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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보도, 언론은 국민을 우습게 보지 마라 [조성식의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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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999 2021/12/16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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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식의 통찰] 언론권력과 언론기업의 두 얼굴

▲ 자택서 나와 사무실 향하는 김건희 씨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건희씨가 15일 서울 서초구 자택에서 나와 자신의 사무실로 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김건희씨 허위경력 의혹에 대한 YTN 보도가 TV조선의 '최순실 의상실'이나 한겨레의 미르재단, 또는 JTBC의 태블릿 PC처럼 진실의 방아쇠가 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다. 이른바 '본부장(본인·부인·장모)' 비리 의혹을 외면하거나 축소하는 언론 카르텔이 워낙 단단하기 때문이다. 다만 둑에 구멍이 뚫린 것은 분명하다.

주변 사람들한테 "언론은 도대체 왜 그러느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난감하다. 오랫동안 그 업계에 종사했지만, 난들 그 기묘한 '그들만의 리그'를 무슨 수로 다 꿰뚫어 보겠나? 내가 무슨 천지만물의 원리를 깨우친 모 대선후보의 멘토도 아니고. 더욱이 나도 한때 '공범'이었기에 자격지심도 없지 않다.

언론에 대한 불신과 비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기레기'라는 희귀한 조류가 탄생하면서 더 불거진 면이 있기는 하지만, 언론의 속성과 생리를 안다면 새삼 개탄할 일도 아니다. '언론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명제는 지금도 유효하다. 하지만 이는 언론의 긍정적 면이고, 요즘 언론 행태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많다. 부정적 의미의 언론은 동전의 양면처럼 언론권력과 언론기업이라는 두 얼굴을 가졌다.

기레기는 수준 낮은 기사를 쓰는 기자를 비하하는 속어다. 기자 자질과 관련된 이 용어가 정파적 시각에서 널리 쓰인다는 것은 정치의식과 언론관의 함수 관계를 보여준다. 물론 그 바탕에는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이 깔려 있다. 편의상 언론 지형을 보수/진보, 또는 우파/좌파로 나눈다면, 양 진영 지지자는 서로 반대쪽 기자를 향해 기레기라고 비난한다. 옳으냐 그르냐, 맞느냐 틀리냐가 판단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어긋난다고 기레기라고 부른다면, 원조 기레기가 섭섭해 하지 않을까?

사실보도와 진실보도의 혼동

언론의 문제점 중 가장 돋보이는 것은 사실보도와 진실보도의 혼동이다. 사실보도는 언론의 기본이지만, 편파적 사실보도 또는 맥락 없는 사실보도는 진실보도에 걸림돌이 된다. 이를테면 어떤 사건과 관련된 10가지 사실 중에 취재 프레임에 맞는 5가지만 보도하면, 부분적으로는 사실보도지만 전체적으로는 사실보도라고 하기 어려울뿐더러 진실보도의 문턱을 넘기도 힘들다.

버트런드 러셀의 저서 <철학이란 무엇인가>에는 그 유명한 테이블 비유가 나온다. 테이블은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그 모양과 색깔이 다르다. 러셀은 이와 관련해 현상(appearance)과 실재(reality)의 차이를 언급한다. 즉 사물이 어떻게 보이느냐와 진실로 무엇이냐의 차이다. 이 철학적 질문은 저널리즘에도 적용할 수 있다. 러셀의 견해를 원용하면, 언론의 진실 추구는 현상과 실재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양자의 틈새가 벌어질수록 신뢰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사실보도의 맹점을 보여주는 사례는 무수히 많지만, 본보기로 김학의 사건을 들춰보자. 1차 김학의 사건의 본질은 성접대 의혹이다. 알다시피 이 사건은 검찰의 유별나고도 철저한 증거주의 덕분에 진실이 시궁창에 처박혔다. 나중에 재수사까지 벌어졌지만, 상당수 언론은 '피해자와 피해사실을 특정할 수 없다'는 검찰 주장에 기울어졌다. 검찰은 확실한 물증인 동영상은 외면한 채 증거 불충분, 금품 요구 등을 무혐의 판단의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검찰 기자들은 잘 안다. 수사는 증거가 아니라 의지라는 것을.

2차 김학의 사건의 핵심은 불법 출국금지 의혹이다. 많은 언론이 청와대 개입 의혹에 초점을 맞추면서 국민적 관심 대상인 범죄 혐의자의 해외 도피 시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심지어 출금 결정 과정에 검찰 고위 간부들이 관여한 흔적이 드러났는데도 민정 라인과 실무 검사만 과녁으로 삼았다.

