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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같던 남편에 유부녀 애인이 있었습니다”···유명 동화작가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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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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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05 2024/09/28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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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또 걸어도 보이는 건 모래뿐. 인간의 흔적을 발견할 거라는 희망을 갖고 걸어간 것도 며칠째. 사람은 커녕 조그만 미물의 기운도 느낄 수가 없습니다. 사막에 불시착한 사내는 이제 조용히 죽음에 대해 묵상하기 시작합니다. 홀로 계신 어머니, 사랑하는 부인, 지금껏 걸어온 길을 되뇝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본 광경을 믿지 못했습니다. 흰옷을 길게 입은 남정네들이 그를 간호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막의 원주민 베두인이었습니다. 그가 평소 야만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 그래서 믿지 못했던 존재들. 대자연의 힘 앞에서 그를 구원한 건 서구 문명이 아니었습니다. 거대한 모래에 순응하면서 살던 ‘야만인’들이었습니다.

 “저기 사람이 있나.” 리비안 사막을 묘사한 그림. 독일 화가 맥스 슬레보그트의 1910년대 작품.

“저기 사람이 있나.” 리비안 사막을 묘사한 그림. 독일 화가 맥스 슬레보그트의 1910년대 작품.80일이 지나고, 그는 사막에서 탈출합니다. 베두인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거대한 모래 더미 속에 잠들었을 겁니다. 또렷이 남은 이 조난의 기억을 그는 글로 승화했습니다. ‘신약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언어로 번역된 ‘어린왕자’의 탄생이었습니다.

프랑스 비행 조종사에서 소설가로, 다시 비행조종사로 죽은 앙투안 생텍쥐페리의 이야기입니다. 인류가 가장 사랑한 동화, 그러나 동화같지 않았던 그의 인생. 오늘도 다시 사색의 시간입니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어서야.” 사막의 ‘어린왕자’. 앙투안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어서야.” 사막의 ‘어린왕자’. 앙투안 생텍쥐페리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아버지의 부재...깊이 남은 고독

“나는 이렇게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눌 사람 하나 없이 고독하게 살았다.” (어린왕자 中)

생텍쥐페리는 프랑스의 귀족 가문이었습니다. 1900년 태어난 앙투안은 남부러운 것이 없는 아이였지요. 자상한 아버지와 어머니, 네명의 우애 좋은 형제들. 그의 삶은 행복으로 가득했습니다. ‘죽음’이라는 그림자가 덮치기 전까지는요.

 “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를 일찍 떠나는 거죠?” 어린 시절 앙투안 생텍쥐페리.

“왜 제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저를 일찍 떠나는 거죠?” 어린 시절 앙투안 생텍쥐페리.앙투안이 미처 아기 티를 벗어나지 못한 시절. 아버지 마르틴이 뇌출혈로 죽었습니다. 10대 시절에는 가장 절친한 동생 프랑수아를 잃었지요. “어린나무같이 그는 부드럽게 쓰러졌다”고 그는 썼습니다. 그가 가장 의지하던 사람들의 잇단 죽음.

생텍쥐페리는 이제 ‘빈곤한 가문’이었습니다. 명랑한 앙투안의 마음 한구석에는 우울로 가득한 공터가 생겼습니다. 그가 세상의 소란으로부터 자주 도망치던 곳이었습니다. 앙투안은 자주 사색에 잠겼고, 더 자주 공상에 빠집니다.

앙투안은 내면의 아픔을 글쓰기와 그림으로 풀어냈습니다. 학교와 동네 어른들은 “그림 따윈 그만두고 산수와 문법을 공부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어머니 마리만큼은 앙투안의 심정을 잘 헤아릴 줄 알았습니다. 무엇을 해도 너를 응원할 것이라고 따스한 위로를 건네줬지요. 남자의 보호는 없었지만, 그에게 어머니는 세상의 풍파로부터 그를 감싸주는 방패였습니다.

 생텍쥐페리 가문의 성.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앙투안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안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사진출처=PA]

생텍쥐페리 가문의 성.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앙투안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집안이 어려워지는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사진출처=PA]

앙투안 비행에 빠지다

“비행을 하고 싶어요 어머니.”

