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기념일 챙기기 수위조절
직장인 스트레스 치솟아
올해 입사 2년차인 직장인 김아무개(29·여)씨는 ‘빼빼로데이’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지난해 11월11일 보통 때처럼 출근했는데, 옆 팀에 있는 입사 동기가 백화점에서 파는 고급 수제 초콜릿 과자를 팀 전체에 돌리고 있었다. ‘아차’ 한 김씨는 퇴근길 회사 복도에서 더 충격을 받았다. 같은 팀 선배들이 김씨의 ‘뒷담화’를 늘어놓고 있었다. “‘사회생활 센스가 부족하다’ ‘평소 우리에게 고마운 마음이 없는 건가’ 같은 얘기였어요. 평소 과자도 좋아하지 않고 당시엔 애인도 없어서 빼빼로데이는 생각도 못했는데….”
김씨는 올해 11월11일은 제대로 챙기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다른 오해를 사지 않을 ‘적절한 수위’를 고심하고 있다. 지난해 초콜릿 과자를 돌린 입사 동기라고 칭찬만 받은 건 아니었다. 입사 동기들은 해당 동기에게 ‘저 친구 아부하나’ ‘너무 정치적이다’라고 흠집을 잡았다.
최근 승진한 30대 후반의 이아무개 과장도 걱정이 많다. 입사 동기 중 가장 먼저 승진한 그는 아직 부하 직원들에게 리더십을 검증받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다른 선임 과장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는 듯한 기분도 자주 느끼는 그는 11월11일 아침을 걱정하고 있다. “빼빼로데이 때 후배들이 다른 과장들은 챙기고 내 책상만 휑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고민입니다.”
밸런타인데이·화이트데이·빼빼로데이 같은 이른바 ‘기념일’을 앞두고 직장인들의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업무 능력 이외에 인간관계 또한 성공 요인으로 작용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상술로 만들어진 기념일이라 해도 무심코 넘기기 어려운 탓이다. 설문조사업체 엠브레인이지서베이가 직장인 566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3월 조사한 결과, 직장인 10명 중 8명이 각종 ‘데이’에 직장 동료들에게 선물을 한 경험이 있었다. 선물한 이유로 48.9%가 ‘특별한 날이라고 해서’라고 답해 ‘고마운 마음에서’(31.2%)란 응답을 앞질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관계 중심의 문화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인맥이 승진 등 자기 이익과 연결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유발하기 쉽다. 기념일 같은 비업무적인 일로 과하게 경쟁하면 팀 내 협력이 깨지고 개인으로서도 자존감이 떨어져 우울감에 시달릴 수 있어 문제”라고 말했다.
김미향 김효실 기자 aroma@hani.co.kr 공식 SNS [통하니] [트위터] [미투데이] | 구독신청 [한겨레신문]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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