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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초위왕(走肖爲王)
조선왕조 11대 왕 중종은 반정의 공신들의 힘으로 임금이 되었다. 정사에 있어서도 공신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어려움이 다른 역대 왕들과는 달랐다. 정사에는 항상 훈구파의 위세를 자극하지 않는 정치에 힘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삼사의 조광조 젊은 인재가 등용되어 중종의 정치 방향에 기대와 희망을 주었다. 중종과 조광조가 어느 정도로 가까운 생각을 가졌나 하면 왕조실록에 잘 나타나 있다. 당시 실록에는 '조광조가 말하자 중종은 얼굴빛을 가다듬으며 들었고, 서로 진정으로 간절히 논설해 날이 저무는 줄도 모르다가 환관이 촛불을 들고 가자 그제야 그만두었다. (1519년 7월 21일)' 이토록 중종은 조광조를 신임하고 언제나 논리정연하고 강직한 성품의 원칙론을 내세운 정치개혁에도 관심을 가졌다.
조광조는 신진의 젊은 패기로 부조리와 부정의 정치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신념에 불타는 학자고 정치가다. 관직도 왕의 신임만큼 4년 동안 급속으로 요직에 발탁되었다. 등용된 지 2년 반 만에 당상관에 올랐다. 직제학을 거쳐 동부승지에서 부제학으로 옮긴 일이다. 중종 13년 11월에는 사헌부 대사헌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등용되고 4년 만에 정적에게 당하여 사약을 받고 죽는다. 사림의 영수로 대망의 개혁정치도 이루지 못하고 자기를 따르는 많은 선비와 함께 죽음으로 꿈을 접어야 했다.
조광조의 성격을 잘 알려진 이야기에 이런 일도 있었다. 한 번은 조광조의 스승 김굉필이 노모를 봉양하려 꿩고기를 장만하다가 한눈파는 사이 고양이가 물고 달아나자 옆의 감시 못 한 여종에게 화풀이를 지나치게 하는 것이다. 그러자 조광조는 자기에게는 어른이고 또 스승님의 체면도 유념하지 못한 채 그냥 들어넘기지 않고
"선생님께서 노모를 위하시는 정성은 간절하지만, 그래도 군자는 말을 신중히 해야 합니다."
열일곱 살 된 어린 학생이 스승에게 당돌하게 직설적으로 충고한 말이다. 다행히 김굉필은 제자의 충고를 겸허하게 수용하는 어진 선비였다. 역시 김굉필은 훌륭한 스승임엔 틀림없다는 기록이다. 하나 조광조의 바른말이 문제를 일으키는 요소가 된다는 사실을 자신은 느끼지 못하는 맹점을 그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결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다 선생님같이 어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옆에서 다른 사람이 들으면 오해의 소지가 될 말이다. 김굉필 스승님이 아니고 보통 사람이라면 매우 불쾌하게 듣는 말일 수도 있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자랑삼아 생각 없이 내어 뱉는 말 속에
"나는 주군의 말씀을 수용만 하지 않고 때에 따라 반드시 직언도 할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용감한 자기 자랑 같지만 자기 장래에 너무 크게 미칠 수 있는 어리석은 말 가운데 하나다. 이 말을 꼭 하고 싶으면 속으로 자기 혼자만 외칠 말이다. 실재에 있어서야 주군에게 직언을 꼭 해야 할 일이지만, 미리 대중에게 공표하는 버릇은 자기의 나약함을 먼저 저지르는 일이다. 또 이 말을 듣는 주군 되는 사람은 어지간히 어질어서는 불쾌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고 잊히지도 않는다. 요새 국회의원들 기자들과 만나서 이런 말이 자주 흘러나옴을 본다. 장래에 커다란 오해의 소지가 되고 불신의 씨앗으로 자랄 수 있는 말이 된다. 지나간 일들을 살펴보면 정치적인 보스와 결별하는 이유 가운데 이런 말 때문에 생기는 불행이 많았다.
조광조도 자기의 자신만만함을 자랑삼아 중종의 기억에 심기보다는 절대적인 복종밖에 모르는 사람임을 돌에 새긴 음각처럼 불변함을 기억시켰어야 하는 일이 처신의 진리다. 결과적으로 이를 방심해서 자기 이상을 망가뜨리고 말았다. 주초위왕은 꿀물을 가랑잎 큰 곳을 골라 여러 번 묻혀서 벌레를 유인해 갉아먹도록 한 조씨가 임금이 된다는 여자들의 저속한 꾀다. 하지만 이 일은 사실 여부를 떠나 평소에 조광조가 임금에게 본심을 믿도록 확인시켰더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중종이 허허 웃으며 "그 벌레도 글을 아는 어리석은 벌레구나"하고 넘길 일이다. 조광조가 변호사 같은 언변으로 자기의 능력만 믿고 스승에게 충고하듯 한 내심의 표현을 중종의 뇌리에 기억도록 한 잘못이 너무 큰 사건을 만들고 말았다. 조광조가 먼저 했어야 할 시급한 일은 정치개혁의지 앞서 자기 건강을 돌보듯 중종의 신뢰를 벗어나지 않는 일이다. 뜻을 이루도록 몸이 살아야 국가와 국민에 대한 충성을 다할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당 대표가 되면 대통령에게 할 말은 반드시 한다.
권모술수가 매연처럼 자욱한 정치마당에 이런 말이 얼마나 위험한 말인가는 지나온 역사가 잘 말해 주고 있다. 배반의 정치버릇이라는 말을 듣기 십상이다. 권력 주변에는 이해관계가 직접 간접으로 복잡하게 얽혀져서 모함과 시기가 비빔밥처럼 얽혀져 있다. 참기름처럼 고소한 실속이 연결로 나타나지 않으면 금방 모함받아 퇴출시키는 에너지가 늘 위협하는 곳이다. 마치 아라비안나이트 이야기 속의 호기심의 핏줄 같은 연결이 이어지듯 쾌감의 연속만이 존재한다. 조광조가 당시 아라비안나이트를 읽었더라면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일은 효과가 없었을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도 정신 못 차린 사람이다. 아마도 주군을 불신하게 하는 말투의 버릇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사람이다. 직언은 완벽한 신뢰의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직언이다. 반사적인 반발을 불러온 직언은 직언이 아니다. 대권 인수 직전의 막바지에 말 한마디가 고급요리에 콧물 빠뜨리는 격이다. ( 글 : 박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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