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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전 대통령, 서점 하실 때 아니다…정권 내주고 평가·성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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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102 2024/01/06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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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커버스토리│심상정 정의당 의원 인터뷰
“1700만 촛불이 일군 열망이 5년 만에 절망으로
‘윤석열 키운’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명도 없어
교섭단체·2세대 리더십 구축 실패 내 책임
정의당 ‘선명한 민생야당’으로 재정비”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회의사당 본청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심상정 의원은 정의당의 유일한 1세대 현역 의원이다. 2004년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1번으로 의회에 진출한 그는 2012년부터 2020년까지 경기 고양갑에서 내리 3선에 성공했다. 자신의 말대로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거대 양당에 적을 둔 적이 없는 제3당의 정치인으로서 지역구에서 3선을 한 유일한 사례”다. 고 노회찬 의원과 함께 진보정당의 미래를 책임졌던 그는 2015년 경선에서 노 의원을 제치고 정의당 대표가 된 뒤 상임대표, 당대표 등을 여러 차례 역임했다.

그는 촛불 혁명으로 범민주 진영과 합리적 보수가 연합해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 탄생한 문재인 정부에서 연합정치의 길이 열릴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단독정부로 대응했다. 이에 심상정 의원은 거대 양당 기득권 정치구조 타파와 다당제 연정을 위한 토대 마련을 위해 민주평화당과 교섭단체를 구성하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로 선거법 개정을 이뤄냈다. 검찰·정치개혁을 지렛대로 정의당이 민평당·바른미래당·대안신당과 공조해 선거제도 개혁에 미온적인 더불어민주당을 압박한 결과다.

정의당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도입으로 2020년 21대 총선에서 20석 확보를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과 민주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면서 정의당은 역대 최고인 9.8% 득표에도 의석은 6석에 머물렀다. 20석 확보를 상정하고 ‘2030 청년 쿼터’ 4석을 비례대표 1·2·11·12번에 배정했지만 비례 1번으로 원내에 진출한 류호정 의원은 많은 논란을 일으켰고, 22대 총선을 코앞에 둔 시점엔 정의당 의원 자격을 유지하며 신당 창당을 진행하고 있다. 노회찬·심상정을 이어 정의당을 이끌 2세대 리더십으로 부상한 김종철 전 대표는 성추행으로 석달 만에 좌초했다. 이후 정의당은 지난 3년 동안 세차례 비대위를 출범시키며 몸부림쳤지만 계속 표류하고 있다.

양당 독점 정치를 깨고 다당제에 기반한 연합정치를 꿈꾸며 진보정당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그렸던 선거제도 개혁, 청년 세대 전면 배치 등 심상정 의원이 주도한 수많은 시도는 그렇게 좌절되고 왜곡됐다. 정치개혁의 불씨를 되살리겠다며 출마한 2022년 대선에선 2.37%를 얻고 낙선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0.73%포인트 근소한 차이로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누르고 정권교체에 성공하면서 단일화 없이 완주한 심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을 만들었다’는 책임론에도 시달렸다. 대선 이후 수많은 논란에 침묵을 이어온 그가 지난 3일 한겨레와 만나 자신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단일화 책임론 등에 대해 속내를 털어놨다. 그는 오는 7일 촛불정부가 5년 만에 윤석열을 앞세운 보수 세력에게 정권을 내주는 과정을 복기한 책 ‘심상정, 우공의 길’을 발간한다. 출간 전 원고를 미리 받아 보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권 넘겨준 울화통 터지는 상황인데…”
―지난 대선 이후 2년 가까이 침묵을 이어왔습니다. 왜 이 시점에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는 것인가요?

“22대 총선 앞두고 여전히 양당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다양한 제3당 창당 논의가 이뤄지고, 논쟁이 계속되는 건 결국 1700만 촛불이 일궈낸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열망이 5년 만에 절망으로 바뀐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과정에 대해 책임 있게 복기하고, 그걸 통해서 우리 정치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됐는지, 또 무엇을 놓쳤는지 짚어보려고 책을 썼습니다. 저는 촛불정부가 가장 크게 놓친 게 바로 연합정치라고 봅니다. 두번째로 좀 개인적인 차원인데, 제 침묵이 길어지다보니 저에게 너무 덧칠된 게 많습니다. 아무리 역사가 강자의 것이라고 하지만 다수파의 시선이 더 많은 진실을 담고, 소수파의 시선이 더 작은 진실을 담은 건 아니거든요.”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실패는 윤색되고, 그쪽 시각으로 정의당과 심상정 의원에게 과도한 책임을 지우고 있다는 건가요?

