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대 후반의 가장 A씨는 정년 퇴직을 앞두고 있다. 비슷한 또래 동료들은 은퇴 후 계획을 세우느라 한창이지만 A씨는 사정이 다르다. 대학을 졸업한 외아들이 아직 취업 준비생(이하 '취준생')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경제적으로 부모의 뒷바라지가 필요한 취준생 아들을 둔 A씨에게 퇴직은 아직 은퇴가 아니다.
# 70대 초반 남성의 B씨는 최근 전문가로부터 은퇴 상담을 받았다.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두 아들이 매달 야금야금 용돈과 생활비를 받아가는 터에 B씨의 저축액은 계속 줄어든다. 취준생이라지만 실상 취업 의지가 없는 것 같은 아들들을 지켜보며 B씨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지 막막하기만 하다.
부모의 노후 자금에 빨대를 꽂아 제 것처럼 사용하는 '빨대족'이 늘고 있다./ 사진=이미지비트(imagebit.co.kr) |
◇등록금만 내주면 고생 끝? '산 넘어 산'
자녀들의 취업 준비 기간이 늘어나면서 부모들도 노후 설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입이 없는 취준생 자녀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이다. 지난 5월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베이비붐 세대의 월평균 생활비 283만7000원 가운데 지출 1순위는 '자녀 뒷바라지'(117만6000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에 사는 주부 신모씨(59)는 "대학 등록금 내줄 때는 '이 고비만 넘기면 끝'이라는 생각으로 견뎠는데 아들이 아직도 용돈을 받아간다"고 토로했다. 신씨의 아들은 지난해초 서울 소재 한 사립대를 졸업했지만 2년째 취업하지 못했다.
졸업 후 당연히 일을 시작할 것으로 여겼던 아들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면서 신씨의 노후 계획도 일그러졌다. 신씨는 "아들의 대학 등록금으로 (4년 동안) 낸 돈이 3500만원이 넘는다"고 밝혔다.
서울에서 홀로 지내는 아들에게 보낸 용돈과 생활비를 포함 기타 부대 비용도 족히 수백만원이 넘는다. 본격적으로 취업을 준비하면서 영어 및 자격증 시험 비용과 정장, 구두, 벨트 등 면접 의상을 마련하는데 쓴 돈을 합하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문제는 이 돈이 다름아닌 신씨 부부의 은퇴 자금이라는 것이다.
◇'빨대족' 자녀 때문에 '안녕 못하는' 취준생 부모들
이른바 '빨대족'은 기존에 알려진 '캥거루족'과도 다르다. '캥거루족'은 취업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얹혀 살거나 혹은 취업을 했다 하더라도 부모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는 자녀를 의미한다. '빨대족'은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부모의 노후 자금에 빨대를 꽂아 제 돈처럼 사용하는 자녀를 비꼬아 일컫는 말이다.
이 단어를 처음 사용한 한국노인상담센터장 이호선 교수는 부모들이 경제적 문제에 있어 "반드시 경계를 그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준생 자녀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지나치게 의존하는 현상에 대해 "심리적 탯줄을 끊지 못해서 발생하는 일"이라며 자녀가 부모의 노후 자금까지 손을 대는 '빨대족'이 되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이어 "자녀가 부모 밑에서 생활비나 용돈을 타야 하는 상황이 생기더라도 부모는 자신들을 위한 자금을 우선적으로 남겨두고 그 외의 금액 중에서도 최소한으로만 도와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녀에 대한 지나친 지원으로 자칫 가족 전체의 생계가 위협받을 경우 다시 자녀에게 부담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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