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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엔이라도 더 싸게…” 10년 가격전쟁게시글 내용
“일본 물가가 왜 미국보다 비싸야 하나?”
1993년 일본에서 이런 의문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였던 다이에의 나카우치 이사오 사장(2005년 작고). 그는 “일본의 물가가 2010년까지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언하며 경쟁자보다 1엔이라도 더 싸게 판다는 가격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1990년대는 가격파괴의 시대이기도 했다. 1990년대 일본의 최대 발명품은 ‘100엔숍’(모든 품목을 100엔에 파는 상점). 격렬한 가격 전쟁에서 못 버티는 유통·생산업체들이 속속 탈락했고, 가격파괴를 촉발한 나카우치 사장의 다이에까지 경쟁에서 뒤처져 2002년 망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물가 거품은 말끔히 빠졌다.
한·일 물가역전의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물가에서 거품이 빠진 반면, 한국 물가엔 거품이 점점 끼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일본이 겪은 물가의 ‘거품 빼기’는 기업과 소비자의 치열한 가격 합리화 과정이었고, 급기야 한·일 물가의 역전 국면을 맞게 됐다.
◆소비자가 바꿨다
지난 2일 도쿄 오모리(大森)역을 찾았다. 약 10년 전 어학 연수 왔던 선우정 기자가 살던 곳이다. 당시 이곳엔 할인점 이토요카도, 세이유, 도큐스토어와 다이신 백화점 등이 날마다 할인 경쟁을 벌였다.
당시 전쟁은 조간신문의 광고 전단지에서 시작됐다. 전단에 실린 상품 가격이 1엔이라도 싼 가게로 주민들이 몰렸다. 세이유가 싸면 이토요카도는 텅 비었고 이토요카도가 싸면 세이유가 텅 비었다.
주민들이 가격에 놀랄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자 전단지 경쟁에서 패한 업체는 오후에 경쟁업체 전단지 가격에서 1엔을 더 뺀 가격으로 상품을 팔았다. 하루 두 차례씩 전쟁을 치른 것이다. 가격 경쟁이 양배추를 중심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주민들은 “캬베츠(양배추·캐비지의 일본식 발음) 전쟁”이라고 불렀다.
지금 다이신 백화점엔 ‘100엔숍’이 큰 규모로 들어가 있었다. 할인점에 치여 찌부러진 모양이었다. 세이유는 미국계 월마트에 먹혔고, 도큐스토어도 옛 활기를 잃었다. 10년 가격 전쟁에서 살아남은 곳은 이토요카도뿐이었다.
◆더욱 강해진 가격 리더들
‘가격 파괴’는 소비자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줬지만 ‘물가 인상’을 전제로 생존하던 기업에는 엄청난 고통을 안겼다. 1990년대 후반 가격파괴를 선도해 ‘할인왕(割引王)’ 별명을 얻은 미야지 도시오 사장의 ‘조난전기’도 1998년 망했다.
하지만 가격 전쟁에서 살아남은 ‘가격 리더’ 기업들은 더욱 튼튼해졌다. 대표적 사례가 1990년대 말 도쿄를 중심으로 덮밥업체들이 총동원돼 벌인 ‘규동(쇠고기덮밥) 전쟁’이다. 덮밥 체인 ‘요시노야’의 경우 2002년 광우병 파동으로 판매를 중단하기 직전까지 쇠고기 덮밥 값을 400엔에서 280엔으로 내렸다.
그래도 대부분의 덮밥 업체는 살아남았다. 수입 개방으로 값싼 쇠고기가 공급된 측면도 있지만, 덮밥을 받치는 농부들도 피말리는 원가 절감 노력으로 가격전쟁에 힘을 실었다. 일본 대표 품종인 니가타(新潟)산 ‘ 고시히카리’의 경우 지난 10년 사이 15%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일본 쇠고기인 ‘와규(和牛)’ 값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13년 전 일본의 가격파괴왕(王)이 품었던 의문을 이젠 한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던져야 한다. ‘왜 한국 물가가 일본보다 비싸져야 하나’.