“아무래도 다수파에 패널도 많고, 마이크가 세니 그런 시선으로 덧칠돼 있어요. 당시 정치의 능선에서 활동했던 정치가로 제가 한 일, 제가 본 일, 또 제가 느낀 일에 대해서 국민께 늦었지만 설명을 드리는 것이 균형 있는 평가를 위해서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 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한겨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7일 발간될 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 세력의 명령인 연합정치를 배신했다고 규정했습니다. 심 의원도 공동정부 구성을 위해 강도 높게 문재인 정부를 압박했어야 했던 것 아닌가요?

“박근혜 탄핵은, 1700만 촛불을 보고 초당적·초정파적인 세력을 아우른 연합정치로 기존 정치질서를 넘어 과감하게 미래로 가자며 80%의 국회의원이 찬성한 것입니다. 진보부터 개혁중도, 개혁보수까지 아우른 연합정치가 탄핵의 역사를 만들어냈고, 국민들은 그 과정에서 당시 그걸 연합정치라고 설명해내지는 않았지만 새 정치를 경험한 거예요. 그런 국민의 경험·열망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정부로 축소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상당 기간 80% 넘는 지지를 보냈다고 생각해요. 촛불의 열망을 받아안아야 할 책임, 공동정부든 다른 어떤 연합정치의 대안이든 그걸 제시하고 추진해야 할 권한과 책임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었던 것이죠. 그런데 책에 썼듯 전병헌 정무수석은 저에게 찾아와 단독정부로 가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단독정부를 공식화했어요. 저나 정의당이 왜 더 압박하지 않았냐는 건데 장관 한두 자리 얻자고 저희가 촛불 혁명의 최선봉에 나선 건 아니거든요.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을 탄핵하고 전면적인 개혁으로 새 시대를 열어달라는 촛불 시민들의 열망을 ‘욕심’으로 격하시킨다면 국민들이 얼마나 실망을 하셨겠습니까?”

―어쨌건 정의당이 검찰개혁과 정치개혁을 밀어붙이지 않았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단독정부를 공식화했는데, 그렇다면 어떤 방식으로 촛불의 개혁 열망을 실현할 것인가 저희 나름대로 고민하고, 정의당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으로 검찰개혁과 정치개혁 연대를 제안한 거죠. 어쨌든 촛불정부가 과감한 개혁으로 나가도록 정의당이 예인선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가장 어려운 정치개혁과 검찰개혁 과제를 중심으로 개혁 공조를 하자, 그래서 정의당은 다른 야 3당(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과 함께 민주당에 개혁 공조를 제안하게 된 것이죠.”

―결과적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등 검찰개혁, 선거제 등 정치개혁도 제대로 안 됐고, 결국 심상정이 불가능한 걸 잘못 선택했다고 하는 이도 있습니다.

“우리는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이 골을 넣도록 패스하는 것까지 최선을 다했어요. 골을 넣을지 말지 결정하는 건 문 대통령과 민주당 몫이죠. 정의당이 제안하고, 야 3당이 힘을 모아서 정치개혁과 검찰개혁에 앞장섰는데 그 패스가 골로 연결되지 않아 저희가 더 속상하고 허무했죠. 잘 차려진 밥상이 엎어진 것입니다.”

―잘 차려준 밥상을 누가, 왜 엎었다고 생각하나요? 문재인 대통령이 거대 양당 틀 안에서 기득권을 지키려는 선택을 했다고 보는 건가요?

“저도 이 질문을 문재인 대통령께 그대로 던지고 싶습니다. 왜 문재인 정부가 촛불 민심의 명령인 연합정치를 하지 않고 단독정부로 갔는지? 그래서 5년 뒤 아무런 준비조차 되지 않은 윤석열로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는데,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가신다면 연합정치를 하실 생각이 있는가 묻고 싶어요. 집권당이 단독 책임 정부를 할 수 있다고 봐요. 그런데 그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는 것 아니겠습니까? 민주당 단독정부가 촛불정부로 책임을 오롯이 다했는지에 대해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의 성찰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런 성찰이 없으니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정권을 넘겨준 울화통 터지는 이 상황에 대해 도대체 해명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지난) 대선 때 심상정이 단일화 안 해줘서 그렇게 됐다는 것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

심상정 의원을 포함한 야 4당(정의당·진보당·노동당·녹색당) 대표와 의원단이 지난해 9월14일 국회에서 선거법 개악 중단을 촉구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정의당에 단 한번도 입각 제안 없었다”
―패배의 책임을 심상정에게 덮어씌우기를 한다는 건가요?