1912년, 앙투안이 여름학교에 다닐 때였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창공을 가르는 한 물체를 바라봅니다. ‘비행기’였습니다. 하늘로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앙투안은 먼 거리의 비행장을 매일같이 찾아갑니다. 비행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쏟아냈지요. 하늘을 날 때의 느낌, 비행사가 되려면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하는지. 어머니 마리는 앙투안의 ‘열정’을 눈치챕니다. 앙투안이 그 해 비행기에 처음으로 몸을 실을 수 있었던 이유였지요. 어찌나 감동을 주는 비행이었는지. 그의 문장에 그때의 느낌이 진하게 전해집니다.

저녁 미풍에 날개들이 잔잔히 흔들거리고 엔진의 노랫소리가 영혼을 달래주는데 희미한 햇살이 우리 곁을 스쳐 지나고 있었다.
 앙투안이 비행 조종사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머니 마리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생택쥐페리를 묘사한 그림. [사진출처=Ester-Rose Anderson]

앙투안이 비행 조종사가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어머니 마리의 물심양면 지원이 있었다. 비행기를 조종하는 생택쥐페리를 묘사한 그림. [사진출처=Ester-Rose Anderson]그의 꿈은 이제 확고합니다. 하늘을 유영하는 비행사, 그 황홀한 기쁨을 글로 담아내는 작가. 1921년 성인이 된 앙투안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제2 비행연대 입대를 지원하지만 떨어집니다. 비행사가 되기 위한 첫 도전에 실패한 것이었지요. 어머니 마리는 그를 응원하며 사설 항공 교육 비용을 지원합니다.

앙투안이 어머니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비행기 엔진이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어요. 얼마나 감미로운 음악인지 몰라요.” 어머니 마리가 없었다면, 비행조종사로서 앙투안도, 작가로서 앙투안도 없었을 테지요.

 20세기 초는 항공기 개발이 본격화하는 시대였다. 앙투안이 비행 조종사로서 꿈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사진은 1928년 미국에서 발행된 ‘Popular Aviation’.

20세기 초는 항공기 개발이 본격화하는 시대였다. 앙투안이 비행 조종사로서 꿈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사진은 1928년 미국에서 발행된 ‘Popular Aviation’.

비행기 조종간으로 글을 쓴 작가

‘세계를 비행하는 작가.’

앙투안의 꿈은 현실이 됐습니다. 1926년 라코테레 그룹(에어프랑스 전신)의 조종사로 일하면서였습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우편을 배달하는 조종사. 유럽부터, 아프리카를 거쳐 신대륙까지 넘나드는. 앙투안이 어렸을 때부터 꿈 꾸던 것이었습니다.

새로운 풍경이 주는 명민한 감각 때문인지, 그는 그해 첫 소설 ‘비행사’(L’Aviateur)를 발표합니다. 앙투안의 소설은 비행기 조종간으로 쓰인 셈이었습니다.

 “비행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지.” 1933년 프랑스 툴르즈에서 앙투안.

“비행은 언제나 영감의 원천이지.” 1933년 프랑스 툴르즈에서 앙투안.문인으로서도, 비행인으로서도 성공적인 삶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1931년에 쓴 ‘야간 비행’으로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으면서였습니다. 그 해 앙투안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운명적 사랑을 만납니다.

이미 두 번의 결혼에 실패한 예술가 콘수엘로였습니다. 그녀는 스타 생텍쥐페리 앞에서도 당당한 모습으로 그를 단숨에 사로잡았지요. 생텍쥐페리는 그녀를 ‘독사의 혀’를 가진 여자라고 평했지만, 어느샌가 그녀에게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어려서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당당하고 강인한 여성상에게 매력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지요. 두 사람은 곧 부부의 연을 맺습니다.

 “날 쉽게 보지마.” 앙투안의 사랑 콘수엘로.

“날 쉽게 보지마.” 앙투안의 사랑 콘수엘로.

어린왕자와 장미...앙투안과 콘수엘로

“그렇게 우물거리고 있지 마. 짜증나. 떠나기로 했으면 어서 가. ”(어린왕자 中)

어린왕자는 장미를 사랑하지만, 둘은 삐걱거리다 결국 이별하게 됩니다. 앙투안과 콘수엘로의 관계가 그랬습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거친 성격의 콘수엘로와 자유분방한 앙투안은 자주 마찰을 빚었지요. 가까이 있으면 싸우고 떨어지면 서로를 그리워하는 시간의 연속. 세계를 유랑한 앙투안은 부인 콘수엘로를 두고서도 수 없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아름다운 귀족이자 사교계 명사였던 넬리 드 보기와는 오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넬리와 앙투안 모두 기혼이었지만 두 사람은 이에 개의치 않고 만남을 이어갔지요. 앙투안은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지 않고 자유로운 성생활을 즐겼습니다.

