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혁명적 발상 ‘방과 후 학교’… 강사진 내실화가 성공 관건
개봉박두’ 11월 3일 교육부가 내년부터 ‘방과 후 학교’를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도록 학교 내에서 양질의 교육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교원평가제’라는 현안에 이내 묻혀버렸지만 ‘방과 후 학교’는 사교육을 학교 영역 안에 끌어들인다는 것으로 교육계에서는 사실상 ‘혁명’에 가까운 발상이다. ‘본격 시행’이라는 커튼을 열어젖히는 순간, 일선 교육현장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놀랄 만한 변화가 일어날 수도 있는 핵폭탄급 위력을 갖고 있다.
이날 연구학교를 방문, 시범수업을 참관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 역시 이런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노 대통령은 공교육은 오전에 끝내고 오후에는 과외수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넌지시 피력했다. ‘방과 후 학교’는 노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 사교육비 경감 방안으로 제시한 아이디어로 청와대에서도 김진경 교육문화비서관이 교육부의 정책 입안 과정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5년 후에는 학교에서 사교육 수준의 교육을 공급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저소득층 자녀 국가서 지원 방침
교육부는 16개 시·도에서 초·중·고별 각 1개 학교씩 모두 48개 학교를 연구학교로 지정, ‘방과 후 학교’를 시범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11월 말께 연구 결과가 나오는 대로 12월말 운영계획과 가이드 라인을 발표할 예정이다.
당장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초·중등교육법 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게 되면 ‘방과 후 학교’가 본격적으로 실시될 터전이 마련되는 셈이다. 개정법률안의 23조 2항에는 학교의 장은 ‘방과 후 학교’를 설치·운영할 수 있도록 했으며, 학교 또는 학교운영위원회가 비영리단체와 비영리법인에 위탁해 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수익자 부담 원칙으로 학교의 장이 참여 학생·학부모로부터 비용을 징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놓았다. 또한 저소득층 자녀에게 국가에서 지원해줄 수 있도록 했다.
‘방과 후 학교’ 본격 실시에서 가장 민감하게 떠오르는 문제는 외부강사 초빙 문제. 특히 영어와 논술 등 입시과목에서 사교육 시장의 유명강사들이 대거 ‘방과 후 학교’에 진입할 경우 공교육의 위치가 흔들리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때문에 아예 법률개정안에 비영리단체와 비영리법인에 위탁해 운영할 수 있다고 명시해놓았다. 현재 ‘방과 후 학교’ 연구사업에 진출한 비영리단체는 YMCA로, 3곳의 지방 지부가 지역 학교에서 ‘방과 후 학교’ 강의를 맡고 있다. 다른 비영리단체로는 마산 호계중학교에 지역의 중리종합사회복지관이 위탁업체로 참여, 성공적인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전국의 1만여 개에 이르는 초·중·고의 ‘방과 후 학교’ 수요에 걸맞게 이를 위탁 운영할 비영리단체와 비영리법인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연구학교 외에 학교장과 운영위원회의 재량으로 운영되는 일부 ‘방과 후 학교’에서는 중소 영리업체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교육부의 방침 때문에 대부분 원어민·외부강사는 개인적으로 학교와 계약을 맺고 있다. 하지만 일부 외부강사는 중소 영리업체의 관리 속에 파견 형식을 띠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학교와 외부 강사와의 개인적인 계약이지만 이들 원어민·외부강사를 관리하는 중소 영리업체가 존재하는 것이다.
최근 ‘방과 후 학교’의 대명사로 떠오른 인헌중학교의 영어수업도 이런 예에 속한다. 11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이 참관한 인헌중의 ‘강감찬 학교’는 인근 학교 학생들도 많이 참여할 정도로 모범사례로 손꼽힌다. ‘강감찬 학교’의 원어민 영어교육은 학교운영위가 중심이 돼 기업에 교육을 의뢰하는 형식. 인헌중학교 정경남 교사는 “위탁은 아니며 학교에서 프로그램을 관리하고 외부업체에 교육을 의뢰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학교장이 외부 강사를 직접 채용하고 강사료를 지급하지만 외부 업체에서 시설을 기부채납형식으로 학교에 제공하고 외부강사를 파견하는 식이다. ‘강감찬 학교’의 영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주식회사 ‘애프터 스쿨’의 전기원씨는 “시설에 투자하였지만 학생들의 수강료 지급으로 수익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면서 “하지만 규모상 영리적 기업으로서의 간접적인 비용까지는 뽑아낼 수 있는 여건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민간기업 참여문제 민감한 사안
‘강감찬 학교’의 예처럼 이들 중소업체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다. 학교로서는 일반 사설 학원과 경쟁해야 하는 만큼 불안정한 프로그램으로는 ‘방과 후 학교’의 비용을 지불하는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때문에 이들 원어민·외부강사 수업의 질을 담보하는 신뢰성있는 기업을 필요로 한다. 초기 시설에 필요한 투자비도 비영리단체에서도 떠안기 힘든 상황이다.
영어 과목에서는 1997년 시작된 ‘방과 후 컴퓨터 교실’처럼 민간기업이 참여하는 방안이 가장 민감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민간기업에서 기부채납 형식으로 학교 내에 컴퓨터 교실 시설을 설치하고 계약기간 이후 학교에 기부하는 형식이다. 대개 3년 계약으로 컴퓨터 교실을 실시하고 있다. 컴퓨터 교실에 참여하고 있는 에듀박스, 대교, 웅진씽크빅 같은 기업에서는 ‘방과 후 학교’의 본격 시행을 염두에 두고 교재개발·강사확보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교원단체 반대 vs 학부모 찬성
민간기업의 참여 여부 열쇠는 교육부가 쥐고 있다. 학교는 물론 ‘방과 후 학교’ 진출에 관심을 둔 민간기업은 교육부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상황. 교육부 역시 민감한 사안인 만큼 분위기를 살피고 있다. 민간 영리기업의 참여를 일부라도 허용할 경우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11월 3일 확대시행 방침을 발표한 후 12월 말께 최종적인 프로그램을 확정하려는 것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여론을 수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학교와 민간기업의 직접적인 계약은 불허할 방침이다.
‘방과 후 학교’의 확대시행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교원단체의 반발. 몇 년 전부터 교육부에서는 사교육비 경감 차원에서 사교육의 공교육 흡수 방안을 제시했으나 교원단체등의 반발에 부딪쳐 뚜렷한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전교조는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은 가능하지만 입시과목의 강의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한만중 전교조 대변인은 “입시과목의 유명강사를 학교에 끌어들이는 것에 대해서는 반대한다”면서 “외부강사가 들어오면 학교와 학원이 구별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입시 위주의 교육제도를 개선해야지 사교육비를 경감하기 위해 사교육을 공교육에 끌어들이는 것으로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는 것이 전교조의 입장이다. 교총도 전교조와 비슷한 입장을 갖고 있지만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교총 한재갑 대변인은 “학교 자체에서 필요에 의해 외부강사를 초빙하는 것은 가능할 수 있지만 교육부가 앞장서서 그런 정책을 펼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면 학부모단체에서는 ‘방과 후 학교’에 대해 적극적인 찬성의 뜻을 표시했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경자 사무국장은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싶어서 보내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학교에서 외부강사를 초빙, 경쟁력을 갖추면 사교육을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사무국장은 “비영리단체로 못박을 필요는 없지만 영리단체보다는 교육대와 사범대 학생의 현장실습과 준영리단체를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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