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우리나라에는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 영화감독이 하나씩 있다. 기타노 다케시와 심형래(46) 영구아트 사장. ‘하나비’, ‘소나티네’, ‘키즈 리턴’ 등으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명감독으로 인정받는 기타노 감독과 달리 심 사장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바보 연기 때문에 아직도 ‘바보 영구’로 기억되고 있다.
영구 이미지는 그가 영화계에 진출하면서 큰 선입견으로 작용했다. 충무로본고장 출신이 아니라는 이력 때문에 영화계에서도 ‘이단아’ 취급을 했고, 어린이용 영화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기도 전에 ‘유치하다’는 평가부터 내렸다.
1999년 DJ 정부로부터 신지식인에 선정됐을 때 놀라워 했던 사람들도 정작용가리가 국내 개봉 후 비판에 시달리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세계 수준을 뛰어넘는 SF 영화를 만들겠다는 그의 집념은 망상가의 헛소리쯤으로 치부됐다.
‘디-워’ 외자 유치로 재조명용가리의 실패 이후 그렇게 우리 머릿속에서 잊혀져 가던 심 사장이 최근다시 조심스럽게 여론의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올해 연말 개봉 예정으로2000년 초부터 제작해 오던 영화 ‘디-워(D-WAR)’에 미국 록우드사가 1,500만달러(약 180억원)를 투자하기로 계약한 후부터다.
국내 영화에 대한 단일 외자 유치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수익의 50%를 가져갈 예정인 록우드사는 자사가 투자한 영화관과케이블채널 등에서 수시로 디-워의 예고편을 방송할 예정이어서 흥행에도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과 대만, 중국과도 투자 협상이 진행 중이다.
이렇게 거액의 외자 유치가 성사될 수 있었던 것은 해외 제작사들에게 ‘영구가 제작하는 유치한 영화’라는 편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데모영상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캐릭터,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일반적인 미국 블록버스터 제작비보다 훨씬 저렴하게 대작 SF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데 높은 점수를 주었다.
‘매트릭스’와 ‘반지의 제왕’ 시리즈는 물론 ‘마이너리티 리포트’등 컴퓨터그래픽이 많이 사용된 미국 블록버스터 영화의 제작비는 편당 1억달러(1,200억원)가 넘지만, 디-워의 총 제작비는 4분의 1인 300억원에불과하다.
따라잡느니 뛰어넘겠다심 사장은 “외국 회사들이 한국에서 만든 영화를 미국의 블록버스터 급으로 생각하고 계약에 나서 정말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 말에는 ‘기술로미국 영화를 뛰어 넘겠다’는 그의 목표에 어느 정도 다가섰다는 자신감이담겨 있다. 다. “미국이 쓰는 기술을 따라 하기만 하면 영원히 그 벽을못 넘습니다. 뛰어넘어야죠.” 그래서 영구아트는 처음 영화를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기술을 직접 개발했다. 디-워에 쓰인 컴퓨터그래픽 영상은 ‘렌더맨’처럼유명한 미국의 특수효과용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자체 개발한 소프트웨어로제작한 것이다. 심 사장이 보여 준 디-워의 동영상에는 대낮에 조선시대마을과 현대의 LA 도심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이무기의 피부가 아주 섬세하게 표현돼 있었다.
컴퓨터 그래픽 캐릭터가 ‘대낮’에 등장한다는 것은 대단한 진보다. 용가리와 미국의 고질라는 컴컴한 밤에만 다녔다. 캐릭터 표면을 섬세하게 만들지 않아도 주변이 컴컴하면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10년 전, ‘영구와 공룡 쮸쮸’에 등장할 공룡을 만들기 위해 흙을 반죽하던 시절에 비하면 디-워의 이무기는 엄청난 발전이다. ‘티라노의 발톱’을 가지고 칸을 방문한 그를 충무로는 비웃었지만, 그러한 노력이 없었다면 오늘의 디-워는 없었다.“사람들은 항상 결과만 가지고 평가합니다. 어떤 영화가 잘 됐는지 안 됐는지는 흥행 성적이 기준이 됩니다. 하지만 칼 루이스가 어느 날 갑자기세계 최고의 선수가 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 동안 얼마나 많은 노력을했겠습니까. 과정도 중요합니다.”오곡동에서 꾸는 꿈영구아트는 디-워의 본격적인 촬영에 앞서 양평동 시대를 마감하고 지난해말 서울 강서구 오곡동에 새로운 스튜디오를 지어 이사했다. 컴컴하고 큰창고 속에 들어 차 있는 작은 헬리콥터와 조선시대 건물, 도시의 빌딩 등크고 작은 미니어처들에는 영구아트 직원들이 쏟은 열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논밭으로 둘러싸여 황량한 오곡동으로 스튜디오를 옮긴 것도 미니어처가 많이 사용되는 SF 영화를 찍는데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곡동 스튜디오는 디-워의 성공 외에 좀더 큰 꿈도 갖고 있다. 영구아트를 중심으로 세계 블록버스터 영화나 애니메이션의 컴퓨터그래픽 등 후반작업을 담당하는 업체들을 한 곳에 모아 ‘미디어 실리콘 밸리’를 만드는것. 정부 주도로 이루어질 일이지만 현재 국내 SF 전문 제작사가 영구아트하나뿐인 만큼 인재 양성이나 소프트웨어 제공 등의 역할을 영구아트가 주도적으로 하겠다는 포부다.
먼 훗날의 일이지만 영구아트가 만든 여러 영화가 성공하면 넓디 넓은 오곡동 논밭에 미국의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테마파크를 지을 생각도 있다. 모든 건 디-워의 성공에 달려있다. 출발은 좋지만 아직도 많은 이들은시놉시스와 데모 영상을 보고 평면적 스토리, 배우들의 밋밋한 연기 등을지적하며 성공을 의심스러워 한다. 그러나 설혹 또 다시 실패하더라도 심사장은 이전처럼 뚝심으로 다시 한번 일어서 SF 영화에 매달릴 것이다.
● 심형래 사장은 누구▲ 1958년 서울 출생▲ 여의도고, 고려대 식품공학과 졸업▲ 82년 코미디언으로 데뷔▲ 84년 '각설이 품바타령'(남기남 감독)으로 첫 영화출연▲ 93년 '영구아트무비' 설립, 감독 및 제작자 데뷔▲ 출연작 : 외계에서 온 우뢰매(86), 영구와 땡칠이(93) 등 다수▲ 감독 및 제작 : 영구와 공룡 쮸쮸(93), 파워킹(95), 용가리(99) 등 다수▲ 수상경력 : KBS 코미디대상(88/90), 아시아위크지 선정 '21세기 아시아지도자'(컴퓨터와 기술공학 부문), 공보처 신지식인 1호, 소파상 예술부문(99), 씨네21 선정 충무로 파워 50인(99), 스포츠서울 선정 '15년을 빛낸연예인'(2000)▲ 부인 김주희씨 사이에 1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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