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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마음 때문에
누가 나에게 교회가 있는 마을에 살면서 어떻게 기독교를 믿지 않았나 하고 물으면, 내가 믿지 않는 사람을 미워할까 하는 걱정 때문에 교인이 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필자가 어릴 때 우리 집에서 100m 안 되는 거리에 교회가 있었다. 교회의 앞과 뒤편의 밭은 모두 우리 밭이어서 엄마 따라 밭에도 자주 가서 교회가 우리 교회처럼 생각되었다. 자라면서 교회에 다니는 이웃들과 자주 만났다. 교회도 가고 믿고 싶었지만 독실한 유교를 숭상하는 집안이라 교회에 다닐 수는 없었다. 나중에 마음대로 교회를 다닐 수 있는 나이가 되어도 기독교인이 싫어졌다.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그들이 행하는 행위는 성경 말씀을 행하지 않았다. 자기의 종교를 믿지 않는다고 나를 미워하는 친구를 보았기 때문이다. 자기가 믿는 종교를 좋아하고 믿으면 형제보다도 더 좋아했지만. 내가 믿지 않는다고 미워한 일이 나의 마음에 걸렸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에는 교회에 자주 놀러 갔다. 목사님이 신기한 라디오도 들려주었고 재미나는 좋은 이야기도 들려주었기 때문인 것 같다. 목사님 사택에서 라디오를 처음 들었을 때는 매우 신기했다. 라디오 뒤편을 음성 따라 찾아도 사람이 없고 벽 너머인가 싶어서 방 사이 문을 열어봐도 아무도 없는데 사람의 목소리가 나는 일은 신기하기만 했다. 아마도 가지고 다니는 큰 가방만 한 크기의 라디오 안에 사람이 숨었나 생각되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밭 일을 거들다가 교회에서 싸움하는 시끄러운 소리에 교회로 갔더니 이웃 아저씨와 교회 강도사가 심하게 싸움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도 마흔이 넘은 독실한 기독교인이다. 강도사란 목사를 두지 못하는 교회 사정상 목사 대신 강도사를 두는 일이었다. 다른 사람은 나뿐이고 아무도 없고 두 사람만 싸우고 있었다. 그 아저씨가 교리에 어긋나는 말을 주장한다고 강도사가 매우 성내는 모양이다. 아저씨를 마사(마귀) 걸렸다고 고함치는 강도사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마사가 뭐냐고 훗날 물어보았더니 마귀라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 원수같이 말싸움하다가 아저씨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 버렸다. 아저씨는 나의 외족의 아저씨다. 어린 내 생각에는 저 아저씨가 저러면 이제 교회에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뒤 아저씨는 여전히 교회에 나가고 강도사도 더 싸움질하는 일은 보지 못했다. 싸움질할 때는 사랑을 잊어버렸고 이제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왔다고 생각되었다. 교인끼리는 혹독한 싸움도 사랑의 이름으로 되돌릴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과는 교회에 나오지 않는 그 미움 때문에 그 미움이 사랑으로 변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계속 다닌 사람은 좋은 장점이 생긴다. 인간관계 형성에 모든 숙달을 익힐 수 있어서 좋다. 자연히 사람을 많이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지고 말솜씨도 월등히 좋아진다. 달변의 사람이 만들어지는 과정이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이는 주위를 살펴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행동의 비교 연습과 말의 연습이 훈련된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런 달변의 말솜씨를 어디에 쓰냐가 문제다. 좋은 일에 사용하면 매우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다. 그러나 나쁘게 사용하면 아주 위험한 결과를 만드는 일이 된다. 다른 장점은 미루고 교세 확장에만 사용한다면 위험한 일이 되고 만다. 인류를 위한 사랑의 전파에 이용하는 말솜씨가 된다면 평화와 행복의 복지를 이루어내는 일이다. 잘못되면 사이비 종교처럼 흘러가다 망해 버리는 일과 같다. 그러나 잘되는 일은 오늘날 우수한 종교들이 모범을 보이는 일이다. 사랑의 전도사 이게 가장 소중한 목적인데 집단의 이익을 너무 치우치다 보면 진로가 어긋나는 일이다. 이게 사이비종교라 생각되기도 한다. 재물을 사랑하는 일이 급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소홀해지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 종단의 결과가 기다리는 종말은 뻔한 일이다.
말을 잘못 사용하는 일도 그렇지만 글을 잘못 사용하는 일도 폐해가 심각하다. 개인의 문학수업으로 달필의 경지에 올랐어도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함이 남아있다면 나쁜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특히 글을 쓰는 사이트에 보면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배어있는 글이 흔히 보인다. 사람을 미워하는 감성을 내보이는 글을 대하면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다. 정당한 비평이야 사람을 위해 좋은 본보기가 될 수 있지만, 미움이 먼저 앞서는 비평은 매우 위험하다. 사사로운 감정대립이 드러나는 글은 될 수 있는 대로 못 보는 척하고 지나면 되겠지만, 우선 글을 쓴 자기의 치부가 먼저 드러나는 일이다. 여성비하 세월의 악순환을 드러낸 미투가 사회의 청소에 역할이 되는 시대다. 이처럼 학문이나 예술의 집단에 치부가 권력이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진 일도 깨끗한 청소가 준비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가해자가 된 사람은 죽어서도 마음 놓기가 쉽지 않을 일이다. 문단 권력이란 말은 듣기 거북한 용어다. 권력이라는 더러운 용어를 들어야 할 이유가 맹랑하다.
학문이 숭고한 이념이라 여기는 경향이지만 학문도 잘못된 학파 파벌조성이 많은 사람에게 치명타를 남긴 일도 있었다. 성리학이 순수한 학문으로 우수한 가치 기준의 매김 된 역사를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성리학의 학문적인 본래의 의도는 어디 가고 정치세력에 이용당하면서 학문적인 지위마저 위해를 받은 세월이었다. 조선 정치사의 사화 같은 난세를 만들어 권력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변절한 학문을 누가 숭상하려 할 일이던가 말이다. 사람을 잡기 위한 수단으로 이끌어서 사랑이 흔적 없이 숨어 버린 학문으로 치달은 일이다. 인류가 살아가는 세계는 오직 사랑이 가장 소중한 것이다. 거기에는 많고 많은 값진 보배가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최고의 가치로움이다. 사랑에는 나쁘게 이용할 틈을 주지 않는다. 만약에 위선이라는 일이 있어도 시간이 지나면 발각되기 마련이다. 나쁜 의도로 사랑이라는 수단을 빌려서 행하더라도 결과는 사랑이 그 나쁜 의도 자체를 녹이는 힘을 가진다. 사랑은 하느님보다도 부처님보다도 먼저 현신하는 능력으로 종교도 똑같은 말로 사랑하라는 메시지를 공표하는 일이다. 이 숭고한 사랑을 사랑하게 되면 사랑받는 일은 당연하게 오는 일이다. ( 글 : 박용 2018.07.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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