 “앙투안, 그림은 그만두고 나를 안아줘.” 앙투안과 바람을 피운 넬리. 그녀는 후에 그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사진은 앙투안이 직접 그린 그녀의 나체.

“앙투안, 그림은 그만두고 나를 안아줘.” 앙투안과 바람을 피운 넬리. 그녀는 후에 그의 전기를 쓰기도 했다. 사진은 앙투안이 직접 그린 그녀의 나체.콘수엘로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감정적 고통에 휩싸였습니다. 수도 없이 그를 떠날 생각을 했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습니다. 앙투안을 진심으로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은 이미 하늘에 있을 텐데 , 나에겐 당신이 보이지 않아 . 지금은 어두운 밤이고 당신은 아직 멀리 있어.”(콘수엘로가 앙투안에게 보낸 편지)

앙투안 역시 콘수엘로를 마음 깊이 사랑했습니다. 육체적 방종과는 별개로 그에게 뮤즈는 콘수엘로뿐이었지요. “맑은 샘물이 그립듯 마음속 깊이 당신이 그리워. 당신의 이면에는 고요하게 빛나는 작은 불빛이 있지.”(앙투안이 콘수엘로에게 쓴 편지)

 “앙투안, 도대체 언제까지 바람을 피울거야.” 앙투안과 콘수엘로의 다정한 한 때. [사진출처=문학동네]

“앙투안, 도대체 언제까지 바람을 피울거야.” 앙투안과 콘수엘로의 다정한 한 때. [사진출처=문학동네]

앙투안의 불시착...명작의 원천으로

“앙투안 생텍쥐페리가 사막에서 실종됐다.”

1935년 12월 29일 앙투안이 실종됩니다. 항공 경주에 참가했다가 아프리카 리비아 사막에 불시착하면서입니다. 그와 동료 정비사 앙드레는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지만 그들에게 남은 건 커피 한 잔, 화이트 와인 한 병, 포도 한 송이, 오렌지가 전부였습니다. 뜨거운 태양으로 타들어 가는 목을 축이고자 이마저도 그날 다 먹어버렸지요.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935년 12월 30일 사하라 사막에서 추락한 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텍쥐페리.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1935년 12월 30일 사하라 사막에서 추락한 뒤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생텍쥐페리.둘째 날부터는 그들이 가진 건 비루한 몸뚱아리 뿐이었습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저 막연히 걸을 밖에. 누군가가 자신들을 발견하기를 기다리면서. 사막의 아지랑이가 그들의 시야를 가렸고, 그들은 오아시스를 발견합니다. 그들이 오아시스에 도착했을 때,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집니다.

심각한 탈수 증상으로 환각을 본 것이었습니다. 넷째 날 쓰러진 그들을 사막의 베두인들이 발견합니다. 기적적인 생환이었습니다. 베두인들은 두 사람을 먹이고 카이로까지 안내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당신, 리비아의 베두인, 당신은 사랑하는 형제입니다.” ‘어린왕자’가 사막에 발이 묶인 조종사로 시작하는 배경이었습니다. 한 남자의 죽음에 직면한 경험이 위대한 문학으로 남은 셈.

 “사막은 정말 무서운 곳이구나.”

“사막은 정말 무서운 곳이구나.”

조국을 위해 전장에 뛰어들다

“군에 복무하겠습니다.”

1940년 프랑스가 격랑에 휘말립니다.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 조종사인 앙투안은 공군에 자진 입대합니다. 항공정찰단에서 적군의 동태를 정찰하는 역할. 이듬해에는 독일 탱크가 프랑스 공군기를 향해 사격을 퍼붓는 와중에 무사히 귀환에 성공합니다. 그는 임무 성공으로 훈장을 받습니다.

그의 항전 의지는 굳건했지만, 조국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히틀러의 침공에 무력하게 무릎 꿇었기 때문입니다. ‘비시 정부’의 출범이었습니다. 친독 정권은 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부 요직에 임명합니다.