1, 2차 사건 모두 언론은 사실보도를 했다. 그러나 진실보도는 아니었다. 맞느냐 틀리느냐의 기준과 옳으냐 그르냐의 기준이 조화롭게 결합할 때 진실보도가 가능하다.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 혐의로 기소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선고 공판에 참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개혁 성향 언론단체에 몸담은 인연으로 전직 언론인들과 현직 기자들이 대화하는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공교롭게도 조국 사태 때 대표적 검언유착 사례로 거론된 몇몇 제도권 언론매체의 기자들이었다. 그들은 "(검찰발) 사실보도에 최선을 다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비록 사실보도의 개념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지만, 나는 그들의 말에 진정성이 있다고 봤다.

문제는 일관성 결여다. 비슷한 사안인데도 접근 태도와 방식이 다른 이중성이다. 예컨대 검찰 권력의 정점인 총장의 부인과 장모, 측근 검사들의 비리 의혹에 언론은 침묵의 카르텔을 형성했다. 이 기이한 보도 태도는 그가 대선후보가 된 후로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비리 의혹 대신 반려견 '토리'나 '무지개'를 부각했다. 이런 걸 보면 그토록 강조하는 팩트 프레임조차 일관성이 없는 셈이다. 사실이 아닌 시각의 문제라는 것을, 선택적 정의에 따른 선택적 보도를 한다는 것을 언론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윤석열과 검찰개혁> 146p).

패거리 저널리즘

두 번째로 팩(pack) 저널리즘을 꼽을 수 있다. 정권 관련 수사가 한창일 때 검언유착을 비판했던 사람들 사이에서 터져 나온 불만 중 하나가 '조중동은 그렇다 치고, 한겨레나 경향은 왜 그럴까'였다. 거기에 KBS도 한때 끼었다. 이런 의문은 언론의 속성이나 생리를 잘 모르는 데서 비롯됐다. 어쩌면 진영주의적 인식 탓일 수도 있다.

팩 저널리즘은 취재 방법이나 시각 등이 획일적인 보도행위를 일컫는다. 패거리 저널리즘이라고도 한다. 주요 원인은 출입처 중심 취재 관행이다. 기자단에 소속된 제도권 언론사 기자들은 출입처에서 나오는 정보와 브리핑 내용을 대동소이하게 받아쓴다. 사실이나 진실과 별개로 출입처 시각에 동조할 때가 많다. 이른바 '단독'을 받아먹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러한 경향은 특히 검찰발 사실보도에서 두드러진다. 참과 거짓을 가리는 수사기관이라는 특수성 덕분에 검찰 정보나 자료는 날것 그대로 삼켜도 탈이 없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나도 그랬다. 나중에 오보로 드러나도 면피가 된다. 심지어 수사내용을 타사에 앞서 빼냈다는 이유로 기자협회로부터 '이달의 기자상'을 받기도 한다. 검찰이 흘려주면 언론이 키우고 다시 검찰이 언론보도를 활용하는 검-언-검 순환형 패턴이 자리 잡았다. 출입기자단 해체와 개방형 브리핑 활성화를 진지하게 검토할 만하다. 그런데 이걸 언론이 필사적으로 반대한다. 여기에는 보수/진보가 따로 없다. 제도권 또는 기득권 언론 편의주의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정파성

세 번째로, 정파성 시비다. 먼저 신문부터 살펴보자. 오랫동안 조중동과 경제신문들은 보수/우파, 한겨레와 경향은 진보/좌파, 한국 서울 등은 중도로 분류됐다. 신문의 태생 기반과 주된 이념, 사주와 경영진 또는 편집진의 정치 성향에 따른 것이다. 경제적 관점의 분석도 있다. 경제적 상류층에 속하는 언론사 사주와 경영진은 지켜야 할 재산이 많기에 정치 성향을 떠나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부유층을 겨냥한 세제 개혁을 추진하고 복지와 분배를 중시하는 정부와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것이다.

경영진과 제작 책임자의 가치관은 일선 기자들에게 영향을 끼친다. 위에서 때리고 조지는 틀을 짜면 기자들의 발제도 거기에 맞춰질 수밖에 없다. 언론계 전반적으로 보수화 경향이 짙어진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신세대 기자들의 연성화나 탈이념화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정부세종청사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열린 제14차 전원회의에서 근로자 측인 정문주 위원(왼쪽)과 이성경 위원이 최저임금 관련 기사가 게재된 한 일간지를 보고 있다. 2018.7.13
ⓒ 연합뉴스


 
검찰과 보수언론의 끈끈한 공조도 정파성과 관련 있다. 검찰은 우리 사회의 대표적 보수집단 중 하나다. 진보가 바꾸고 보수가 지키는 거라면, 법질서 수호와 법적 정의를 실현한다고 자부하는 검사들이 보수적이지 않으면 이상한 건지도 모른다. 진보 성향 인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벌어질 때 유난히 언론 공세가 드센 점도 참고할 만하다.