1993년 일본에서 이런 의문을 던진 사람이 있었다. 일본 최대 유통업체였던 다이에의 나카우치 이사오 사장(2005년 작고). 그는 “일본의 물가가 2010년까지 절반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예언하며 경쟁자보다 1엔이라도 더 싸게 판다는 가격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잃어버린 10년’으로 불리는 일본의 1990년대는 가격파괴의 시대이기도 했다. 1990년대 일본의 최대 발명품은 ‘100엔숍’(모든 품목을 100엔에 파는 상점). 격렬한 가격 전쟁에서 못 버티는 유통·생산업체들이 속속 탈락했고, 가격파괴를 촉발한 나카우치 사장의 다이에까지 경쟁에서 뒤처져 2002년 망했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물가 거품은 말끔히 빠졌다.
한·일 물가역전의 이유는 단순하다. 일본 물가에서 거품이 빠진 반면, 한국 물가엔 거품이 점점 끼어가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일본이 겪은 물가의 ‘거품 빼기’는 기업과 소비자의 치열한 가격 합리화 과정이었고, 급기야 한·일 물가의 역전 국면을 맞게 됐다.
◆소비자가 바꿨다
지난 2일 도쿄 오모리(大森)역을 찾았다. 약 10년 전 어학 연수 왔던 선우정 기자가 살던 곳이다. 당시 이곳엔 할인점 이토요카도, 세이유, 도큐스토어와 다이신 백화점 등이 날마다 할인 경쟁을 벌였다.
당시 전쟁은 조간신문의 광고 전단지에서 시작됐다. 전단에 실린 상품 가격이 1엔이라도 싼 가게로 주민들이 몰렸다. 세이유가 싸면 이토요카도는 텅 비었고 이토요카도가 싸면 세이유가 텅 비었다.
주민들이 가격에 놀랄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자 전단지 경쟁에서 패한 업체는 오후에 경쟁업체 전단지 가격에서 1엔을 더 뺀 가격으로 상품을 팔았다. 하루 두 차례씩 전쟁을 치른 것이다. 가격 경쟁이 양배추를 중심으로 전개됐기 때문에 주민들은 “캬베츠(양배추·캐비지의 일본식 발음) 전쟁”이라고 불렀다.
지금 다이신 백화점엔 ‘100엔숍’이 큰 규모로 들어가 있었다. 할인점에 치여 찌부러진 모양이었다. 세이유는 미국계 월마트에 먹혔고, 도큐스토어도 옛 활기를 잃었다. 10년 가격 전쟁에서 살아남은 곳은 이토요카도뿐이었다.
◆더욱 강해진 가격 리더들
‘가격 파괴’는 소비자들에게 큰 이익을 가져다 줬지만 ‘물가 인상’을 전제로 생존하던 기업에는 엄청난 고통을 안겼다. 1990년대 후반 가격파괴를 선도해 ‘할인왕(割引王)’ 별명을 얻은 미야지 도시오 사장의 ‘조난전기’도 1998년 망했다.
하지만 가격 전쟁에서 살아남은 ‘가격 리더’ 기업들은 더욱 튼튼해졌다. 대표적 사례가 1990년대 말 도쿄를 중심으로 덮밥업체들이 총동원돼 벌인 ‘규동(쇠고기덮밥) 전쟁’이다. 덮밥 체인 ‘요시노야’의 경우 2002년 광우병 파동으로 판매를 중단하기 직전까지 쇠고기 덮밥 값을 400엔에서 280엔으로 내렸다.
그래도 대부분의 덮밥 업체는 살아남았다. 수입 개방으로 값싼 쇠고기가 공급된 측면도 있지만, 덮밥을 받치는 농부들도 피말리는 원가 절감 노력으로 가격전쟁에 힘을 실었다. 일본 대표 품종인 니가타(新潟)산 ‘ 고시히카리’의 경우 지난 10년 사이 15%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일본 쇠고기인 ‘와규(和牛)’ 값도 비슷한 추이를 보였다.
13년 전 일본의 가격파괴왕(王)이 품었던 의문을 이젠 한국 기업과 소비자들이 던져야 한다. ‘왜 한국 물가가 일본보다 비싸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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