 “히틀러는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 나치에 굴복한 프랑스 비시 정권 포스터.

“히틀러는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 나치에 굴복한 프랑스 비시 정권 포스터.자유 프랑스의 선봉 드골 장군은 비시 정권 인사에 이름을 올린 앙투안을 비난합니다. 그가 미국으로 잠시 망명한 이유였습니다. 이 시기 그는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립니다. 조국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서였습니다.

앙투안은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참전을 호소합니다. “친구들의 고통에 철저히 동참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단 한 마디조차 쓸 권리를 누리지 못하리라. (···)우리는 전투 중이다.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이들의 모든 아들을 위해.”

 “우리 프랑스를 도와주시오.” 캐나다에 방문한 앙투안.

“우리 프랑스를 도와주시오.” 캐나다에 방문한 앙투안.

앙투안의 마지막 비행

앙투안이 프랑스로 돌아옵니다. 1944년 5월이었습니다. 미국이 참전하고 전쟁이 더욱 치열해질 때였습니다. 콘수엘로는 전장으로 떠나는 걸 말렸지만 그는 단호히 대답합니다. “나는 전사하러 가는 게 아니오. 내 사람들과 교감하기 위해 떠나는 것이지.”

 “자 이곳을 정찰하면 되겠소?” 프랑스 장군과 대화를 나누는 앙투안(오른쪽).

“자 이곳을 정찰하면 되겠소?” 프랑스 장군과 대화를 나누는 앙투안(오른쪽).1944년 7월 그가 코르시카 섬에 정찰 임무를 떠납니다. 독일군의 정보를 수집하는 작업. 그는 이 비행을 마지막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의 비행기 역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앙투안은 지구를 떠난 듯 보였습니다. 마치 어린왕자처럼. 그가 사라진 지 60년이 지난 2004년. 그의 항공기 잔해가 발견됐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편 앙투안에 쓴 콘수엘로의 편지. 그 위에는 립스틱 자국을 남겼다. [사진출처=문학동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남편 앙투안에 쓴 콘수엘로의 편지. 그 위에는 립스틱 자국을 남겼다. [사진출처=문학동네]

어른을 위로하는 동화를 남긴 위대한 시인

“‘어린왕자’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다. 모든 고독을 달래주고,세상의 장엄한 신비를 이해하게끔 인도하는 위대한 시인의 메시지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의 말처럼, 앙투안이라는 한 사내 덕분에 우리 어른들도 위로받을만한 동화를 하나 갖게 됐습니다. 그의 책에는 그야말로 곱씹을만한 명언으로 가득합니다.

 “장미야, 내가 너를 지켜줄게.” 어린왕자는 우리에게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

“장미야, 내가 너를 지켜줄게.” 어린왕자는 우리에게 진짜 소중한 게 무엇인지 다시 묻게 한다.‘모든 어른들은 한때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저는 이 문장을 제일 좋아합니다. 가끔 삶이 너무나 세속적으로 물들었다는 생각이 들면, 하나의 금언처럼 꺼내 봅니다.

올해로 앙투안 생텍쥐페리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지 여든 해가 됩니다. 모든 것이 익어가는 이 가을, ‘어린왕자’를 읽어보시면 어떠실지. 잊고 있던 우리 어린 시절, 그 아이가 당신을 위로해줄지도 모릅니다.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별들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한 송이 꽃 때문에.”

 프랑스 리옹에 자리한 어린왕자 동상 앞에 생텍쥐페리 동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사진출처=lienyuan lee]

프랑스 리옹에 자리한 어린왕자 동상 앞에 생텍쥐페리 동상이 함께 자리하고 있다. [사진출처=lienyuan lee]<네줄요약>

ㅇ‘어린왕자’ 작가 생텍쥐페리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비행을 동경해 왔다.

ㅇ어머니의 지원 덕분에 비행 조종사가 된 뒤, 이에 영감을 받고 많은 작품을 썼다.

ㅇ사막에서 불시착의 경험은 ‘어린왕자’의 원천이 됐다.

ㅇ아내를 두고서도 많은 바람을 피웠지만, 나치와 싸우기 위해 마지막까지 비행기 조종간을 놓지 않은 인물이었다.

<참고문헌>

ㅇ길해옥,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행동으로서의 글쓰기, 프랑스어문교육 제63집,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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