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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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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889 2013/01/05 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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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정보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씨는 "해도 너무한 경우라 황당하다"고 말했다. 한 여성 회원의 아버지인 A 씨의 어이없는 '신상 캐기'가 문제였다. A 씨는 7월 이곳에 딸을 회원으로 가입시킨 뒤 6개월간 남성 6명을 소개받았다. 맞선 볼 때마다 A 씨는 흥신소에 의뢰해 상대 남성의 과거를 캤다.

A 씨는 흥신소에서 받은 프로파일을 자랑처럼 들고 와 "괜찮은 사람이냐"고 상담했다. 이 씨는 "이렇게까지 사생활을 조사하다가 큰일 나는 것 아니냐"고 걱정했지만 A 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며 무시했다. 마지막에 소개받은 두 남성은 모두 수백억 원대 자산가의 아들이라 '밀착 조사'를 의뢰했다. 하루 종일 미행하며 행적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A 씨가 파악한 정보는 상담사도 미처 몰랐을 정도로 상세했다. 재산 명세는 기본. 혹시나 혼인한 전력을 숨기고 딸을 만날까 걱정돼 과거 이성관계도 꼼꼼히 조사했다. 마지막에 소개받은 두 남성은 모두 자산가의 자녀들이라 이성관계나 생활습관, 술버릇 등까지 캐내라고 흥신소에 의뢰했다. 수백만 원을 들여 사생활을 모두 캐내고서야 A 씨는 딸을 300억 원대 자산가의 아들에게 4월 시집보내기로 했다. 사랑과 믿음이 아니라 흥신소의 신상 캐기로 결혼하는 셈이다.

A 씨처럼 흥신소를 찾는 예비 신랑신부가 최근 늘고 있다. 결혼시장에서 '스펙'이 중시되면서 상대의 재산과 학력 직업 연봉 등을 확실히 캐보겠다는 수요가 커진 것. 기존의 흥신소 손님은 배우자의 외도 여부를 밝히려는 기혼자가 대부분이었는데 이젠 예비부부로 고객층이 넓어지는 추세다. 신상 캐기 의뢰 10건 중 1, 2건은 결혼 상대를 뒷조사해 달라는 주문이라는 게 흥신소 측 이야기다.

동아일보 취재진은 4일 흥신소 10곳에 직접 문의 전화를 해봤다. "결혼을 앞둔 애인을 못 믿어 전화했다"고 하자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는 투로 응대했다. 대부분의 흥신소는 "요즘 이런 일 맡기는 젊은이들 적지 않다"며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이라고 말했다.

남성 기자가 여자친구의 민감한 과거를 캐내 달라고 하는 요구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거기 심부름센터 맞나요?"(기자)

"그런 일 안 한 지 오래됐어요. 전화 끊습니다."(흥신소 직원)

(5분 뒤 모르는 휴대전화 번호로 전화가 옴) "A대학 중앙도서관 근무한 적 있어요?"(흥신소 직원)

"그렇긴 한데 누구세요?"(기자)

"아까 전화 받은 사람인데요. 단속이 심해서 저희도 미리 좀 알아봅니다. 필요하신 게 뭐죠?"(흥신소 직원)

"결혼하려는 여자친구가 유학 경험이 있는데 의심이 돼서…. 낙태한 적 있는지 알 수 있나요?"(기자)

▼ "재산-직업부터 낙태-성병 기록까지 뒷조사 가능" ▼

일부 흥신소에서는 더 상세한 내용까지 조사할 수 있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처방받은 약을 추적해 낙태 사실뿐만 아니라 성병을 포함한 기타 병력까지 확인할 수 있다고 장담했다. 낙태 여부를 조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일. 가격은 70만 원이었다. 또 다른 업체 직원은 "1주일 걸린다"며 "160만 원만 내라"고 흥정했다.

한 사람 신상을 캐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5일. 의뢰비 200만∼300만 원이면 무덤까지 가져갈 비밀을 다 알아봐 주겠다고 했다. 또 다른 흥신소 업체 직원은 "지금 또 다른 애인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며 바람기 조사도 병행하라고 권유했다. 요원 3, 4명이 차량 두 대로 계속 미행을 하기 때문에 비용이 더 올라간다. 개인 사생활이나 과거사를 제외한 단순 스펙 조사는 통상 100만 원 선에서 성사된다.

요즘 예비부부들 사이에선 배우자 신상 캐기를 긍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결혼정보업체 '선우'가 남녀 각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1%가 "배우자 신상 캐기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기회가 된다면 흥신소를 이용해 보겠다는 대답도 28%였다. 고려대 사회학과 김수한 교수는 "결혼이 낭만적인 관계에서 계약적인 관계로 변해 가는 걸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라고 진단했다. 상대의 스펙을 보고 결혼을 결정하는 풍조가 확산될수록 상대에 대한 정보를 검증하려는 욕구가 강해진다는 분석이다.

흥신소에선 "아무 문제없다"며 안심시키지만 개인정보까지 뒷조사하는 행위는 사생활 침해로 처벌될 수 있다. 법무법인 신세계로 조인섭 변호사는 "흥신소에 일을 맡기다가 적발되면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본인이 직접 신상을 캐지 않고 단순히 의뢰만 해도 처벌 대상이 되는 것이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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