“지난 대선은 이재명만 패배한 게 아니고, 심상정의 패배이기도 합니다. 근본적으로는 촛불정부에 대한 평가죠. 윤석열 대통령 당선, 윤석열 정부의 거대한 퇴행을 겪으면서 국민의 한숨과 분노가 너무 크잖아요. 당연히 대선 후보의 한 사람으로서 막중한 책임을 느껴 침묵이 좀 길어졌습니다. 하지만 이제 한국 정치 안에서 각 정당과 각 후보에게 각자 무게에 걸맞은 어떤 책임이 구체화되는 게 필요하다고 봐요. 누군가는 지난 대선 당시 제가 얻은 2.37%를 보지만 저는 박근혜 탄핵을 이루고 촛불정부를 세웠던 80%를 보고, 그 가운데 잃어버린 30%에 주목합니다. 제 문제의식은 윤석열 대통령같이 아예 준비조차 되지 않은 그런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허용한 이 정치구조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될 때, 그 이후 국민의힘 전신의 지지율은 한 자릿수였어요. 사실상 괴멸 직전까지, 박물관의 입구까지 촛불 시민들이 갖다놨어요. 그런 대선 후보조차 없었던 국정농단 세력에게 어떻게 정권교체를 허용했나요? 이런 점에 대해서 더 깊이 고민해봐야 되지 않나요? 적대적인 공생관계에서 반사이익으로 지금 윤석열 정부 탄생이 이뤄졌는데…. 언제까지 이런 근원적인 문제를 단일화 책임론으로 대응할 것인가요? ‘심상정 책임론’을 얘기하지 않아도, 윤석열 대통령이 탄생했고 윤석열 정부의 거대한 퇴행으로 국민들이 고통받고 분노하는 모습 자체가 저에게는 형벌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제가 감당할 저의 몫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 사고하지 않고, 제가 얻은 2.37%로, 윤석열 정부 탄생, 이 모든 것을 덮어버릴 수 있는 건가요?”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 때문에 윤석열 같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건가요?

“이제 승자독식 정치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좀 중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의회 중심주의로 나가야 하고, 그것을 위한 선행 단계로 다당제 연합정치로 가야 한다고 봐요. 다당제 연합정치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쌓아야 하는데, 그 다당제 연합정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제도 개혁이 선거제 개혁과 결선투표제 도입이라고 저는 봅니다.”

―연합정치가 없었다고 했는데, 문재인 대통령이 심상정 의원에겐 노동부 장관, 고 노회찬 의원에겐 환경부 장관을 제안했는데 거절했다는 얘기까지 돌았습니다.

“문재인 정부 끝날 때까지 저는 그런 질문에 시달렸습니다. 단 한번도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입각 제안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책에도 썼는데 당시 민주당의 의원, 문재인 정부 장관들이 저한테 노동부 장관직에 대한 책임 있는 제안이 있었는데 제가 검토조차 하지 않고 완강하게 거절했다는 투로 얘기했는데, 저는 어떤 제안도 받은 적 없습니다. 저는 진보정당 안에서 대표적인 연합정치론자입니다. 촛불 혁명에 동참했던 정당을 파트너로 존중하고 그 정당들의 핵심 정책을 중심으로 연합하는 구체적인 제안 과정을 통해 장관 자리가 제안이 됐다면 정의당이 검토를 안 할 이유가 없죠. 제안조차도 없었는데 그런 얘기가 계속 나올 때, 저는 ‘문재인 정부는 왜 매사 이런 식으로 일을 만들지?’ 이런 불쾌감이 있었죠. 제가 거짓말을 하는 모양새가 돼버리니까 당혹스럽기도 했습니다.”
“문 전 대통령, 서점 하실 때 아니야”
―책에서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에 대해 책임 있는 제안이 있었다면 당원과 지지자가 나를 압박했을 것이라는 취지로 적었는데요?

