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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출어람과 영원한 지각생게시글 내용
청출어람(靑出於藍)이란 고사성어가 있다. 부지런히 학습을 계속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학문의 깊이를 가진 제자도 나타날 수 있다는 말이다. 여기서 제자가 스승보다 뛰어나다는 뜻이라 쓰나 학문에 계속 정진하면 스승에 비교하기 보다 뜻을 이루기 마련이라는 데 있다. 청출어람은 쪽풀 람(藍)자로 쪽풀은 천연물감을 만드는 풀이다. 명주에 곱게 물들인 고운 빛깔은 쪽풀 본래보다 더 곱다는 뜻이니 이런 고운 색이 본디 풀색보다는 더 곱고 효용가치를 높게 생각했나 보다. 순자의 권학편에 나오는 글로 학문이란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중도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강조의 가르침으로 쓰고 있다. 학문은 평생을 바쳐야 그 골격이 제대로 갖추어지는 사상의 율격으로 완성시킬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장구하게 요구되는 인간사의 한 장르에 해당한다.
중국 북조시대 북위(北魏)의 이밀(李謐)은 어려서 공번을 스승으로 삼아 학문을 했다. 그는 학문의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 열심히 노력한 결과 몇 년이 지나자 스승의 학문을 능가하게 되었다. 그의 스승인 공번은 이제 이밀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도리어 그를 스승으로 삼기를 청했다. 그러자, 친구들은 그의 용기를 높이 사고 또 훌륭한 제자를 두었다는 뜻에서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칭찬했다. 제자가 스승보다 더 훌륭한 학문의 업적을 남기는 것은 스승을 이기는 것이 아닌 그 스승의 가르침이 밑거름이 되었다는 말이 옳다. 그래서 훌륭한 스승에서 훌륭한 제자가 자라는 이치가 바로 학문의 영향력이다.
필자는 어린 5세부터 한문을 배웠다. 눈이 내려 미끄러운 날은 집안 형님에게 업혀가서 서당 글공부를 하다가 9세가 되어 늦게 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려운 환경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니 선생님이 가르치는 글은 모두가 알고 있었으므로 배울게 없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에게 한 학년을 월반시켜 달라고 했다. 그래서 2학년은 건너 뛰고 3학년에 편입했다. 처음 서당에서 천자문을 읽을 때 나보다 나이 많은 학동들이 나를 자주 시험하기도 했다. 조그만 놈이 꽤나 재주가 있다고 놀리는 것이다. 진짜 글자를 알고 있는지 아니면 노래를 외우듯 하고 있는지 시험한다. 중간중간 앞뒤를 가리고 묻기도 하고 책장을 거꾸로 올라가면서 묻기도 했지만 나의 대답은 그들이 놀라와 하는 기색을 느낀 기억만 남았다.
그런데 명심보감과 소학의 배우기에 이르면서 책거리를 여러 번 한 덕택에 약은 꽤도 생기는 것이다. 선생님은 만능인줄로만 알았으나 선생님도 글자를 잊어 먹을 때가 있구나 하고, 일부러 어려운 글자를 옥편에서 찾아보고 미리 알고 있다가 가끔 질문하면 궁해지는 선생님의 표정을 읽게 된다. 내심 장난기가 발동하는 것이다. 옥편을 가지고 어려운 글자만 찾는다. 선생님을 골려 주려는 심보다. 선생님을 골리고 싶으면 옥편공부를 열심히 하라. 선생님이 그 많은 한문글자를 다 외우는 일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 일도 오래 가지는 못했다. 여러 번 어려운 글자만 질문을 하니 그때부터 선생님이 알아차리시고 옥편에 찾아봐라 하고 명령만 할 뿐이다. 이런 어리광 때문에 나는 아직도 학문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는가 보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성적이 다시 수석에 오르면서 지금은 고인 되신 김규중 담임선생님 국어 시간이 되면 즐겁다. 매일 배우는 글의 전체 대강을 미리 써서 오라고 하셨다. 3줄 이내의 전체대강 글이 뽑기도 어렵고 줄여 쓰기도 귀찮았다. 그런대도 우리가 미리 발표한 글과 선생님이 칠판에 쓴 글이 50% 가까이 비슷하면 칭찬도 받고 재미가 있었다. 어느날은 내가 쓴 전체대강이 선생님의 전체대강과 글자하나 틀리지 않게 똑 같았다. 공교롭게도 이 날은 나에게 발표 기회를 주지 않았다. 안타깝기 그지없었지만 아쉬움만 가슴 가득히 차올랐다. 하필이면 오늘 따라 나에게 발표할 기회를 주지 않다니 하면서 옆자리의 정팔진에게 보여주고 인정을 받으려 했다. 애석하게도 친구 정팔진이도 이미 고인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선생님의 글 전체대강 추출방식을 나도 모르게 고스란히 영향받은 사실이 제자가 익혀 담는 것이었구나 한다.
학교 늦깎이로 입학하여 2학년을 배우지 못하고 건너 뛰었으니 3학년 여름방학 때 받은 통지표성적은 11등이었다. 그래도 잘했다고 이병돈 교장선생님이 전교생이 모인 운동장 조회에서 칭찬한 것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월반하여 11등 하였다는 일이 그토록 기특했는지 말이다. 당시 2학년 산수시간에 구구단 외우는 공부를 했는데 나는 이 기회를 놓쳐서 여간 한 곤란을 겪지 않았다. 1단부터 5단까지는 매우 쉽다. 그러나 6단부터 구단까지는 갈수록 외우기 까다롭다. 다른 학생들이 이미 거쳐온 공부를 나는 정상적으로 외워서는 따라가지 못하므로 변칙적인 방법을 취했다. 먼저 부른 수와 나중 부른 수를 바꿔 치기 한다. 예를 들면 9×5 = 5×9로 바꾸어 읽는 방법이다. 나는 아직도 이 방법을 쓰고 있는 한심한 학생이었다. 즉 구구 셈 5개단까지 외우면 6개단 이후는 외우지 않아도 되는 공부의 영원한 지각생이 되고만 것이다. 9×2 = 18 보다 2×9 = 18 이 나에겐 구원의 방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일거수 일투족은 학생이 자기도 모르게 배워지는 값진 일이다. 먼저 선생님의 인격을 닮아지게 되고, 생각을 닮게 되며, 그걸 닮아지고 파 스스로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선생님과 함께 길을 걸을 때는 선생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처럼 존경의 대상이었다. 식물인 나무는 큰 나무 아래에서 작은 나무가 살아남기 어렵지만, 사람은 큰 스승님에게서 큰 업적을 이룰 제자가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이 것이 고급한 인적자원의 큰 성과를 가져오는 영향력이고 교육의 지혜로움이다. 잘 다듬어진 사과나무에서 고급한 사과열매가 달리는 이치는 바로 진리다. ( 글 : 박 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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