방송의 정파성 시비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거진다. 1차 원인은 사장 임명 절차에 있다. KBSMBC든 사장 추천권을 갖는 이사회에 여권 인사가 더 많이 배치되는 지배구조 때문이다. 민영방송 SBS와 종편채널 등은 사기업이라는 점에서 오히려 신문과 닮았다. 언론계 안팎에서 방송지배구조 개선을 비롯한 방송법 개정을 꾸준히 외쳤으나 이제껏 실현되지 않은 이유는 방송을 우군으로 삼으려는 정권의 과욕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언론매체가 이념적 지향점을 갖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정파성 자체가 아니라 그에 따른 편향보도와 거짓보도다. 이는 진실 호도와 여론 오도로 이어진다. 언론의 비뚤어진 프레임과 오보에 따른 사회적 손실과 국민적 피해는 막대하다. 코로나 사태 초기인 지난해 봄 보수언론은 해외에서도 인정한 정부의 방역 조치를 엉터리 정보를 근거로 공격하고 비난했다. 총선을 의식해 더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언론사인가 언론기업인가

네 번째로 과도한 상업주의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언론사 간 무한경쟁에서 비롯됐다. 민주화 이후 자본권력에 포획되면서부터 언론은 '두 얼굴의 사나이'가 됐다. 이슬람 전사에 비유하자면, 한 손에는 보도의 칼을, 다른 한 손에는 매출의 칼을 든 셈이다. 매출 확장과 흑자 유지가 지상목표가 됐다. "독자가 아닌, 광고주를 위한 신문을 만든다"는 극단적인 평이 나올 정도다. 언론사가 아니라 언론기업인 셈이다.

인터넷 발달과 유튜브 강세, 소셜미디어 확산 등으로 전통 미디어의 영향력은 갈수록 감소한다. 포털 종속과 속보 경쟁으로 제작환경은 더욱 나빠졌다. 정확하고 공정하고 균형 잡힌 취재를 할 여유가 없다. 경쟁 매체보다 더 많은 기사를 더 빨리 인터넷에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주/월간지 기자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조회 수는 매출에 영향을 끼친다. 본질과 무관한 가십 기사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보도가 판치는 이유기도 하다. 언론학계에서는 보수화 원인을 시장주의에서 찾기도 한다. 언론시장에서 보수층 비중이 더 크기에 그들에게 먹히는 보도에 치중한다는 것이다.

언론의 본령은 진실 추구

마지막으로 언론의 본령에 대한 오해다. 전통적으로 기자들은 언론의 본령을 권력 감시 또는 비판으로 여겼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특히 독재정권 시절 이 명제는 빛났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언론의 본령은 진실 추구다. 권력 감시나 비판은 그 하위 개념이다. 순서가 바뀌면 본말전도 사태가 빚어진다. 나는 오늘날 논란이 되는 언론 문제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고 본다. 사실이나 진실과 거리와 먼 권력 비판 보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더욱이 정치권력 못지않은 검찰권력이나 재벌권력의 폐해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지 않으면서.

바야흐로 언론권력이 비판받는 시대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언론재갈법'이라며 야당과 연대해 저지한 현직 기자들과 언론단체들이 욕먹은 이유도 이런 관점에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간섭하지 말라'는 건 독선이자 오만이다. 진실 추구라는 임무를 다할 때 비로소 언론자유와 언론인의 권익이 보장되는 것이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제5차 언론·미디어 제도개선 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미디어 신뢰도 개선 관련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 및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공청회가 열리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언론사는 진실 추구가, 언론기업은 이윤 추구가 지상과제다. 언론기업이 언론사 행세를 하면 안 된다. 아예 간판을 바꿔 본격적으로 영업에 나서든가. 사기업 언론이 사주와 회사 이익을 중시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지만, 선을 넘으면 언론장사꾼으로 전락한다. 언론기업이 짐짓 준엄하게 정치권력을 꾸짖거나 공정과 상식을 강조하면 웃긴다.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에서 다른 동물들보다 우월하다는 걸 과시하려 인간을 흉내 내 카드 치고 술 마시는 돼지 '나폴레옹'처럼.

어떤 상황에서든 언론 본연의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한다. 끊임없이 자기혁신을 추구하고 언론 품위를 떨어뜨리지 않는 선에서 수익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보편적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게 위기의 언론이 살길이다. 먼저 속 보이는 이중 잣대부터 걷어치우라. 국민을 우습게 아는 게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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