“이재명 후보와 단일화 얘기도 장관 제안 논란과 똑같은 거예요. 저는 이게 소수파의 생존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다당제 연정의 정치개혁을 하자고 촉구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숙제를 정치권이 지난 20년간 미룬 결과라고 봅니다. 저는 정치개혁 어젠다를 복원하기 위해 대선 출마를 결심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재명 후보의 진지한 제안이 있었다면 당연히 숙의 과정이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어떤 단일화 제안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심상정 아니냐? 국가적 차원에서 좀 더 큰 정치를 했어야지?’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분들 고민은 깊이 받아들입니다만 그게 결국은 알아서 죽으라는(후보 사퇴하라는) 그런 거라면 지난 20여년 동안 제가 해온 제3당의 길, 저희 정의당이 걸어온 길 자체가 부정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많은 분들이 ‘심상정에게 이런저런 장관직도 많이 제안했는데 야멸차게 거절하고, 단일화 제안도 했는데 이것도 다 거부하고, 아무리 진보정당의 정치인이라도 이건 아니다’라며 저를 국가의 미래를 돌아보지도 않는 아주 강퍅한 사람으로 만들어버렸어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거든요. 단일화 압박이 ‘제3당 불가론’으로 귀결되는 이런 정치구조, 저는 이건 정상적인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봅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참석한 지난해 7월3일 국회 초당적정치개혁 의원모임 간담회에서 심상정 의원이 발언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문재인 대통령, 민주당이 윤석열 대통령 탄생의 책임을 회피하려 그런 핑계를 대는 거라고 보는 것인가요?

“윤석열 정권의 탄생과 그 후 퇴행에 대해서 저와 정의당 몫의 책임, 그것은 저와 정의당이 당연히 져야 됩니다. 그런데 촛불 시민이 문재인 대통령 만들어줬고, 지방정부 다 몰아줬어요. 21대 총선에선 180석도 만들어줬지 않습니까? 이런 집권당의 책임 대신 소수 정당에 ‘독박’을 씌우는 책임 전가형 마타도어(흑색선전)를 생산하고 있어요. 저희가 걸어온 25년 진보 정치의 길을, 그 가치를 부정하는 행태는 이제 좀 인내하고 용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실관계를 최대한 정제해 ‘심상정, 우공의 길’에 기술한 것입니다.”

―책에선 무도한 윤석열 정권 때문에 반대로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이 자신의 과거에 대해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행태를 비판했습니다.

“어쨌든 1700만 촛불이 밝힌 새로운 미래에 대한 열망이 5년 만에 절망으로 바뀐 이유에 대해 많은 부분이 설명되지 않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집권기에 대한 평가와 성찰이 생략됐기 때문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의 미래’를 쓰시면서 ‘비가 오지 않아도 또 비가 너무 많이 와도 다 내 책임인 것 같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제목은 ‘진보의 미래’지만, 내용 대부분은 자신의 집권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이거든요. 그 반성을 기반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진보의 미래를 그렸고, 그 트랙을 타고 민주당이 재집권에 성공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대통령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바로 지난 정부였고 더구나 촛불정부였는데 1700만 촛불에게 뭔가 책임 있는 설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 대통령, 그리고 민주당도 집권 5년을 성찰한 결과를 내놔야 합니다. (문 전 대통령이) 지금 서점을 하실 때가 아니죠. 노무현 대통령처럼 같이 일했던 수석·장관·전문가를 불러모아 집권 과정에 대해 리뷰하고, 또 국민들에게 설명하고, 그 평가와 성찰의 결과를 내놔야 될 때 아닌가요? 윤석열 후보도 문재인 정부가 만든 것이고, 이재명 후보는 민주당 후보이고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그런 대결 구도로 여기까지 오다보니 지금 정치가 맥락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평가해야 할 것이 생략되고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니까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고 뭘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 채 서로 적대와 혐오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입니다.”

“민주당, 160석 예상하고도 위성정당…충격적”
―어쨌든 정의당이 검찰개혁과 정치개혁을 지렛대로 개혁연대를 추동했는데 조국 사태로 그 동력이 약화했고, 정의당은 조국 법무부 장관을 인준해 곤경에 처했어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나요?

