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 활동가들이 북한 문화교류국과 주고받은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은 ‘자주통일 충북동지회’ 부위원장으로 알려진 A씨가 보관하던 USB에서 다수 확인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 USB에서는 최근 4년여간 오간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이 80건 넘게 발견됐고, 메시지 다수는 ‘스테가노그래피’라는 암호화 기법에 따라 비밀 파일 형태로 변환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이들의 구속 필요성을 주장할 때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의 분량 자체가 앞선 국가보안법 사건들에 비춰 유례없는 수준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USB는 지난 5월 27일 활동가 4명에 대한 자택 등의 압수수색이 이뤄질 때 A씨의 거주지에서 확보됐다. A씨는 이 USB를 은박지로 싼 뒤 비닐봉투, 편지봉투, 서류봉투에 담아 밀봉, 이불 속에 숨겨 두고 있었다고 한다. 4겹으로 밀봉된 USB에는 국내 한 군소 정당의 내부 동향, 포섭 대상자로 지목된 인사들의 정보가 담긴 대북 보고문 등이 저장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A씨 거주지에서는 다른 USB들도 발견됐지만 이것들은 파일이 삭제되거나 아예 포맷된 것이었다.
국정원과 경찰은 이러한 정당·인사들의 정보는 북한의 대남공작 전략에 쓰일 수 있는 것이며 따라서 국가 기밀에 해당한다고 판단한다.
반면 활동가들은 “정당의 의사결정은 홈페이지에 과정과 결과가 공개되며, 합법 정당 일반 당원의 신상이 국가기밀일 수 없다”고 맞선다.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에 대해서는 “수신·발신자가 존재하지 않으며,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의 강령에 기초한 활동을 부풀리고 짜 맞춰 범죄로 뒤집어씌웠다”는 입장이다.
약 4년간 오간 지령문과 대북 보고문에서 포섭 대상자로 거론된 내국인은 약 60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충북 지역의 정치인이나 노동·시민단체 인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문화교류국은 “지역 노동자와 농민 틈에 들어가라” “청년들을 받아들여라”는 식의 지령을 내렸다고 한다. 북한은 지난해 총선을 앞두고는 “여야 세력 움직임에 대해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보고해 달라”고도 주문했다.
민심 동향 수집, 북한 체제 정당성 선전, F-35A 도입 반대 운동 등의 지령은 대개 암호화·복호화된 파일로 전달됐다. 활동가들은 북한과 통신을 하기 위해 이동할 때 휴대전화 전원을 끈 뒤 움직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통신은 공공 와이파이를 활용할 수 있는 커피숍 등에서 단시간 내 이뤄졌다. 사용자 추적을 막기 위한 행동이었다고 국정원 등은 파악하고 있다.
A씨 등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국정원과 경찰은 4명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북한 공작원 회합 촬영 장면, 압수수색한 이메일, 대화 녹음 등의 증거로 소명된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반면 활동가들은 국정원과 경찰이 말하는 ‘자주통일 충북동지회’부터가 ‘조작된 유령 조직’이라는 입장이다. 4명 가운데 구속영장이 유일하게 기각된 손모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사건은 국정원이 20년간 사찰을 해 만들어낸 사건이며, 이번은 4번째 조작 시도”라고 주장했다.
손씨는 “더 이상은 우리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법조계에서는 “문재인정부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한다고 보긴 어려우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의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일은 쉽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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