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기자의 생생헬스 - 당뇨병 환자에 술 권하는 사회
2012년 당뇨병 환자 320만명
성인 10명 중 3명이 당뇨 위험군…연말 송년회는 건강의 敵
술 먹으면 뇌혈관질환 등 합병증…당뇨약보다 식습관 조절 중요
송년회 시즌이 시작됐다. 연말 일정이 빠듯해서인지 각종 송년모임이 빨라지는 추세다. 경찰도 22일부터 송년회 시즌 음주 단속에 나섰다.
문제는 당뇨병 환자가 평소처럼 ‘밋밋한 당뇨식’을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요즘 같은 연말에 당뇨식을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안철우 강남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식이요법을 지시한 당뇨병 환자 중 제대로 지키는 사람은 2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며 “직장생활을 하는 당뇨병 환자 대부분은 송년회 시즌에 사실상 당뇨식을 포기하는데, 십중팔구 병을 키우고 망막병증과 신경병증, 관상동맥질환, 말초동맥질환, 뇌혈관질환, 만성신부전증 등 합병증을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송년회 가면 혈당 치솟지만…”
당뇨병 환자인 최모씨(49)는 출근 전 아침 한 끼만 당뇨식을 먹는다. 그는 “나도 식이요법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알지만 송년회나 연말 행사에 가면 당뇨식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다. “상대방이 술이 오르면 ‘한 잔은 괜찮다’며 강권하는데, 평소 잘 지키던 당뇨식도 이 순간에는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직장을 다니는 김철환 씨(39)는 “연말이면 술을 돌리는 모임이 많다”며 “저칼로리, 저염식을 해야 하는 당뇨병 환자라는 사실을 알리지 않기 때문에 혼자 속을 태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사정이 이러니 즐거워야 할 송년회 시즌 당뇨병 환자의 고충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당뇨병 환자들은 독하게 ‘고행길’을 선택하는 수밖에 없다.
혈당 조절 실패 ‘연말 술자리’
당뇨병 환자인 A씨(47)는 삼겹살은 거의 먹지 않고 소주만 한 병가량 마셨다. ‘2차 자리’로 옮겨서는 맥주 1000㏄와 소시지, 튀긴 감자 등 안주를 먹었다. 술자리가 끝나가는 오후 11시에는 인근 포장마차에서 튀김, 어묵 등을 사먹었다. 회식 전 120㎎/dL이던 A씨의 다음날 아침 혈당은 276㎎/dL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A씨는 이달 들어 매주 1~2회 정도 이런 회식을 한다.
안 교수는 “이 정도 혈당이면 핏속의 당분이 혈관 벽을 심하게 손상시킬 수 있다”며 “연말이라고 해서 A씨처럼 회식을 하면 당뇨병 환자에겐 거의 치명적”이라고 경고했다.
공복혈당장애인 B씨(51)는 A씨가 먹은 회식 분량에 삼겹살까지 곁들였다. B씨의 혈당은 회식 후 두 시간이 지나도 140㎎/dL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고혈당 상태가 새벽까지 지속됐다. 그러다 다음날 오전 8시 정상치인 96㎎/dL로 떨어졌다. 안 교수는 “술을 마시면 체내 포도당 합성이 방해돼 일시적으로 혈당이 떨어진다”며 “이때 혈당 체크를 해 ‘술 마셨는데 혈당이 괜찮네’하고 방심하는 내당능장애 환자가 흔하다”고 말했다.
이런 습관을 바로잡지 않으면 심각한 당뇨병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안 교수는 “1년 중 당뇨병 환자들이 혈당 조절에 가장 많이 실패하는 시기가 바로 연말 술자리”라며 “분위기에 취해 조절 없이 술을 마시면 혈당 이상 여파가 3일 이상 가기 때문에 당뇨병이 악화된다”고 말했다.
당뇨약보다 좋은 당뇨식
안 교수팀은 지난 5개월간 당뇨병 환자가 당뇨식을 따를 때 식후 혈당 조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했다.
이준혁 기자//생생헬스 用 |
안 교수는 “단 한 끼의 당뇨식만으로도 혈당이 크게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다”며 “당뇨식을 규칙적으로 하면 뚜렷한 혈당 저하 효과가 반드시 나타난다”고 강조했다.
당뇨병 환자가 연말에 식이요법을 제대로 하려면 직장동료 등의 도움이 절실하다. 안 교수는 “당뇨병이 있는 사람이 필요 이상 음식을 먹는 것은 독극물 섭취와 같다”며 “당뇨병 환자가 음식을 남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여겨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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