“지금은 모든 것이 명확해져 어떤 말이든 할 수 있는데 그 당시는 딜레마 상황이었죠. 조국 사태는 검찰개혁과 반개혁, 다른 한편은 특권과 반특권이 정면으로 충돌한 사건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보면 검찰개혁을 위해서는 조국을 지켜야 했고 특권 타파를 위해서는 조국을 버려야 했습니다. 정치인 심상정 저 개인의 판단이었다면 아주 쉬웠을 겁니다. 그런데 몇달 뒤에 총선을 치러야 하는 그런 당의 대표로서는 무엇을 잃어야 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조국 법무부 장관 승인 과정을 통해 검찰개혁 동력이 급속히 떨어졌고 끝내 검사 윤석열이 정권의 대항마로 부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또 정의당 당내 압도적인 의사를 존중하고 검찰개혁 우선 원칙을 가지고 조국 장관을 조건부 승인을 했는데 후과가 매우 컸습니다. ‘민주당에 민주가 없고 국민의힘에는 국민이 없다’고 했는데 조국 사태를 계기로 ‘정의당엔 정의가 없다’는 말이 생겼어요. 결국 당장의 어떤 제도 개선이나 정책 실현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 우리 당이 가지고 갈 가치나 방향을 손상해서는 안 된다는 아주 뼈아픈 교훈을 얻었습니다.”

―선거법 개정을 주도할 때 예상했던 것과 달리 정의당은 더 초라해졌는데, 이건 누구 책임인가요?

“저희는 야 3당과 민주당을 믿고 이 개혁을 추진한 것이죠. (국민의힘이) 위성정당으로 압박하더라도 결국은 민주당이 원칙을 지켜나간다면 소기의 성과·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당시 유시민 작가가 제게 와서 한 얘기를 책에도 썼지만, 21대 총선을 몇 개월 앞두고 이미 민주당 지도부는 160석 이상 확보할 수 있다는 걸 알았고, 그걸 알고도 20석을 더 욕심부리려 스스로 만든 법을 짓밟고 위성정당을 쏘아 올린 것입니다. 그게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유 작가가 제게 민주당의 수뇌부는 160석은 무조건 넘고 경우에 따라서 180석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한다고 말했을 때, 김어준 같은 친민주 스피커는 민주당은 과반 의석도 안 된다고 위기의식을 부추기며 심상정과 정의당이 욕심을 부리겠다고 한다며 ‘심상정 욕심론’으로 저를 공격했어요. 저희보고 배신했다고 얘기했는데 촛불정부가 촛불 개혁을 배신한 것이죠. 저희는 촛불 명령을 수행한다는 자세로 이런 개혁(검찰개혁과 정치개혁) 공조를 시작한 것이고, 이 과정을 통해 정의당은 지속가능성을 높이고 한 단계 미래로 나아가고자 했는데 위성정당 사태로 그게 좌절된 것입니다. 위성정당 사태로 촛불을 아예 꺼버리고, 정의당의 미래도 막아버린 거죠.”

―정의당 입장에선 현행 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제도 유지가 최선일 텐데, 이재명 대표가 그런 선택을 해도 제3당 창당, 유사 위성정당이 우후죽순 나올 수도 있어요. 정의당은 어떻게 총선을 치러야 하나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정당의 유불리나 이해타산을 앞세우면 선거제도 개혁은 안 됩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정의당이 선거법 개정의 수혜자가 아니어도 좋다, 그래도 이건 해야 된다고 얘기해 왔어요. 지금 제3당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그동안 20년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정당과 정파들이 제3지대에 도전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일회성으로 끝나거나, 살아남은 경우도 양당에 흡수됐어요. 지난 20년 동안 양당 틈바구니에서 거의 피멍 들면서 버텨온 유일한 정당이 정의당입니다. ‘너희 정의당은 왜 이렇게 못하냐’고 하는데 사실 20년 동안 많이 힘들었고 체력도 많이 소진돼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제 제3지대, 제3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실현하고, 3당으로도 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그런 제도적 보장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초기에는 정당이 난립하고, 혼탁하고, 자기 구명을 위한 정당도 생기지만 제3당이 유력 정당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제도적 장치가 된다면 저는 다당제가 정착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봅니다.”




김준우 비상대책위원장 등 정의당 지도부가 지난 2일 광주시의회에서 새해 기자회견을 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연합뉴스

“청년비례 실패…류호정 문제 송구”
―정의당 대표로 정의당을 청년 정치의 산실로 만들기 위해 도입한 많은 시도가 실패했습니다.

