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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정보통신 < 염정태 사장 >게시글 내용
사업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일을 술술 풀어나간 비결이 뭐냐고 묻자 염사장의 대답은 간결하다. "왜 안되나 분석을 해보면 늘 답이 나왔습니다. 뭐가 잘못됐을까 차근차근 따져 보면 실마리는 풀리기 마련이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성공확률이 희박한 사업일수록 더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깁니다. " 경영위기를 맞아 벼랑 끝에 몰린 기업으로 옮겨 다니면서 위태로웠던 재무재표를 다시 건실하게 되돌려 놓는 CEO들이 있다. 쌍용정보통신 염정태사장이 바로 그런 경영자들 중 한 사람이다. ◆ IT업계 '미다스의 손' 친분이 두터운 지인들 사이에서 염사장의 별명은, 손을 대는 사업마다 성공을 일궈내는 '미다스의 손'. 1968년 쌍용양회공업을 시작으로 (주)쌍용, 쌍용중공업을 거쳐 오늘까지 쌍용그룹과 인연을 맺어온 그의 경영이력서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지난 30여년간 시장개척이 어려운 신설사업이나 위험부담이 큰 사업부서만 맡아가며 그때마다 예상 밖의 활로를 찾아내는데 뛰어난 수완을 발휘해 왔던 것. 종합상사였던 (주)쌍용 시절엔 남들이 가기 싫어하는 곳, 누가 봐도 고전할 것이 뻔한 아이템만 골라가며 뜻밖의 성과를 올리기로 유명했다. 중동전이 한창이던 82년엔 물자수송이 다급해진 이란정부에 현대가 만든 기관차를 팔기도 했다. 당시 이사였던 그는 터키국경을 넘어 이란까지 직접 찾아가 기관차를 인도하고 돌아왔다. 88년부터 4년간 (주)쌍용저팬 사장으로 일할 때도 에피소드가 많았다. 당시 일본은 우리 업계가 부품을 사오는 시장으로 인식됐을 뿐 상품을 팔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았다. 하지만 그는 포항제철의 철강부터 쌍용의 시멘트까지 본사에서 기대도 하지 않았던 품목들을 보란 듯이 팔아치웠다. 현재(2000년 8월) 사령탑을 맡고 있는 쌍용정보통신만 해도 지난 98년 10월 염사장이 부임할 당시엔 침체의 늪에 빠져 있었다. 엔지니어 출신도 아니고 법학을 전공한 그가 IT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인사들을 제치고 사장으로 발탁되자 임직원들은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 시멘트 제조업체인 쌍용양회공업에 시작해 종합상사인 (주)쌍용을 거쳐 쌍용중공업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굴뚝산업만 거쳐온 그의 경영이력서가 그룹의 IT 전위 부대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것. 하지만 1년 10개월이 지난 지금 쌍용은 대외적 이미지나 IT 프로젝트 수주 실적으로 따져 볼 때 'SI업계의 초우량기업'으로 변신했다. 그동안 육해공군의 핵심 국방 시스템통합 사업을 연거푸 수주하는 개가를 올렸고, 굵직굵직한 기간통신사업자가 주 고객인 통신 SI 부문에서도 선전했다. 이처럼 사업이 고비를 맞을 때마다 일을 술술 풀어나간 비결이 뭐냐고 묻자 염사장의 대답은 간결하다. "왜 안되나 분석을 해보면 늘 답이 나왔습니다. 뭐가 잘못됐을까 차근차근 따져 보면 실마리는 풀리기 마련이거든요. 솔직히 말하자면 성공확률이 희박한 사업일수록 더 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깁니다. ◆ 치밀한 전략가 스타일 CEO로서 염정태사장이 갖춘 최고의 덕목은 '치밀한 전략가'라는 게 IT업계의 평가다. 거기다 가능성이 조금만 보여도 끝까지 파고드는 집념으로도 정평이 나 있다. 기관차를 팔기 위해 이란으로 날아갔던 종합상사 시절이나 시스템통합 업체를 이끌며 국방SI 부문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지금이나 무모하게 보이는 프로젝트를 성공시킬 수 있었던 힘은 '빈틈없는 전략'과 '포기할 줄 모르는 집념'이라는 게 그를 오랫동안 지켜봐온 지인들의 얘기다. 쌍용정보통신 직원들은 염사장에 대해 '일단 영업 목표가 정해지면 단위가 크든 작든 최종계약이 이뤄질 때까지 모든 절차를 꼼꼼하게 챙기는 경영자"라고 말한다. 계획에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기면 해결방안을 찾을 때까지 몇 시간이든 실무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회식자리에서도 좋은 아이디어를 들으면 메모를 잊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그를 두고 회사 직원들은 "법정에서 완벽한 변론을 하기 위해 관련 서류를 검토하는 변호사같다"고 말한다. 사실 어린 시절 그의 꿈은 법관이었다. 경남 마산에서 부유한 사업가 집안의 외아들로 태어난 염사장이 부친의 뒤를 이어 사업가가 되기 보다 법관을 지망했던 이유는 '사랑채 손님들' 때문이었다. 정유판매업체를 운영했던 부친은 지방의 유지였고, 마당 넓은 집은 늘 붐볐었다. 초등학교1학년 때 6.25가 터지고 서울에서 피난 내려온 손님들 얘기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어렴풋이 어지러운 세상일수록 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귀한 자식일수록 엄하게 길렀던 부친은 그를 서울로 보냈고, 중학교 때부터 효자동에서 혼자 하숙을 염사장은 고대 법학과에 진학한다. 하지만 부친이 사업에 실패하고 가세가 기울면서 취직이 급해진 그는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대신 쌍용양회공업을 선택한다. 결과적으로 사업가의 길을 선택한 그의 결정은 옳았던 셈이다. ◆ 이제는 SI수출이 목표 앞으로 염사장의 목표는 쌍용정보통신을 SI 업계 최고의 회사로 만드는 것이다. 주주들에게나 회사 직원들에게나 최고의 대우를 해 주고 싶다고 그는 강조한다. "얼마든지 가능한 목표라고 봅니다. 지난해부터 경상이익이 흑자로 돌아섰고, 올 상반기엔 창사이래 최대의 이익과 매출을 기록했습니다. 국내기술로는 어렵다는 국방 SI 분야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킨 덕분입니다. 이제는 해외로 눈을 돌릴 생각입니다."라고 말하는 염사장의 말투엔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미국과 프랑스에 100여명의 직원을 보내 1년 이상씩 파견근무를 시키는 등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정지작업을 해왔다. 동남아든 중국이든 일단 물꼬가 터지면 세계 무대로 진출할 수 있다고 그는 믿는다. "흔히들 우리의 SI 수준이 낙후됐다고 합니다. 통신이나 국방 분야의 해외 SI 프로젝트 수주란 어림없는 소리라고 처음부터 포기하는 분위기죠. 하지만 SI는 요소기술을 결합시켜 전체적 생산성과 효율성을 제고시키는 사업입니다. 다시 말해서 부분적인 기술은 뒤쳐져도 창의력을 발휘해 이를 통합시키면 SI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유럽의 디자인이나 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술, 일본의 생산기술을 당장 따라잡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을 녹여 통합시키는 SI야 말로 도전해 볼 만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IT업계, 미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염사장의 이번에도 SI수출이라는 어려운 목표를 이뤄낼 수 있을 것인지, 이제는 그의 새로운 도전을 지켜볼 차례다. work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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