 돌아왔던데 그래도 여전히 예뻤다.

당시 청순가련 소녀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강수지 씨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꽃같이 이뻤던 그녀의 20대 시절. 공개방송을 끝내고 중국집에서 저녁을 먹었는데 식당을 나서려고 밖을 보니 중·고등학교 남학생 백여 명이 교복을 입은 그대로 새까맣게 진을 치고 앉아 있다. 가수를 따라다니는 여학생들은 지금도 많지만 남학생들이 그렇게 열렬히 모여드는 모습은 보기 드문 일이었다. '강수지'라는 청순가련한 예쁜 여자 가수로 남학생들이 끓기 시작했던 것이다.

서울 정동의 M모 방송국 공개홀 근처에 있는 중국집은 작고 허름했다. 출연가수와 스텝들까지 근 20명이 한방에 들어가 식사를 하다 보니 방 앞에는 신발이 잔뜩 쌓이게 되었는데, 남학생들은 중국집 주인에게 쫓겨나면서도 몰래 몰래 들어와 무더기 신발 속에서 강수지 씨의 신발을 골라내 사진을 찍어갔다. 도대체 냄새나는 신발 사진을 어디에 쓰려나 싶으면서도 좋아하는 그 마음을 이해 못할 바 아니어서 안타깝기도 했었다.

여드름 숭숭난 중·고 남학생들의 무조건적인 열정. 그러다 보니 그녀에 대한 여학생들의 질투도 대단했다. 뒤를 이어 예쁜 소녀형 가수였던 '이지연' 씨도 너무 이뻐 남학생들의 인기를 독차지했기 때문에 많은 여학생 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아야 했다. 시샘이 질투를 낳고 질투가 상처를 낳아 아픔도 많았으리라. 그러나, 아프기만 했을까? 이뻐서 받는 대접은 그래도 황홀하지 않았을까? 이쁜 게 전부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현실은 다르다.

이쁜 게 죄라면 나도 죄 지으며 살고 싶다. 비록 죄를 좀 지으면 어떠리. 세상살기는 한결 수월하지 않던가.

유정임 부산영어방송 편성제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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