“촛불 광장에서 가장 새로운 모습이 청소년과 청년들이 대거 몰려나왔다는 겁니다. 촛불이 명징하게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는 그 청년의 미래, 그게 시대정신이다,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성찰이 있었죠. 그런데 그때 2030 청년 정치인의 비중이 2% 미만이었단 말이죠. 저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주되 당대표가 공천권을 행사해 낙점하고 호위무사처럼 청년 정치인을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경쟁을 통해서 자기 실력으로 자리를 잡는 그런 경선 방식이 공정하다고 봤어요. 그래서 청년비례대표 경선을 한 것이죠. 그런데 실패했죠. 류호정 의원에 대한 실망감 같은 것으로 표현이 되는데 정의당 비례대표 1번이 정의당이 아닌 곳에서 다른 정치를 해보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니 당시 당대표로 유구무언이죠. 국민들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다만 제가 분명히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요. 심상정이 류호정을 발탁해서 1번 줬다고 이해하고 있는데 우리 당의 시스템은 좀 다르죠. 류호정 의원은 발탁한 게 아니고 당원 투표에 의해서 1번을 받은 것이죠. 그때 제가 정의당 대표로 했던 것은 위성정당이 가시화되기 전에 이미 우리는 비례 경선에 들어갔기 때문에, 저는 연동형을 전제로 21대 국회에서 정의당이 20석을 얻는 걸 목표로 했을 때 1·2·11·12번 이 4석을, 목표한 20석 가운데 20%인 4석을 ‘2030 청년 쿼터’로 앞 순위에 배정한 것입니다. 그게 제가 한 일입니다.”

―류호정 의원의 신당 행보와 관련해 책에서 “정의당에 류 의원 탈당에 미련을 갖는 사람은 없다”며 탈당을 요구했습니다. 류 의원은 “정의당 주류가 당원을 배신했고 민주당 2중대 논란을 불렀고, 그래서 난 탈당 안 한다”고 합니다.

“그 문제는 현재 당 지도부(김준우 비대위)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 어쨌든 류호정 의원은 정의당에 신의를 저버렸어요. 자신을 국회의원으로 만들고 지켜줬던 수많은 당원의 정성·기대·아픔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정의당 1번은 고군분투한 정의당 당원들의 것이라는 점을 존중하길 바랍니다. 정의당이 아닌 새로운 도전을 하겠다면서 정의당 비례대표 1번 의원직을 유지하겠다는 건 아니라고 봐요.”

지난달 12일 정의당 의원총회 모습. 신당에 참여하겠다는 류호정 의원의 자리가 비어 있다. 김봉규 선임기자

―정의당의 유일한 1세대 현역 의원이고, 당대표도 지냈습니다. 정의당 위상 축소, 현재 위기에 대한 자신의 책임은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시나요?

“정의당이 어려움에 봉착한 것은 결국 위성정당 사태라는 거대한 좌절, 2세대 리더십인 김종철 전 대표의 좌초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지난 총선에서 9.8%, 최고 지지율을 확보했음에도 지속가능성을 만들려고 제 모든 것을 쏟아부었던 선거법이 거대 정당의 위성정당 사태로 좌절을 맞았고, 결국 정의당 교섭단체 만들기에 실패했어요. 사람이 당장의 어려움은 감수해내지만 미래가 없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것인데, 결국 위성정당 사태로 정의당이 전망을 잃어버린 거죠. 또 2세대 리더십을 열려고 했던 김종철 대표도 좌초했습니다. 정의당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는 제 노력, 2세대 리더십을 세우려는 제 노력이 결국 실패했습니다. 당시 당대표로 당의 미래를 개척하는 소임을 다하지 못한 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책임을 엄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의당,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진보정당 20년 역사를 보면 고비고비마다 위기가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떠났지만 그럼에도 정의당은 20년 동안 해온 잠재력이 있다고 봅니다. 지금 국민들은 정의당이 획기적으로 무슨 큰 도약을 당장에 할 수 있기를 바란다기보다 지난 3년 동안 헝클어진 정의당의 모습을 좀 선명하게 잘 정리하라고 요구하고 있다고 봅니다.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선명한 민생 야당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기 때문에 정의당의 존재 이유를 다시 한번 재정립하고, 작지만 행동으로서 매운맛을 보여 나간다면 국민들이 정의당에 회복의 기회를 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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